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계속 오르는 생활비 때문에 한겨울 따뜻한 물도 포기했다

에너지 빈곤층 난방비 지원 실태
에너지 소외 계층 120만명 정도 추정
빈곤 가정 주택, 에너지효율 낮아 수리 필요한 상황

새벽 2시 30분 강원도 고성. 유림이 아버지는 신문배달에 나선다. 몸은 밖에 있지만 집 안이 더 걱정이다. 허리까지 눈이 쌓이지만 마음 놓고 불을 땔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름값이 무서워 보일러 설치를 못해서 다섯 식구는 땔감 몇 조각에 의지해 겨울을 보낸다. 며칠 전 뉴스에선 난방을 위해 켜두었던 낚시용 버너가 폭발해 시각 장애를 가진 청소년이 생명을 잃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차가운 바닥에서 매서운 겨울바람을 참아내는 이웃이 있습니다. 이들의 따뜻한 겨울 나기를 위한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기아대책 제공
차가운 바닥에서 매서운 겨울바람을 참아내는 이웃이 있습니다. 이들의 따뜻한 겨울 나기를 위한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기아대책 제공

지금 한국에는 난방 등을 위해 적절한 수준의 에너지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사실은 정확한 수 조차 파악되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에너지로부터 소외된 계층을 ‘에너지빈곤층’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는 에너지 구입비가 총 가구 소득의 10%를 초과하는 가정을 의미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이렇게 정의된 에너지 빈곤층이 120만명 정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 구입비가 총 가구 소득의 10%를 초과하는 가정’이라는 정의는 실질적으로 에너지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설명하지 못한다.

“만약에 최저생계비 수준의 생활을 하는 독거노인이 한 달에 에너지비용 지출을 5만~6만원만 한다고 가정을 해보면, 이분은 현재의 개념 안에서는 에너지 빈곤층이 아니게 됩니다. 에너지 구입비용을 너무 적게 쓰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분은 절대적인 에너지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금의 정의는 빈곤이라는 문제를 제대로 담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한국에너지재단의 최영선 본부장은 에너지 빈곤에 대해 제대로 정의를 내리고 그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얘기했다.

예를 들면 영국은 에너지 빈곤층을 정의하면서 ‘거실의 온도를 섭씨 21도, 거실 이외의 온도를 섭씨 10도로 유지하기 위해’ 가구소득의 10% 이상을 난방비로 사용하는 가구라고 명시해 구체적으로 최저 수준의 에너지 생활을 정의하고 있다. 에너지 빈곤문제에 대한 정책 목표가 더욱 분명해질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저소득층 에너지 지원은 네 가지 정도의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최저생계비에 광열비를 포함시키는 방식, 저소득층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효율을 개선시키는 방식, 에너지요금을 할인해주거나 보조해주는 방식, 에너지비용을 내지 못하는 저소득 계층에 대한 공급 중단을 유예하는 방식 등이다. 필요한 조치들이긴 하지만 그 효과는 의문이다.

기아대책의 신소연 간사는 “최저생계비에 광열비를 포함시킨다고 해서 에너지 빈곤층의 에너지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최저생계비에 광열비가 포함되어 있지만 저소득 계층에 있어 광열비는 음식료·의료비 등에 비해 우선순위가 낮습니다. 그래서 광열비를 줄여 생존을 영위하는 세대가 많습니다.”

저가 에너지의 공급망이 충분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연간 연료비 부담이 낮은 심야전기보일러나 도시가스보일러는 에너지기기의 설치비 부담이 크다. 연간 연료비 부담이 51만5000원 정도 되는 심야전기보일러의 기기 설치비는 73만원 수준, 연간 연료비 부담이 98만9000원 정도 되는 도시가스보일러의 설치비는 15만원 수준이다. 반면 연간 연료비 부담이 132만원 수준으로 가장 높은 석유보일러는 설치비가 9만원 수준이다. 저소득 계층 입장에선 설치를 위해 한 번에 목돈이 들어가는 심야전기보일러나 지역적으로 공급망이 확보되지 않는 도시가스보일러보다는 석유보일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결국 저소득 계층은 비싼 연료를 사용해야 하는 환경에 놓인 채 비싼 연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에너지 사용을 줄이게 된다. 악순환이다.

또한 주거의 에너지효율이 낮은 것도 시급한 문제다.

최영선 본부장은 “빈곤 가정이 에너지 빈곤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빈곤 가정 주택의 에너지효율이 높아야 하는데 현실은 이와 반대”라며 “저소득층의 주택 중 에너지효율 개선과 안전성 향상을 위해 주택 수리가 필요한 가구 수를 52만가구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며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정부나 민간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너지기본법 제4조 5항은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에너지 공급자는 빈곤층 등 모든 국민에 대한 에너지의 보편적 공급에 기여하여야 함’이라고 명시했다. 과연 잘 지켜지고 있을까?

정부가 최저생계비에 광열비 항목을 포함하는 것 외에 에너지 복지를 위해 주로 사용하는 방식은 한국전력 등 에너지 공급자에게 저소득 계층의 에너지요금을 감면해주라는 식의 떠넘기기다. 그러나 모순이 있다. 예를 들어 기초수급자가 한국전력에 신청해서 전기요금 감면을 받으려면 계량기가 따로 있어야 한다. 수급자 중 얼마나 되는 이들이 이런 혜택을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정부가 에너지 공급자에게 에너지 복지를 떠넘기니 자연스럽게 사각지대도 생긴다.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도시가스, 지역난방, 연탄, 전기는 요금 감면 혜택 등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하지만 원료의 수입부터 판매까지 100% 민간에 사업권이 있는 등유 난방의 경우는 에너지 복지가 민간기업에 맡겨진 꼴이다. 요금 감면이 가장 필요한 등유 난방이 요금 감면이 가장 힘든 모순적인 상황이다. 민간의 나눔도 비슷하다.

“차상위 계층과 수급자를 포함해 국내에 연탄을 사용하는 가정이 5만 가구가 안 됩니다. 반면 기름을 사용하는 가정은 35만 가구가 넘습니다. 연탄이 기름보다 훨씬 싼 연료지만 연말에 흔히 일어나는 봉사활동은 왜인지 연탄 나누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아대책의 신소연 간사는 “올해는 유가 상승과 공공요금 인상 등으로 서민과 저소득층의 지출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특히 저소득층은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최저생계비로 겨울을 나야 하는데 물가가 높아진 탓에 생활비 부담이 커져 난방 사용에 대한 고민이 커진 상황”이라며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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