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도 누군가의 아들, 딸입니다”
新사각지대···교도소 수감자 자녀
“늘 가슴이 조마조마 합니다. 애들 아빠를 찾을 때면 미쳐버릴 것 같아요. 막내는 아빠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데 조금 더 크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최근 김성혜(가명·48)씨는 학교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담임선생님은 둘째 아들의 무단 결석과 절도 소식을 전하며, 학교 방문을 요청했다. 가정형편상 잠시라도 일을 쉴 수 없는 그녀는 ‘죄송하다’는 말로 방문을 미룰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김씨는 아들의 비행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고 있었다. 남편이 세 자녀를 두고 교도소에 갔을 때부터였다. 계속된 아들의 방황, 사회적 편견에 그녀의 가슴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6만명. 매년 교도소에 수감되는 수용자(재소자)의 자녀 숫자다(민간의 추정치로 현재까지 정부 정식 통계는 없음). 이들은 부모의 수감 이후 정서적 문제를 겪으며 살아간다. 부모가 범죄자란 이유로 떳떳하게 살아갈 권리를 잃고, 가해자로 취급받고 있는 것. 실제로 수감자 자녀의 40% 이상이 말이 없어지거나 우울증(26%)을 겪는 등 심리·정서적으로 부적응 행동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경제적 어려움도 더해진다. 수용자 가정의 16.5%가 기초생활수급자다. 2012년 우리나라의 전체 기초생활보장 수급률이 2.7%인 것과 비교할 때 8배나 높다.
◇ 말뿐인 정책 발표···수감자 자녀 지원 시급해
지난 2011년 10월, 정부는 수용자 가족을 지원하는 특별 예산을 꾸리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이들을 위한 제대로된 제도와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2002년 미국 정부가 수형자 자녀를 위한 프로그램 지원 비용으로 500만 달러를 지원한 것과 대조적이다. 국내 최초로 수감자 자녀의 인권 보호와 지원을 시작한 사단법인 ‘세움’의 이경림 이사는 “자녀들이 ‘강’을 건너기 전에 맞춤형 지원과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모의 수감으로 아동들은 사회의 부정적 시선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는 것. 이 이사는 “미래에 대한 불안은 낮은 자아존중으로 이어진다”며 “’할 수 없다’는 인식이 커진 이후엔 뒤늦은 지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교도소 수감으로 인한 부모의 부재는 특히 미성년 자녀의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미국 및 영국에선 수용자 자녀의 범죄율이 일반 가정의 5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낸 바 있다. 부모의 범죄가 아동의 범죄를 유발할 상관성이 높다는 것. 전문가들은 “부모의 부재와 그로인한 관계성 악화는 미성년 자녀의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서 “부모가 수감되면 자녀는 한쪽 부모 또는 조부모에 의해 양육되는 한부모 가정 아동으로 성장하게 되므로, 경제적 어려움을 동반하게 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성동구치소에서 미결수용자 10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수감 전 자녀 부양비를 ‘혼자서 부담’하거나 ‘배우자와 함께 부담’한 이들이 90.5%에 달했다. 대다수가 자녀 양육비를 감당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하게 되는 것. 박선영 한세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수용자 가족들은 이미 소득 빈곤계층에 포함되고, 사회적 편견과 제도의 미비로 ‘특수 취약계층’이 돼버린다”면서 “범죄의 사회적비용이 연간 158조원에 이르는데, 부모가 교도소에 수감되기 전부터 출소할 때까지 자녀를 위한 단계별 지원과 보호가 있다면 부모의 재범은 물론, 혹시 모를 수감자 자녀를 향한 범죄의 대물림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아이들을 두 번 죽이는 사회적 편견
“남편 죽인 여자! 살인마! 감옥에서 나오면 동네에 발도 못 붙이게 하자.”
오명혜(가명·45)씨를 향한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과격했다. 평소엔 자상하지만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남편 때문에 오씨와 아들들은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지난 2014년, 알코올 중독 남편의 폭행을 참다 못한 오씨는 흉기를 휘둘렀고, 살인죄로 교도소에 수감되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이 ‘감옥에서 나오면 동네에 발도 못 붙이게 하자’고 말할 때마다 형제는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선 부모의 범죄로부터 자녀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게 현실. 반면 해외는 다르다. 1998년 미국의 아칸소 고등학교의 총기 난사 사건 때, 가해 소년의 가족에겐 욕설과 비방 대신 격려의 편지들이 발송됐다. ‘지금은 당신의 아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시기이니, 자주 면회를 가세요’라며 수감자뿐 아니라 그 가족에 대한 배려와 걱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박선영 한세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아동에게 가장 트라우마로 남는 순간은 부모의 체포현장을 직접 목격했을 때”라며 “수용자 자녀를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UN 아동권리협약 제 3조 1항은 ‘법원 등에 의해 실시되는 아동에 관한 모든 활동에서 아동의 최선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폴란드 경찰은 아동을 부모의 체포 현장과 분리하도록 교육받고, 노르웨이는 사회복지국 직원과 동행해 아동을 보호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있다. 반면 한국에선 체포현장에 남겨진 아동을 양육할 보호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 이에 수감자 자녀들은 집에 틀어박혀 사회와 고립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 부모 만날 권리, 단계별 지원책 마련해야
수감된 부모와 만날 권리인 ‘면접권’ 역시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국내 미성년 자녀의 면회 경험은 37.3%(수용자가족방문실태 및 그 효과, 전영실‧신연희)에 불과하다. 전국 교도소 등 관련 시설 52개 중 철창이 아닌 아동 면회에 적합한 ‘가족 접견실’을 갗춘 곳도 25%(13개)뿐이다. 부모의 수감이유를 정확히 듣지 못한 아동의 경우, 부모의 수감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또한 수감된
부모라도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할 때, 오히려 자녀의 성장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UN아동권리협약 9조에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모든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살아야 하며, 부모와 이별한 아이들은 정기적으로 엄마 아빠를 모두 만날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된 이유도 바로 이때문이다. 이경림 세움 상임이사는 “영국의 연구를 보면, 교도소에 수감된 부모를 아이가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좋다고 분석한다”면서 “교도소에 수감된 지 모르는 어린 자녀들은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 떠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우리나라엔 수용자 자녀를 위한 면접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서 “월 4~5회까지로 정해져있다”고 설명했다.
체포 단계부터 재판, 출소에 이르는 전 과정에 걸친 지원 및 보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법무법인 지평이 설립한 사단법인 ‘두루’에서 공익 변론을 하고 있는 강정은 변호사는 “부모를 체포할 때 미성년 자녀를 고려한 ‘체포절차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수감자가 유일한 양육자일 경우 남겨진 아동을 보호할 사람을 지정해야한다”면서 “형이 확정된 후엔 자녀에게 면접권과 형사사법과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자녀의 학교 및 지역사회 멘토링을 통해 도움을 지속해야한다”고 설명했다. 강 변호사는 “경찰, 검사, 교도관 등 법을 집행하는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수감자 자녀를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매뉴얼과 교육이 마련돼야한다”고 설명했다.
윤정혜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6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