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고령화, 지방소멸은 사이좋게 붙어 다닌다. 세 단어를 조합하면,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노인들만 남아 있으니 지방은 곧 소멸할 거라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이다. 이중 서울은 0.55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고 행안부에서 인구감소 지역으로 지정한 79곳(89개 중 대도시와 부산, 대구,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제외)의 평균은 0.96명이다. 현재 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대체출산율 2.1명보다는 모두 낮지만 저출산 때문에 지방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지방의 인구가 적어서 출생아 수가 적을 뿐이지 출산율로 따지면 서울이 가장 위험한 인구감소 지역이다. 아이를 낳지 않아도 서울 인구가 급감하지 않는 이유는 지방에서 나고 자란 청소년들이 서울로 떠나기 때문이다.
◇ 4명 중 1명은 둥지를 떠난다
지방에는 대학 입시를 도와줄 유명 학원이나 일타강사가 없다. 부족한 학습 환경을 보완하기 위해 대부분의 지자체는 수십억 원의 장학기금을 조성하고 어떤 지자체는 유명 입시 학원과 계약을 맺어 중고생들의 입시를 돕기도 한다. 이렇게 공부한 청소년은 스무 살에 서울로 떠나 대학에 다니고 취업해서 결혼하며 자리를 잡는다.
어느 지역의 15~19세 인구를 5년 후 20~24세 인구와 비교해 감소한 비율을 ‘출가율’이라고 한다면, 79개 인구감소 지역의 22년 평균 출가율은 23%이다. (참고로 서울은 17년 15~19세 49만 6000명에서 22년 20~24세 61만 3000명으로 24% 증가했다.)
7개 도별로 가장 높은 출가율을 나타낸 곳은 강원 태백시, 충북 단양군, 충남 서천군, 전북 고창군, 전남 보성군, 경북 영양군, 경남 고성군으로 이들의 평균 출가율은 43.8%에 달한다.
출가율은 지역 자본의 유출로 이어진다. 지역에서 얻은 부모의 소득이 학비와 주거비로 빠져나가고 한 명이 먹고 입고 쓰던 생활비도 지역에서 사라진다. 상점과 기업의 매출이 감소하고 일자리가 줄어 서울로 가야만 하는 청년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친구들이 떠나면 남은 청년들은 패배감을 느끼기 쉽다. 그들이 낙오자라서 남은 것이 아니지만 주변 시선은 공부를 못 해서, 좋은 직장에 취업을 못해서 남은 것처럼 여긴다. 그래서 더 지역에 남고 싶지 않다고 한다.
◇ 출가율 잡는 정주율
일본 도시마구(豊島区)는 도쿄에서 유일하게 소멸위험 지역으로 지정된 곳이었다. 20~39세 여성인구가 2010년 5만 1000명에서 2040년 2만 4000명으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다카노 구청장은 긴급대책본부 ‘F1(Female One)’을 만들고 구청 여직원과 여성 구민 수십 명을 참여시켰다. 관내 여성의 거주 현황을 조사해 보니 60대와 40대의 5년 정주율은 각각 75%, 50%였으나 20~39세는 20%에 불과했다.
F1 회의 참여자들은 젊은 여성들의 최대 관심사로 유아원을 꼽았다. 당시 도시마구의 유아원 대기 아동은 270명에 달했다. ‘여성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유아원 확충에 총력을 기울였다. 보육시설 임차료를 건립 후 3년까지는 100%, 4년째부터는 85%를 지원하기로 했다. 심지어 유아원 직원들의 주택 임차료도 일부 지원했다. 이후 5년 간 50개의 유아원이 문을 열었다.
아이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놀 수 있는 공원도 늘렸다. 도시 곳곳에 크고 작은 공원을 만들고, 공원과 공원을 걷기 좋은 길로 이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과 주변 주민들까지 자주 찾는 곳이 되자 공원 주변으로 카페와 음식점들이 생기고 상권도 성장했다.
2014년 도시마구의 20~39세 여성인구는 4만 5000명이었으나 4년 후 4만 8000명으로 늘었다. 2022년 ‘닛케이 크로스우먼’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발표한 ‘일하면서 육아하기 좋은 도시’에서는 1위로 선정되었다.
◇ 둥지에 남은 4명 중 3명
도시마구는 떠난 사람보다 남은 사람에게 집중했다. 그들이 더 오래 잘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고 채우다 보니 더 많은 사람이 그곳에 살게 되었다.
지금 지방에 필요한 전략도 정주율이다. 지역을 떠나는 이유가 일자리도 없는 노잼도시이므로, 정주율을 높이기 위해 일자리를 만들고 문화시설을 늘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질문이 달라야 답이 다르다. 떠나는 이유가 아니라 남은 이유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일자리도 없고 재미도 없는 곳에 4명 중 3명이나 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전부 실업자가 아니라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근소한 차이지만 서울보다 출산율이 더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더 오래 머무르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렇게 물어야 지역에 남은 청년들이 패배감이 아니라 자긍심을 느낄 수 있다.
오승훈 공익마케팅스쿨 대표
필자 소개 마케팅은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믿음으로 ‘지역의 미래’를 탐구하는 오래된 마케터입니다. 현재 공익마케팅스쿨 대표이자 공익 싱크탱크 그룹 ‘더미래솔루션랩’의 전문위원으로, 공익 마케팅 전략과 지역경제 정책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슬리퍼 신은 경제학’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