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7일(목)

‘하루 100번’ 길에서 만나는 심폐소생술 강의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다각적 홍보 진행

지난 5월 23일 오전, 서울 장지동 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1학년 교실이 소란스러워졌다. 모델 워킹 실습을 막 마쳤을 때다. 이기웅(38·워킹 강사)씨의 훈시를 듣던 김진수(16·한림연예예술고1)군이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로 뒤로 크게 넘어가더라”는 것이 이씨의 설명. 김군을 살핀 그는 상황의 심각성을 느꼈다. 호흡이 없고, 맥박도 약했다.

이씨는 급히 교내 보건교사와 119구급대에 연락하고,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민방위 훈련이나 의학 드라마에서 대충 봤던 것이 전부였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이씨는 “내가 망설이면, 이 학생이 큰일 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한다. 최대한 세게 가슴압박을 하고, 인공호흡도 했다. 이날 현장에 출동했던 최원일(36·강남소방서 영동119안전센터) 구급대원은 “현장에 도착해서 응급조치를 하자 금세 심장박동이 돌아오고, 의식 반응도 생기더라”며 “이렇게 현장에서 의식이 돌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인계한 병원(삼성서울병원)에서도 놀랐을 정도”라고 했다.

시민들이 롯데백화점 본점(서울 소공동)에 설치된 옥외전광판을 통해 심폐소생술 홍보영상을 보고 있다.
시민들이 롯데백화점 본점(서울 소공동)에 설치된 옥외전광판을 통해 심폐소생술 홍보영상을 보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심정지 보고서(2010)에 따르면, 국내에서 갑작스럽게 심장 기능을 잃는 심정지 환자는 매년 2만명에 이른다. 이 중 7433명(38%)이 목격자에 의해 발견되지만, 김진수군처럼 위기를 모면하는 환자는 3% 정도에 그친다. 최원일 대원은 “보통 한 달에 1~2회 정도 심정지 환자를 접하는데, 목격자가 심폐소생술을 시도한 경우는 100명 중 두 명꼴”이라고 한다. 3%의 생존율은 10%대의 일본이나, 8~9% 정도인 미국보다 현저히 낮은 수치.

조규종 한림대학교강동성심병원 응급의학과장(대한심폐소생협회 기본소생술위원회 간사)은 “응급구조는 목격자, 구급대원, 병원의 세 가지가 연결되어야 하는데, 첫 단추인 목격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첫 조치가 안 된 상태를 뒤에서 잇다 보니 생존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역 간 불균형도 큰 문제다. 조 과장은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이 전국 기준으로는 3% 내외지만, 서울로만 따지면 8%대에 이른다”며 “그만큼 지방의 생존율은 많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홍보가 필수다. 지난 2002년 설립된 ㈔대한심폐소생협회는 심폐소생술 교육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비영리단체다. 의사, 간호사, 응급 구조사 등 의료인들이 모여 심폐소생술 교육콘텐츠를 개발하고, 전문강사를 배출하는 등 한국형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왔다. 인공호흡에 거부감을 느끼는 일반인들을 위해 ‘가슴압박 소생술’을 권고하는 등 목격자의 참여를 증가시키는 활동도 한다. 가슴압박만으로도 표준 심폐소생술과 동등한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반영한 것이다.

현재 전국 200여 곳의 교육기관을 통해 연간 2만명 이상에게 심폐소생술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조 과장은 “일본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생존율이 3%대로 저조했다”며 “초등학교부터 직장까지, 끊임없이 실습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면서 선진국 수준으로 생존율이 올랐다”고 설명했다. 홍보 활동도 병행돼야 한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작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심폐소생술의 중요성’ 대국민 홍보사업은 그 일환이다. ㈔대한심폐소생협회와 함께 홍보 영상물을 제작해 옥외 전광판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알린다. 20초 분량의 홍보 동영상을 하루에 100회 이상 반복 상영하여 인식 개선을 유도한다.

영상은 심정지 환자를 맞닥뜨렸을 때의 절차와 가슴압박술 방법을 소개한다. 서울·대전·대구·광주·부산 등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과 최근 인구증가율이 증가하고 있는 수원과 천안 등에서 홍보동영상을 볼 수 있다. 서울의 경우, 강남의 몬테소리 LED 전광판과 강북의 롯데백화점 LED 전광판을 이용하고 있다. 조규종 과장은 “지역 불균형이 심한 만큼, 지방에 집중적으로 알려보자는 취지로 이번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시형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이사장은 “이번 사업을 통해 시민이 주위에 심장정지 환자가 발생하더라도 침착하게 응급조치를 취하여 소중한 생명을 살려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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