2024년 9월 23일(월)

장애인 삶과 세상의 편견 바꾸는 문화예술

작가·음악인·축구선수… 장애가 아닌 능력으로 인정
‘한국 아르브뤼’ 통해 화가 데뷔한 이종우씨
첼로 오케스트라단 ‘밀알날개앙상블’
스페셜올림픽서 2등 한 ‘의령꽃미녀FC’ 화제

이승세(51)씨는 10년 전만 해도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이 ‘작가’라는 어엿한 직업을 가지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 산만해 한자리에 앉아 있기도 쉽지 않았던 이였다. 그의 아들은 ‘한국 아르브뤼’의 전속작가 이종우(23·지적장애 3급)씨다. 종우씨는 지난 2011년, 특수학교인 새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작가로 데뷔했다.

‘한국 아르브뤼’는 2008년,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지적·정신장애인 작가를 발굴해 일반시민의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자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김통원(56) 교수가 만든 비영리단체다. 현재 ‘한국 아르브뤼’ 소속 작가는 종우씨를 비롯해 4명. 2009년부터 매년 두 번씩 전시회를 열어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운동을 해왔다. 누적 관람자는 2만명 정도다.

지난 21일, 서울 중구 남대문에 위치한 알파갤러리에서 한국 아르브뤼 예비작가 나래(18·수도여고 3·자폐성 장애 1급)양의 개인초대전이 열렸다.
지난 21일, 서울 중구 남대문에 위치한 알파갤러리에서 한국 아르브뤼 예비작가 나래(18·수도여고 3·자폐성 장애 1급)양의 개인초대전이 열렸다.

“이젠 주위에서 종우를 장애인이 아닌 작가로 대우합니다. 종우 스스로도 자신을 작가라고 생각하면서 자신감도 생겼고요. 집중력도 한층 좋아졌습니다. 그림이 치료의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종우씨가 작가가 되면서 아버지가 느낀 변화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남다른 천재성을 보였다. 종이와 펜만 주면 한 작품을 10분 만에 뚝딱 완성하곤 했다.

김통원 교수의 목표는 ‘지적·정신장애인들의 작품활동이 우리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는 것’. 김 교수는 작가들의 직업재활 및 사회참여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비영리단체였던 ‘한국 아르브뤼’를 서울형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전환했다. 앞으로는 작가들을 위한 상설전시장 운영 등의 방법으로 경제적 자립을 모색 중이다.

◇제2의 ‘엘 시스테마’를 꿈꾸는 이들, ‘하트하트오케스트라’와 ‘밀알날개앙상블’

하트하트재단은 발달장애 아이들의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구상하다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를 생각해냈다. 전문가들은 모두 불가능하다고 얘기했다. 올해로 창단된 지, 8년째. 그간의 변화는 놀랍다. 지난해 한예종 기악과에 입학한 김동균(22)씨를 비롯해 매년 음대에 들어가는 이도 늘고 있다.

지난해 11월, 밀알복지재단에서도 발달장애아동 28명으로 ‘밀알날개앙상블’이라는 첼로 오케스트라단을 창단했다. 음악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는 발달장애아동들의 예술적 재능 발굴과 사회적 재활기능 강화를 위해서다. 형편상 학원을 보낼 수 없어 마음이 아팠던 경민경(가명·46)씨는 “초등 3학년인 딸아이가 첼로를 배우게 되면서 점점 밝아지고 마음의 문을 열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며 좋아했다.

여성 지적장애인으로 구성된 축구단. '의령꽃미녀FC' /사랑의 집 제공
여성 지적장애인으로 구성된 축구단. ‘의령꽃미녀FC’ /사랑의 집 제공

◇ 한국 최초 여성 지적장애인 축구단, ‘의령꽃미녀FC’

“어느 날, 지역 고등학생들이 자원봉사활동을 하러 시설에 왔습니다. 애들이 축구공을 차면서 노는데 우리 아이들도 잘 어울려서 노는 게 아닙니까.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왜 여성 지적장애인은 축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여성 지적장애인을 위한 복지시설인 경남 의령 ‘사랑의 집’ 김일주 원장(42)의 말이다. 김 원장은 지난해 8월, 한국 최초로 여성 지적장애인 축구단인 ‘의령꽃미녀FC’를 창단했다. 현재 ‘사랑의 집’에서 생활하는 20명의 여성지적장애인 중 13명이 축구단 멤버다.

‘의령꽃미녀FC’의 첫 공식경기는 지난해 발달장애인들의 체육대회인 스폐셜올림픽이었다. 여자팀으로는 유일했던 ‘의령꽃미녀FC’가 7팀 중에 2등을 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편, 축구가 격한 운동이기에 걱정스러운 시선도 많다. 얼마 전, 의령에서 열린 시합에는 지역 후원자, 자원봉사자, 선수 부모님들을 관객으로 초대했다.

“남성팀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고 이분들이 다 감동을 받더라고요. ‘아, 내가 여성 지적장애인이라고 한계를 지었구나’는 말을 많이 하십니다. 이기는 결과를 보여주니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이들도 장애인의 가능성을 새롭게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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