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하트재단·스탠다드차타드은행 드림프로젝트] 시각장애 아동 대상으로 꿈·재능에 맞춰 활동하는 직업체험 프로그램
저시력 아동 70명에게 독서확대기 전달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 제공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맛있는 소고기국 요리는 어떠세요? 양념 라디오.”
방송국 문 위에 달린 온에어(On Air)에 빨간불이 들어온다. “따라라~라라~” 잔잔한 배경음악이 귀를 감싸다가 이내 사그라졌다. 여자 아이의 낭랑한 목소리가 녹음실을 가득 채웠다. 이어 아이들이 번갈아가며 대본을 한 줄씩 읽는다. 진희(가명·19·대전맹학교)양이 마이크를 통해 헤드셋으로 듣는 자신의 목소리가 조금은 어색한 듯, 쑥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한 글자씩 더듬어가며 대본을 읽어 내려가는 손이 바쁘다. 녹음을 끝내고 나온 진희양은 “항상 꿈꾸던 순간이었어요!”라며 상기된 표정을 짓는다. 한층 신이 난 목소리로 라디오 방송 DJ 체험을 이야기하는 진희양은 “꼭 성우가 되겠다”며 밝게 웃었다.
지난 7일 오전, 서울 잠실역 근처에 위치한 직업체험 테마파크 키자니아는 700명이 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서울, 인천, 멀게는 울산에서 직업체험활동을 위해 시각장애아동 300여명이 테마파크를 방문한 것. ‘하트하트재단’이 시각장애 아동들에게 다양한 직업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한 ‘드림프로젝트’ 행사 현장이다. 전국 9개 맹학교의 보호자 및 교사, 그리고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임직원 200여명이 참여해 일대일로 시각장애 아동의 보행을 도왔다.
15세 이상의 시각장애인 인구 23만8997명 중 42.1% 수준인 9만4564명만이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2010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장애인 경제활동 실태조사’). 시각장애인 대상 직업훈련은 대부분 안마사, 텔레마케터, 피아노 조율사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예지(가명·24·시각장애1급)씨는 “고등학교 때 안마를 배우니까 당연히 안마사가 직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적성에 맞는 걸 찾고 싶다”고 했다.
하트하트재단 장진아 사무국장은 “학령기 직업 훈련이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드림프로젝트’는 시각장애 아동들이 개인의 재능에 맞는 직업을 찾을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이날 행사를 지원한 스탠다드차타드의 대내외홍보부 손은영 차장은 “회사에서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Seeing is Believing’프로젝트를 3년째 진행 중이다”며 “이번엔 시각장애 아동들에게 다양한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그들의 꿈을 키워주고 싶어 참여했다”고 말했다.
최서현(8·울산혜인학교·시각장애1급)군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선생님과 서울로 왔다”며 소방관 옷을 입고 인사했다. “제일 체험해보고 싶은 직업이 뭐야?”라고 묻자 “소방관이랑 경찰관요…”라며 수줍게 대답했다. “삐-삐용삐용-”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울리자 서현군은 화들짝 놀라며 소리에 집중했다. 곧이어 서현군의 입에서 방금 소방차에서 난 소리가 그대로 울렸다. “삐용삐용-” 서현군의 인솔자인 울산시각장애인복지관 앙효형 복지사는 “서현이가 절대음감 능력이 있어 악기 습득력이 빠른 편”이라며 “피아노와 바이올린도 수준급”이라고 귀띔했다. 이어 “울산 지역엔 음악 교육을 지원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부재해 아쉽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행사장 한편에서는 저시력 아동을 위한 독서확대기 배부도 진행됐다. 국내 저시력(안경·렌즈 등을 착용한 교정시력이 0.3 이하) 인구는 5만여명으로, 시각장애인의 20% 정도다. 장진아 사무국장은 “저시력 아동 70명에게 독서확대기가 전해졌는데 책을 보고 공부하면서 아이들이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 것”이라고 했다.
저시력 아동인 보화(7·송신초1)양의 손에도 스마트폰 크기의 독서확대기가 쥐어졌다. 보화양은 독서확대기를 받자마자 맨바닥에 무릎까지 꿇고 15분 동안 책을 뚫어져라 봤다. 책에 파묻은 고개를 들고 한 10m쯤 떨어진 행사장 앞 플래카드에 적힌 글자에 눈을 고정했다.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한 글자 한 글자 문구를 읽었다.
“시.각.장.애.인.의.꿈.을.찾.아.서.”
김경하 기자
주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