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자신의 재능 가꿔 다시 사회 속으로… ‘자립의 꿈’ 펼쳐요

소년원 출원 청소년 자립 현장 르포
의왕청소년자립생활관 자립 의지·동기 확실한아이들이 모여 생활해
취업·교육 중 한가지 이상 진행하며 변화 보여줘야
창업·보육 교육 통해 성공적인 사회 복귀 유도
하지만 사회의 편견 심해 자립관 아이들 받아주는 주변 기업 별로 없어

위에서부터 ①올 초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재)소년보호협회 의왕청소년자립생활관 전경.②③의왕청소년자립생활관 아이들의 생활 모습.
위에서부터 ①올 초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재)소년보호협회 의왕청소년자립생활관 전경.②③의왕청소년자립생활관 아이들의 생활 모습.

찬성이(가명·만21세)가 태어나서 처음 본 것은 ‘술 먹는 아빠’였다. 엄마는 찬성이가 돌이 되기도 전에 이혼해 자취를 감췄다. 술 취한 아빠는 항상 창문을 깼다. 창문이 다 깨지고 나면 찬성이 차례였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아이에게 구타가 이어졌다. 집이 싫은 아이에게 학교 또한 위안이 되지 못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당한 폭행은 ‘왕따’로 이어졌고, 이는 중학교 때까지 계속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염산을 먹었던 게 제일 심했어요. 입속에서 피가 안 멈춰서 철철 흘리며 교무실까지 걸어갔죠.”

덤덤한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야속함이 찬성이의 유년기를 대변한다. 학대와 방임, 그리고 왕따는 자연스럽게 일탈로 이어졌다. 집과 학교가 싫어 거리로 나온 찬성이는 이내 경찰서를 들락날락하는 ‘문제 청소년’이 됐고, 어울려 다니던 친구들이 벌인 절도 사건을 뒤집어쓰고 소년원에 들어갔다. 다행히 찬성이는 소년원에서 마음을 다잡았다.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았고 소년원 생활을 통해 재능을 발견해 사회 속으로 뛰어들겠다는 결심도 가졌다. 찬성이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다. 청소년자립생활관에는 찬성이들이 모여 자립생활의 꿈을 다지고 있다.

의왕시 고천동에 위치한 의왕청소년자립생활관(이하 자립관)은 시설 좋은 연수원 같았다. 일요일 오후, 자립관을 지키고 있던 아이는 찬성이와 형주(가명)뿐이었다. 전날 밤 모임이 있어 늦잠을 잤다는 이들은 자장밥과 불고기로 첫 끼니를 시작했다. 부엌 냉장고에 붙어있는 메뉴 그대로다. 자장소스는 인스턴트지만, 불고기는 자립관 행정지원실장님이 손수 재운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어색함이 배어 있는 기자의 질문에 “일요일엔 잘 없어요. 아마 교회 갔을 거예요”라는 찬성이의 대답이 이어졌다.

소년원 출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지만, 의외로 규칙은 엄격하지 않다. 의왕청소년자립생활관 양승원 관장은 “여기 있는 아이들은 자립 의지와 동기가 확실한 애들이기 때문에 그 나이 때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주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해가 질 무렵 아이들이 모두 귀가하자 자립관에 활기가 돈다. 몰래 자기 옷을 입고 나간 준수(가명·만20세)와 승강이를 벌이는 형주의 모습은 여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형제와 닮아있다. 아이들은 TV를 보거나 PC게임을 하며 여유 있는 일요일 저녁을 보낸다. 일요일의 여유는 주중을 보람 있게 보내기 때문에 가능하다. 양 관장은 “아이들은 취업이든 교육이든, 반드시 한 가지 이상을 진행해야 한다”면서 “변화가 없는 아이들은 충분한 사례 판단을 통해 더 적합한 곳으로 보내진다”고 덧붙였다.

지역의 자원봉사자들이 제공한 반찬으로 차려진 저녁 식탁, 준수의 밥그릇이 산을 이룬다. 사장님의 배려로 인근의 도너츠 제조업체인 ‘벨리도너츠’에서 일하고 있는 준수는 평일 새벽 5시부터 오후 10시 정도까지 일한다. “와, 일을 열심히 했더니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파”라는 말과 함께 한 그릇 가득 담긴 밥을 꿀꺽 삼키는 준수의 모습에서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준수는 많은 업무량을 자원했다. 잡념을 없애고, 돈도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옆에 있던 형주는 “쟤, 돈 되게 많이 벌어요”라고 시샘하듯 거든다.

 일반 청소년들과 자립시설 청소년들이 한마음으로 준비하는 드림콘서트. /김관진 실용음악학원 제공

일반 청소년들과 자립시설 청소년들이 한마음으로 준비하는 드림콘서트. /김관진 실용음악학원 제공

청소년자립생활관을 운영하는 (재)한국소년보호협회는 이들의 자립 의지를 좀 더 현실적으로 돕는다. 바로 창업보육기업을 통해서다. 창업보육기업은 이들이 창업할 수 있도록 교육·실습·운영 경험을 제공하고, 창업 마인드를 축적시켜 성공적인 사회 복귀를 유도하는 사업이다. 현재 ‘오션베이커리’와 인쇄출판 기업 ‘엔씨위즈’ 등 두 곳을 아이들의 취업처 및 실습처로 활용을 하고 있다. 검정고시를 준비 중인 자립관의 막내 석현이(가명·만16세)는 이를 통해 취업준비도 병행할 수 있게 됐다. 허나 이들의 취업이 모두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창업보육기업의 수용 인원이 적은 데다, 앞서 언급한 ‘벨리도너츠’처럼, 열린 마음으로 자립관 아이들을 받아주는 지역 사회의 기업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양 관장은 “인근 지역에 취업 알선을 가면, 우리 사회가 가진 편견을 정말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일은 고사하고 문제나 안 일으키면 다행이지 않으냐는 반응이 지배적이라는 것. “힘들게 동기를 얻은 아이들이 그런 선입견으로 의지가 꺾이지나 않을까”하는 것이 양 관장의 우려다.

늦은 밤 찬성이 방을 찾았다. 찬성이는 요즘 29일 열리는 ‘청소년드림콘서트’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분당의 김관진실용음악학원에서 주관하는 이 행사에서 찬성이를 비롯, 자립관 아이 4명이 일반 아이 40여명과 섞여 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찬성이는 오는 8월이면 입대가 예정되어 있다. 이번 공연만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 제대 후에는 나이 제한(만23세)에 걸려 자립관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찬성이의 꿈은 공방에서 일하는 것이다. 손재주도 좋고, 무엇보다 자기가 만든 게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좋단다.

“아버지요? 저를 낳아준 분인데요. 제가 열심히 일해서 편히 모셔야죠.”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찬성이의 대답이 묘한 여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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