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은둔 청년 4인의 고백
“너 같은 애는 취업 못해.”
고립은둔 청년 당사자 김유민(가명) 씨가 대학교수에 들었던 폭언이다. 김씨는 교수의 지속적인 폭언을 시작으로 고립은둔 생활이 시작됐다고 고백했다.
청년재단이 지난 12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연 ‘고립은둔 청년 삶의 유형별 지원 방안 포럼’에서 김씨와 같은 고립은둔 청년 당사자 4명이 자신이 고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경험, 필요한 지원책을 직접 이야기했다. 현장에서 울려 퍼진 이들의 목소리를 더나은미래가 취재해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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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언과 가정폭력 속에서 무너졌다”
김유민(가명) 씨는 대학 시절 교수의 반복된 폭언에 지쳐 번아웃을 겪었다. 인간관계를 모두 끊고 집에만 머물렀다. 무기력한 생활은 가족과의 갈등으로 이어졌고,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백혈병 진단까지 받았다.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가족의 언어적·신체적 폭력이 더해지면서 정신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됐어요. 정신과 상담도 받았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그를 구한 건 같은 가정폭력 경험을 가진 상담사였다. 상담을 통해 자신의 문제 원인이 단순한 의지 부족이 아니라 오랜 가정폭력 때문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 가정폭력 피해 시설에서 2년간 지내며 독립을 준비했고, 현재는 프리랜서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상담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김씨는 “고립 청년을 위한 전문 센터 설립과 맞춤형 상담이 필요하다”며 “15분 출근제, 의료비 지원, 독립 지원 정책 같은 현실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학교폭력 피해 후유증…고립과 생계 문제 겹쳐
이정호(가명) 씨는 중학교 시절 학교폭력을 당한 후 가족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가해자들과의 법적 다툼이 이어지면서 가족은 큰 스트레스를 받았고, 결국 와해됐다.
“가족이 무너진 데 대한 죄책감으로 방에만 틀어박혔어요. 고등학교 때부터는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했죠. 대학에 진학했지만 학업과 일을 병행할 수 없어 중퇴해야 했어요.”
2022년, 그는 가족과 완전히 연을 끊고 독립했다. 그러나 생활비 부담에 다시 은둔했고, 극심한 불안감 속에서 자해와 자살 시도까지 했다. 그를 붙잡아 준 건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였다. 상담과 프로그램을 통해 활력을 되찾았지만, 지원이 끝나자 다시 생계 문제로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생계유지가 급한 청년들에게 단순한 취업 지원이 아니라, 생활을 이어가면서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해요. 정신 건강 지원도 꾸준히 이뤄져야 합니다.”
◇ 공무원 시험 실패, 7년간 고립…“이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조현지(가명) 씨는 공무원 시험을 7년간 준비했지만 계속된 실패로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소득이 거의 없어 부모님께 용돈을 받으며 살았어요. 친구들과의 모임도 부담돼 점점 관계가 끊어졌죠.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이대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만 했어요.”
그에게 전환점이 된 건 청년재단의 ‘고립 청년 일경험 프로그램’이었다. 실무 능력과 사회생활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고, 심리 상담을 통해 감정 조절법도 익혔다. 무엇보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사회로 다시 나갈 용기를 얻었다.
“결국 취업에 성공했고 지금은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요. 은둔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실패해도 괜찮다’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과 지속적인 심리 상담 지원입니다.”
◇ 군 복무 후 자연스럽게 고립…“사회 복귀가 막막했다”
주민상(가명) 씨는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면서 친구들과 생활 패턴이 달라졌다. 점점 연락이 줄었고, 혼자 있는 것이 익숙해졌다.
“복무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예전처럼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드는 게 부담스럽더라고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었지만 경제적으로 부모님께 의존하는 현실이 답답했어요.”
그러던 중 몇몇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현재는 웹 개발을 배우며 IT·물류·유통 분야 취업을 준비 중이다.
“고립 청년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경제적 자립이에요. 일자리 확보와 직무 교육 같은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또한 수도권과 지방 간 지원 격차를 줄이고, 온라인 교육·화상 멘토링·취업 연계 프로그램이 활성화돼야 합니다.”
한편, 이날 포럼에서는 청년재단과 서울여자대학교 산학협력단이 공동으로 진행한 ‘청년고립 유형화’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이에 따르면, 고립은둔 청년의 삶의 유형은 ▲건강취약형 ▲독립생계채무형 ▲미취업빈곤형 ▲가족의존형 등 4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연구에 참여한 이해님 동국대학교 교수는 “같은 유형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고립은둔 청년들에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