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女 사회적기업 창업 ‘교육·돌봄’에 몰려… 경쟁 치열한 레드오션 넘는 해법은?

사회적경제서 여성 리더로 살아남기

10명 중 6명. 2016년 고용노동부 인증 사회적기업 종사자 중 여성의 비율은 63%(전체 3만9195명 중 2만4761명)다. 우리나라 여성 고용률(51.3%)을 웃도는 수치다. 그러나 사회적기업 ‘대표’의 성비를 살펴보면, 결과는 뒤집어진다. 사회적기업의 여성 CEO 비율은 35%(전체 1653명 중 571명)로, 20대는 2명, 30대는 41명으로 같은 연령 남성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중간관리자 이상으로 갈수록 여성의 비율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지적도 많다. 13년 넘게 여성 사회적기업가들을 육성 및 지원해온 구은경 ‘여성이만드는일과미래(이하 여성미래)’ 상임이사는 “사회적경제 조직 내에서도 저임금,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일자리는 여성의 몫”이라며 “사회적경제가 ‘여성 친화적’ 일자리라고 하지만 여성 종사자가 아무리 많아도 조직의 대표는 대부분 남성”이라고 덧붙였다.

 

◇교육·돌봄 서비스는 여성의 일… 여성 리더 가로막는 진입 장벽

뮤지컬 작가이자 세 아이의 엄마인 정가람 대표는 2017년 예술인 출신 경력 단절 여성들과 함께 문화예술협동조합 ‘아이야’를 설립했다. ‘지역에서 문화예술로 교감한다’는 목표로 야심 차게 시작했지만,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정 대표는 “조합원 모두 예술 창작자 출신이라 회계나 재무 등 기업 경영과 관련한 개념이 생소했다”며 “2013년부터 지역 사회적경제센터의 스터디 모임부터 사회적경제 협동아카데미 과정 등을 거쳐 가며 창업 준비에만 4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아이야를 비롯해 100곳 이상의 여성 사회적경제 조직을 인큐베이팅해온 구은경 상임이사는 “교육을 받고 오히려 창업을 포기하거나 한참 후에 재도전하는 등 창업을 결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서 “특히 우리나라는 창업 실패에 대한 낙인효과도 있어서 리더 경험이 적은 여성들에겐 심리적 장벽이 높다”고 설명했다.

여성 사회적기업가의 창업이 교육·돌봄 서비스 등 ‘생활’ 영역에 몰려 있는 것도 문제다. 진입이 쉬운 만큼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이라 투자 및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서 주목을 받기 어렵기 때문. 여성미래가 지난해 11월 펴낸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사회적경제 조직의 업종은 주로 교육서비스와 사회서비스(돌봄), 음식·외식업, 관광·문화예술, 수공예 등에 편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구은경 상임이사는 “대부분 여성들은 창업 할 때 먹고, 입고, 가르치는 등 자신과 가까운 생활이나 문화 영역을 많이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투자나 성과 측정에서는 ‘필요한 일이지만 혁신적이거나 중요하지 않다’며 후순위로 밀려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Getty Images Bank

심리적·물리적 어려움에도 이들이 기댈 수 있는 네트워크 역시 부족한 상황이다. 여성 기업가 숫자가 적은 데다가 ‘술자리’로 대표되는 남성 위주의 비공식적인 네트워크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많다. 경력단절여성을 사회적경제 일자리로 연결하는 위커넥트의 김미진 대표는 “창업 과정에서 주위에 모델로 삼을 만한 좋은 여성 선배나 동기들이 많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오호진 명랑캠페인 대표는 “상대적으로 남성들은 아낌없이 자료를 공유하고 사업에 끼워주는 식으로 서로 밀고 끌어주며 일한다”며 “여성 대표들은 협업하는 방법이 익숙지 않기도 하고, 과감하게 주고받는 협상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허나윤 작은여행 대표는 “현재 사회적경제 조직 사이에선 단순 친목 모임을 꾸리거나 대표 자격을 주고받는 형식적 네트워크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네트워크 강화, 투자 쿼터제… 여성 리더 양성책 검토해야

여성 리더가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현장에서는 여성 간의 ‘네트워크’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 여성미래는 올해 창업 3년 미만 여성 대표들의 네트워크인 ‘밥 먹는 모임’을 시작했다. 월 1회 같은 업종의 여성 대표자끼리 함께 식사하며 서로 지지하고 협업한다. 정가람 대표도 이곳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여성 창업가 선배 및 동지들과 어울리며, 사회적기업의 재무관리를 돕는 ‘푸른살림협동조합’을 만나 전문 컨설팅을 받고 조직도 재정비했다.

정 대표는 “단순히 해답만 제시하는 것이 아닌, 여성이 여성의 언어로 감정적 문제까지 보살펴주니 많은 도움이 됐다”며 “모임에서 만난 기업 2곳과 협업하면서 함께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은경 상임이사는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의사 결정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리더의 자리에서도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셜벤처 위커넥트는 매월 ‘북모임’과 업종별 전문가를 만나는 ‘오픈클래스’를 분기별로 열어 사회적경제 생태계 속 여성 진출을 응원하고 있다.ⓒ위커넥트

여성의 특수성을 고려한 투자 및 창업 지원 프로그램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허나윤 대표는 “해외에선 여성을 지원하거나 젠더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업들에 일정 비율을 할당해 자금을 지원하는 투자도 늘고 있다”며 “여성 사회적경제 조직을 위한 쿼터제나 여성 기업 인증 제도를 만드는 등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조금씩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여성미래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위탁으로 여성 사회적기업 창업팀을 육성하고 있다. ‘젠더 감수성’을 고려해 멘토를 섭외하고, 창업팀 내 ‘젠더 감수성 워크숍’도 진행한다. 임팩트투자사 중에서는 에스오피오오엔지(이하 sopoong)가 투자 항목과 기준에 여성 및 다양성을 고려한 ‘젠더 관점의 투자’를 시작했다. 사단법인 루트임팩트가 이달 론칭한 ‘임팩트커리어W는 경력 단절 여성을 위한 커리어 개발 및 일자리 매칭 프로그램으로, 에누마·사단법인 점프·진저티프로젝트·sopoong·이원코리아 등 5개 파트너 기관에 고용을 연결한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는 사회적경제 관련 통계와 법제도 속에 여성이 더 많이 등장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회적경제 기본법과 양성평등 기본 계획에 사회적경제 분야 여성을 정의함으로써 여성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은경 상임이사는 “매년 이뤄지는 사회적기업 실태 조사에도 남녀를 분리한 통계가 들어갈 필요가 있다”며 “사회적경제 영역의 가치 측정에도 여성이나 다양성 항목을 넣어 조사하는 등 설계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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