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세스리빙 – 장애 인식 높은 시민 덕 4년 만에 1600억 모은 장애인인권단체
클리어브룩 – 모금 전문가 고용해 이벤트로 개인기부 늘린 장애인 교육·구직 단체
“정부 지원금 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NPO(비영리민간단체)가 국내에 몇이나 될까요?”
‘더나은미래’에서 1년 넘게 공익 분야를 취재하면서, 수많은 NPO 실무자를 만났다. 활동 분야도, 일하는 방식도 모두 달랐지만, 이들이 국내 NPO 환경에 대해 털어놓은 근심은 똑같았다. 개인 후원금을 늘리기 어렵다 보니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는 NPO가 많다는 것이었다.
NPO는 시민의 편에서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나 제도를 견제·비판하는, 애드보커시(advocacy·권리옹호)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를 견제해야 할 NPO가 정부 지원금으로 단체를 운영하게 되면, 본래의 애드보커시 역할을 해내기 어려워진다. 실제로 많은 NPO 활동가가 “정부 정책을 잘못 비판했다가 내년도 지원금이 대폭 삭감될까 봐 눈치를 보게 된다”고 걱정했다. “현장에 나가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만날 시간에, 정부 지원금을 증빙하는 서류 작업을 해야 할 때가 많다”며 한숨을 쉬는 이들도 많았다.
미국에서 장애인 애드보커시 활동으로 유명한 NPO를 찾아가보니, 이들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시카고의 장애인 인권 단체,’액세스리빙(Access Living)’은 모금액의 55%를 개인·기업 등에서 충당하고, 45%를 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 신기한 것은 장애인 복지를 위해 30년 넘게 정부와 싸워왔다는 점이다. 지난해 발달장애인이 취업을 위해 ‘아이큐 테스트’에서 일정 점수를 넘어야 한다는 법 조항을 폐기한 것도 이 단체의 활동 덕분이었다. 발달장애인의 취업을 돕는 데 주(州) 예산이 많이 들다 보니, ‘아이큐 테스트’라는 불평등한 장벽을 둔 것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해온 결과였다. “정부 지원금 삭감이 염려되지 않느냐”고 묻자 액세스리빙 디렉터 매튜(Bhutu Mathews)씨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정부 정책·제도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애드보커시를 열심히 하는 NPO(비영리단체)를 정부는 두려워합니다. 오히려 정부 지원금을 더 늘려주려 하죠. 액세스리빙과 같은 NPO가 정부 지원금을 최소한으로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장애에 대한 인식이 높은 일반 시민들 덕분입니다.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뉴욕 등 대도시에선 ‘장애인을 돕는 NPO’라는 사실만으로 후원금을 내는 시민들이 많습니다. 액세스리빙이 1980년 설립 후 4년 만에 개인 기부금만으로 1억4000만달러(약 1600억원)를 모을 정도니까요. 반면, 장애에 대한 인식이 낮은 교외 지역에서 활동하는 NPO들은 아직도 모금액의 90% 이상을 정부 지원금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참여와 도움이 있을 때 비로소 NPO의 애드보커시 활동이 강화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미국 NPO 대부분이 개인 기부자를 늘리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 중증 장애인의 직업 교육과 구직을 돕는 NPO, ‘클리어브룩(Clearbrook)’은 4명의 ‘펀드레이저(Fundraiser·모금 전문가)’를 고용했다. 개인 기부를 늘릴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클리어브룩은 매주 수요일 저녁이면 지역 주민들과 함께 ‘빙고 게임’을 실시한다. 클리어브룩에서 일하는 중증장애인들과 지역 주민들이 팀을 이뤄, 클리어브룩 건물 벽 한쪽에 붙어 있는 대형 빙고판 숫자를 지워나간다. 가로·세로·대각선으로 한 줄에 5개의 숫자를 먼저 지운 팀이 이기는 게임이다. 참가비는 25불(2만8000원). 클리어브룩은 ‘빙고게임’만으로 일년에 10만불(1억2000만원)을 번다. 클리어브룩 디렉터 마틴(Tracy Martin)씨는 “이곳 알링턴 하이츠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수요일은 빙고데이’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많다”며 “빙고 게임 외에도 골프 토너먼트, 볼링 게임, 와인 파티 등 일 년에 15개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고 말했다.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실시하자,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 역시 자연스레 이뤄졌다. 옷 가게를 하는 주민은 수납·세탁일을 할 직원으로 클리어브룩에서 교육받은 장애인을 소개해달라고 했고, 가방을 만드는 중소기업에서는 고장 난 부품을 분리하는 일을 맡기기도 했다. 그렇게 170명의 중증장애인이 자립에 성공했다. 마틴씨는 “이벤트 입장료 수익금이나 중증장애인의 일자리 마련보다 더 큰 성과는 지역 주민들의 변화”라고 전했다. 알링턴 하이츠 지역 주민들이 꼭 클리어브룩이 하는 행사가 아니더라도, 장애인을 위한 기부 자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NPO가 정부를 상대로 한 애드보커시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인식개선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속할 때 변화는 일어난다”며 한국 NPO를 향한 따뜻한 조언을 남겼다.
미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라이트하우스(Light House·시각장애인들의 자립을 돕는 미국의 최대 NPO)’에서 만난 클라우드(Jean Claude) 대표의 한마디가 기자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NPO는 시민들의 사랑을 먹고사는 단체입니다. NPO는 끊임없이 시민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구해야 합니다. 시민들의 마음이 열리고 나면, NPO의 자립과 성장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입니다.”
시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