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목)

오염된 식수 때문에 죽는 사람 없도록…’1분 수질 검사’ 기술 개발했죠

휴대용 수질 측정기 ‘워터스캐너’ 만든
피도연 파이퀀트 대표

개도국 식수 문제 개선 위해
분광 기술 수질 검사에 도입
현장서 검사결과 확인까지

빌 게이츠 재단과 파트너십
유니세프엔 연내 기기 보급
“대기질 측정이 다음 목표”

피도연 파이퀀트 대표는 휴대용 수질 측정기 ‘워터스캐너’의 성능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 매일 서울 용산 사무실과 성남 판교에 있는 기술개발 연구실을 오가며 바쁜 시간을 보낸다. ⓒ양수열 C영상미디어 기자

“전 세계에서 오염된 물을 마시고 사망하는 사람이 하루 6000명이나 된다고 해요. 의료 시설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서는 수인성 전염병으로 생존마저 위협받는 상황이죠. 흙탕물을 가라앉히거나 간이 정수 도구로 마시는 경우가 많은데, 병원성 대장균이나 살모넬라균을 걸러내진 못해요. 만약 주민들이 식수로 쓰기 전에 수질 측정을 할 수 있다면 ‘죽음의 물’을 마시는 일은 없어지겠죠.”

분광(分光) 기술을 활용한 휴대용 수질측정기 ‘워터스캐너’를 개발한 피도연(35) 파이퀀트 대표의 목표는 단순하다. 사람을 살리는 기술 개발이다. 파이퀀트는 기존 ‘1일’ 걸리던 수질검사 시간을 ‘1분’대로 대폭 줄이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소셜벤처도 사회적기업도 아니지만, 공중보건 분야의 글로벌재단과 긴밀하게 협력한다.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세운 공익재단 빌&멜린다게이츠재단에서 운영하는 그랜드 챌린지 익스플로레이션(GCE) 프로그램의 ‘수질·위생’ 부문 파트너로 선정됐다.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사무실에서 만난 피 대표는 “세상에 없는 신기술이라기보다 전문가 영역에서 다뤄지는 걸 누구나 널리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도국 수질 검사, 1분 만에 가능해져

“분광 기술이라고 하면 굉장히 어렵게 느껴지는데, 이미 초중등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오랫동안 연구된 분야입니다. 물질에 빛을 쏘면 각자 고유의 값을 스펙트럼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선 모양의 상이 맺힌다고 해서 ‘선 스펙트럼’이라고 해요. 이 값을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하면 물속에 어떤 세균이 들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요.”

일반적으로 세균이나 바이러스 검사는 분광기 검사 방식이 아닌 ‘PCR 방식’으로 이뤄진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특정 유전자를 빠르게 증식시켜 확인하는 방식이다. 정확도는 높지만 검사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게 단점이다. 피도연 대표가 개발한 워터스캐너는 일종의 소형 분광기로, 들고 다니면서 현장에서 세균과 바이러스를 1분 만에 검출할 수 있다. 피 대표는 “워터스캐너는 기존 PCR 방식의 검사 시간을 1440분의 1로 단축하고, 비용은 50분의 1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이 처음부터 공중보건 분야를 위해 개발된 건 아니다. 피 대표는 “가정용 정수기나 커피머신에 탑재하거나 산업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개발에 들어갔는데 문득 공익적으로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국제구호단체 유니세프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지난해 8월 유니세프 본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식중독의 원인으로 꼽히는 장출혈성대장균(E.coli) 검출이 주요 과제 중 하나인데, 검사 시간을 얼마나 단축할 수 있냐고요. 그래서 기준을 얼마로 잡는지 물었더니 3시간 안에 가능하냐고 해요. 단번에 ‘오케이’라고 했죠. 연내에 기기를 만들어 보급할 예정입니다.”

국제구호단체들이 워터스캐너에 거는 기대는 크다. 워터스캐너는 IoT(사물인터넷) 기술을 접목해 검사 결과를 스마트폰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빠른 속도로 수질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는 “전 세계 수질 지도를 만들어서 시간에 따른 변화 양상을 분석하면 오염원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음 목표는 대기질 측정

피 대표가 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였다. 해외 출장만 가면 배탈이 났는데 늘 마시는 물이 문제였다. “장과 반응하는 원인 물질을 찾아내고 싶었고, 그게 물속 성분을 분석하는 분광기 아이디어로 이어졌다”고 그는 설명했다.

“사실 분광 기술로는 고체, 액체, 기체 등 모든 물질을 분석할 수 있어요. 그런데 액체는 빛을 흡수하기 때문에 굴절이 생기고 이에 따른 변인이 많아요. 고체나 기체에 비해 분석이 어려워지는 거죠. 고체 물질은 2~3초면 측정할 수 있거든요. 정확도는 유지하면서 휴대 가능한 액체 분광기술이 우리의 경쟁력입니다.”

피도연 대표는 IT 개발자 출신이다.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업무에 대한 만족도는 높았지만 자꾸만 데이터 분석 분야에 관심이 갔다. 더 늦기 전에 도전하자는 생각에 지난 2015년 덜컥 회사를 나와 1인 기업 파이퀀트를 만들었다. 새로 배워야 할 게 많았다. 뛰어난 기술자들을 무작정 찾아가 배우고 논문과 학술지를 찾아가며 공부했다. 필요한 제품은 직접 만들었다. “분광기에 핵심 센서가 필요했는데 원하는 제품 가격이 비쌌어요. 그래서 센서 개발에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고, 휴대용 분광기에 가장 적합한 모델을 생산할 수 있게 됐죠.”

공중보건 분야에서 분광 기술의 활용도는 무한하다. 그가 정한 다음 목표는 대기질 측정이다. “분광 기술로 대기 성분을 누구나 쉽게 분석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에요. 성능을 높이는 과정이긴 한데 역시나 관건은 ‘싸고 빠르게’입니다. 지금은 미세 먼지 농도를 수치로만 ‘좋다’ ‘나쁘다’로 판단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대기질 오염 물질에 대해서는 딱히 궁금해하지 않아요. 같은 미세 먼지 수치라도 중금속 종류와 농도까지 상세하게 알 수 있다면 정부의 대책이나 대응이 더 적극적으로 변하지 않을까요?”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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