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예술 치료 실태
복지부 바우처예산 늘자 자격증 4년새 40배 증가
온라인 8시간 이론 강의, 실습 없이 자격증 발급
정서장애 아동 12만명, 질 낮은 치료에 부작용
부실한 교육·예산 증가로 ‘일자리 창출 목적’ 비난
바우처 사업 통합하고 치료사 재교육 지원 필요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늘고 있다. 정서장애로 병원을 찾는 아이들이 약 12만명에 달한다. 최근 5년 새 62%나 증가한 수치다. 정서장애 중에서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이하 ADHD)가 55%로 가장 많았고, 주변 사람을 공격하거나 갑자기 우는 등 일상적 정서·행동장애(14%), 자신도 모르게 눈이나 어깨를 빠르게 움직이는 틱장애(11.5%)의 비율도 높았다(2011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문제 해결을 위해 복지부는 지난 2007년부터 ‘사회서비스 바우처 사업(이하 아동치료 바우처 사업)’을 시작했다. 전국가구평균소득 100% 이하(4인 가구 기준 월 438.5만원) 가구가 복지관이나 민간기관에서 언어·청력·미술·음악·행동·놀이심리운동 등 6개 치료서비스를 받을 때, 일정액을 보조해주는(바우처) 사업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치료사 자격 기준을 엄격하게 두지 않아, 검증되지 않은 민간자격증과 관련 기관들이 난립하고 있다”면서 “치료의 질이 떨어진 부작용이 고스란히 아동에게 돌아가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음악심리상담사, 음악심리상담지도사, 음악심리지도사, 음악심리분석사, 임상음악전문가, 음악지도사, 음악중재전문가….’
국내에서 발급되는 음악치료 관련 민간자격증 종류다. 총 45개의 자격증이 서로 다른 기관과 협회에서 발급되고 있다. 명칭은 비슷하지만 자격 기준은 천차만별이다. H 연구원이 배출하는 ‘음악심리분석사’는 별도의 음악치료 교육을 받지 않아도, 해당 기관의 시험에서 60점 이상만 받으면 자격증을 받는다. H 교육원에서 발급하는 ‘음악심리상담사’ 자격증은 5주 동안 총 15.45시간의 온라인 강의를 수강한 뒤, 시험에 합격하면 된다.
반면, (사)전국음악치료사협회는 음악치료학과(학부, 석사, 박사) 학위 소지자가 이론 교육 1440시간과 임상 실습 1000시간 이상 이수한 뒤, 별도의 시험에 합격해야만 ‘음악중재전문가’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다. 미술 치료도 마찬가지다. 각 협회에서 발급하는 미술 치료 관련 자격증이 무려 108개에 달한다.
온라인 강의 8시간 수강만으로 시험 응시자격이 부여되는 곳부터, 미술 치료 이론과 실습을 220시간 이수한 후 감독의 지도하에 총 1000시간 수련시간을 거쳐야만 발급되는 자격증도 있다. 자격증을 발급하는 협회에 따라 자격시험 수준도 모두 다르다. 명칭은 비슷하지만 치료사의 실력은 하늘과 땅 차이다. 곽은미 명지대 음악치료학과 교수는 “1000시간 임상 실습을 해도 시행착오가 따르는데, 실습 없이 현장에 나간 치료사들 때문에 아이들의 정서 장애가 더 심해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치료 부작용으로 몸살 앓는 아이들
미술치료사 김미순(38·가명)씨는 지난해 3월 방문한 전남의 한 아동치료센터 현장을 잊을 수 없다. 왕따, 가출, 성폭행 등 마음에 상처를 가진 아이들 40명이 한 교실에 모여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해당 센터의 치료사는 아이들에게 30분 동안 그림을 그리게 한 뒤,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도록 했다. 10명 정도 발표하자 수업시간 50분이 종료됐다. 김씨는 “미술 치료는 아이들과 충분히 신뢰를 쌓은 뒤 상담을 통해 차근차근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인데, 일반 미술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니 답답하더라”면서 “특히 청소년의 경우 충분한 지식과 경험 없이 미술 치료를 진행하면, 적대심·두려움·우울감만 더 증폭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예린 (사)한국언어재활사협회 교육총무(명지대 언어치료학과 교수)도 최근 잘못된 치료로 후유증을 호소하는 아이들을 많이 만났다. “아이들의 언어능력이 향상되는 3~4세 때가 언어치료의 적기인데, 이때를 놓치면 치료가 어려워진다”면서 “3~4세 때 경험 없는 언어치료사를 만난 아이들이 8~9세가 되도록 제대로 말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작 부모들은 치료사의 역량을 확인할 길이 없다. 학부모들은 “바우처 제도가 도입된 후로 치료의 질이 떨어졌다는 평이 많은데, 이젠 치료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경험이 풍부한 음악치료사를 찾고 싶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수준 미달’ 민간자격증 부추긴 바우처 사업
복지부가 ‘아동 치료 바우처 사업’을 시작한 2007년 이후, 아동 치료 관련 민간자격증 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2008년 8개에 불과했던 언어·청력·미술·음악·놀이치료 등 민간자격증이 4년 만에 약 350개로 40배 이상 늘었다. 자격증을 발급하는 협회도 현재 약 130곳에 달한다. 복지부의 아동 치료 관련 예산이 해마다 증가하면서(2012년 9월 기준, 약 757억원), 바우처를 사용할 수 있는 기관도 약 1300곳으로 늘어났다.
연간 6만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최소 2만7500~5만5000원의 비용(최대 10만원 절감)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지만, 부작용도 나타났다. 한 음악치료사는 “인근 센터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서명하면 교통비로 5000원을 주겠다’고 부모들을 설득해, 나머지 바우처 비용 2만원씩을 가져가는 경우를 봤다”고 귀띔했다. 2010년 1월에는 대구 사설 치료기관에서 장애 아동이 손발이 묶인 채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서로 타 부서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복지부는 2009년부터 바우처 사업 대상을 장애아동과 일반아동으로 분리해, 각각 다른 부서에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복지부 사회서비스사업과 관계자는 “아동 정서치료 사업만 우리가 담당하고, 자격증 관련 사항은 장애인서비스팀에서 담당한다”고 했다.
복지부 장애인서비스팀 관계자는 “복지부가 민간자격증을 별도로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민간에 자율적으로 맡기고 있다”면서 “장애아동복지지원법 개정으로 부모가 바우처 기관에서 일하는 치료사 자격을 확인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는 장애아동에 한정된 규정이기 때문에 사회서비스사업과에서 진행하는 ‘아동 치료 바우처 사업’을 이용하는 정서장애 아이들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아동 치료’보다 ‘일자리 창출’에 목적을 두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증거”라면서 “각 부서 간에 바우처 사업을 통합 관리하지 않으면, 이러한 부작용은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람’을 키우는 세밀한 정책과 지원 시급해
임상 실습 없이 민간자격증을 딴 치료사들이 대거 바우처 기관으로 몰리자, 정식으로 교육을 받은 치료사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 치료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치료 금액이 전반적으로 하향 조정됐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하루를 꼬박 일해도, 치료사들은 한 달에 150만원을 벌기 어렵다. 박승숙 미술치료연구소장은 “‘어차피 대우는 같은데, 대학원까지 가서 공부를 해야 하느냐’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면서 “치료사는 임상실습 내용을 자신보다 경험이 풍부한 치료사로부터 교육·감독을 받는 게 원칙인데, 감독비나 재교육비를 낼 돈이 부족해서 포기하는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게다가 기관들은 정부로부터 바우처 예산을 더 받기 위해, 치료 시간을 줄였다. 40분에 한 명씩 치료가 진행되자, 치료의 질은 현저히 떨어졌다. 곽은미 명지대 음악치료학과 교수는 “민간자격증 관리 감독이 어렵다면, 바우처 예산으로 차라리 실력이 부족한 치료사들이 재교육받을 수 있는 비용을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당장의 일자리 창출보다는 제대로 된 치료사 한 명을 키우는 게 시급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