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예술로 사회 변화 만드는 영국 ‘체인지 컬렉티브(the Change Collective)’

지난 12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코워킹 스튜디오 ‘아트업서울(ART UP SEOUL) 성동’. 지난해 12월 28일 문을 연 이곳은 청년 예술가와 시민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예술경험 플랫폼’으로, 사회적기업 위누(weenu)가 서울시 청년혁신프로젝트(Remake city)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이날 오후 아트업서울에는 20여명의 국내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만드는 예술가 커뮤니티’란 이름으로 열린 주한영국문화원의 퍼블릭 토크(public talk)에 참석한 청중들이었다.

‘예술을 통한 사회 변화’에 관심이 있거나 현장에서 실천하고 있는 청중들을 이날의 연사 댄 보이든(Dan Boyden) 예술감독이 반갑게 맞았다. 그는 영국에서 사회변화를 위해 활동하는 예술가 그룹 ‘체인지 컬렉티브(the Change Collective)’의 예술감독으로, 영국문화원의 퍼실리테이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보이든 감독은 위누와 주한영국문화원이 공동 주최한 ‘액티브 시티즌 아트(Active Citizen Art)’ 프로그램을 위해 1월 한국을 방문, 국내 예술가들과 함께 지역을 변화시키기 위한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5일간의 워크숍을 진행했다. 특별히 대중에 공개된 퍼블릭 토크 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지난 12일, 서울 성동구 ‘아트업서울’에서 열린 퍼블릭 토크 현장에서 참가자들이 자기소개를 나누고 있다. ⓒ박혜연 기자

 

◇연극으로 사회 변두리에 한줄기 빛 비추다

 

“저는 청년, 난민, 형사사법제도에 연루된 사람들 등 사회 변두리에 있는 이들과 일해왔습니다. 소외되거나 위험에 처해있다고 간주되는 이들이죠. 제가 하는 일은 연극, 춤, 창의적 글쓰기, 시쓰기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이들의 태도나 사고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보이든 감독은 스스로를 ‘창의적 예술 활동가(Socially engaged practitioner)’로 소개했다. 그는 체인지 컬렉티브에 참여하기 전부터 영국을 비롯해 미국 뉴욕, 브라질 리우 등 세계 각지에서 프리랜서 형태로 예술 워크숍을 진행해왔다. 한때 배우로도 활동했던 그의 주 무기는 ‘연극’. 그중에서도 청소년·미혼모·교도소 재소자·노숙인 등 사회 소수계층과 함께 연극을 만들고 관중들에 이들이 직면하는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토론연극(forum theater)’이 대표적이다.

'토론연극'이란?
*토론연극: 1960~70년대에 왕성하게 활동했던 브라질의 정치가이자 사회적활동가 아우구스트 보알(Augusto Boal)이 만든 연극 형태로, 당시 브라질 정권이 연극을 강력한 위협으로 보고 그를 국외 추방하자, 사회 약자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면서 그들이 직면한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보알은 이를 ‘혁명을 위한 리허설(rehearsal for the revolution)’이라 일컫기도 했다.

“뉴욕에 있을 때 ‘억압받는 자들의 연극(Theater of the Oppressed)’에서 여러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노숙자 지원기관, 청년 LGBT(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 등 성적소수자를 이르는 말) 커뮤니티 등과 토론연극을 하면서, 생활 속 문제에 대해 관중들과 토론하고 긍정적인 해결책을 찾았죠. 관중을 무대로 불러 직접 캐릭터를 연기해보도록 하고요. 같은 방법론으로 노숙인들과 연극을 만드는 ‘카드보드 시티즌(Cardboard citizen)’ 극단에서도 몸 담고 활동했습니다.”

댄 보이든(Dan Boyden) 체인지 컬렉티브 예술감독 ⓒ박혜연 기자

예술은 다양한 계층과 소통하는 강력한 무기가 됐다. 브라질 리우에서는 마약 밀매에 가담하던 빈민가 청소년들과 힙합과 삼바를 이용한 ‘아프로 레게’ 워크숍을, 영국 브리스톨에서는 10대 미혼모들과 함께 코미디 뮤지컬을 제작했다. 리우의 청소년들은 마약밀매 활동 대신, 음악과 힙합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찾았다. 임신으로 학업을 중단했던 미혼모들은 관중들에게 젊은 엄마의 삶을 나눴다.

청중 가운데 소년교도소에서 유사한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는 예술가가 “수감자 및 직원들과 친밀한 관계 형성이 어려웠는데 비슷한 어려움이 없었냐”고 질문했다. 보이든 감독은 “나 역시 70~80% 정도는 매우 힘든 과정이었다”고 답했다. 그는 “이들과 어떻게 신뢰를 형성할 것인지도 문제인데 중요한 첫번째 키워드는 ‘공감'”이라며 “몇 시간, 몇 주가 걸리진 모르지만 자존감을 심어주고 인간적인 측면으로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술을 매개로 사회 계층 잇는 ‘연결고리’로

 

우리는 ‘예술은 변혁적일 수 있다’는 믿음 아래, 다양한 신조를 가지고 섹터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예술가 그룹입니다.

(We’re a group of highly experienced arts practitioners, working across sectors and with different disciplines, connected through a belief that the arts can be transformative.)

─ 체인지 컬렉티브 홈페이지의 소개 중에서
 

“어렸을 때는 누구나 놀이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탐구하지만, 나이가 들면 ‘놀이는 아이들의 것’’예술은 예술가의 것’이라 말하며 놀이를 멈춰버립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창조적 가능성과 예술적 기질을 가지고 있고, 예술 활동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삶의 새로운 방향을 탐색할 수 있습니다. 늘 원하는 결과를 얻지는 못해도, 토론연극, 입법연극 등 활동을 계속해온 이유죠.”

이후에도 남수단, 에티오피아 등에서 소외된 이들을 만나오던 보이든 감독은 자신처럼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연결하는 단체가 필요함을 느꼈다. 창조적 예술 활동가 그룹 ‘체인지 컬렉티브’의 시작이었다. 그는 2007년 프로젝트 형태로 시작됐던 체인지 컬렉티브를 구체화해 영국에서 사회적 활동의 최전방에 있는 예술가 및 활동가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시인과 플라멩코 댄서,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거리 연주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의 예술가들이 모여 들었다.

“저마다 예술 활동을 하다가도 분기별로 만나 작업을 공유하고, 우리의 기술과 경험을 통합해 더 큰 힘을 발휘할 방안을 탐구합니다. 예를 들어, 연극 연출가인 저는 플라밍고 무용수와 시간을 보낸 뒤, 이 경험이나 아이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이 무엇일까를 고민하죠. 사회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저희는 예술을 통해서만 이런 문제에 접근하고 또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국 런던 서쪽의 일링(Ealing) 지역에서 지역 공원인 ‘월폴 공원'(Walpole Park)을 알리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체인지 컬렉티브의 예술가. ⓒthe Change Collective

체인지 컬렉티브의 목표는 예술과 접목시킨 워크숍과 프로젝트, 행사 등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고 복잡한 사회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것. 영국에서는 이러한 예술 분야를 ‘참여형 예술가(participatory artist)’ 혹은 ‘지역사회 예술(community art)’ 등으로 부른다. 이들은 지역 예술가들이 서로를 지지하는 자조적 모임부터 지역민들이 지역 내 공원의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공원의 역사를 이해하도록 하는 프로젝트까지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현재까지는 영국 내 복권기금(heritage lottery fund)과 예술위원회 등 각종 단체의 지원금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영국문화원 등과 협업하며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고 있다.

“예술이 다양한 사회적 구성원들의 간극을 줄이는 새로운 언어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보고, 계속 독특한 접근법을 공부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예술을 넘어 과학, 기술, 수학 등 다양한 섹터를 아우르는 혁신에 어떻게 예술가의 시선을 적용할 수 있을지도 고민하고 있어요. 영국에도 CSR이 굉장히 활발한데, 이와 연계해 지속가능하면서도 지역사회와 긴밀히 작업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설계해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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