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진실의 방] 이상한 어른

김시원 더나은미래 편집국장
김시원 더나은미래 편집국장

D는 대구에 있는 보육원에서 자랐다. 엄마 아빠 없는 저런 애랑은 친구 하면 안 돼. 어른들이 D를 가리키며 말했다. 중학생 때는 친구와 길을 걷고 있는데 승용차 한 대가 D를 향해 돌진했다. 급하게 피하다가 길바닥에 쓰러졌다. 차에서 내린 운전자는 친구 엄마였다. 아들과 친하게 지내는 게 못마땅해 차로 위협한 것이다.

그때부터 D는 어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어른이 말을 걸어오면 무조건 욕을 했다. 무시하는 말을 들으면 주먹을 날렸다. 보육원을 나와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배가 고파서 편의점에서 음식을 훔치고 싸움을 하다가 재판을 받았다. 소년원에만 세 번을 들락거렸다.

윤용범 청소년행복재단 사무총장을 만난 건 열아홉 살 때다. 서울소년원을 출소한 직후였다. 윤 총장이 말했다. 이제부터 날 ‘아버지’라고 불러라. 소년원에 세 번 다녀왔다고 하면 다들 사람 취급도 안 하는데 아버지는 무슨. 참 이상한 어른이네.

D가 차갑게 굴어도 윤 총장은 수시로 전화를 걸어 잘 지내나, 어려운 거 없나, 아버지가 도와줄게 하며 챙겼다. 1년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아버지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어느 날 윤 총장이 물었다. 아버지가 소원이 하나 있는데 고등학교에 다녀보면 안 되겠나? 스물한 살이라는 나이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건 아버지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서였다.

졸업장을 받던 날 아버지는 꽃다발을 사 들고 D를 찾아왔다. 기념으로 같이 짜장면을 먹었다. 이제 너도 스물네 살이니까 홀로서기를 준비해야 한다. 윤 총장의 말에 D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나 이제 여섯 살이에요. 아버지 만난 게 6년 전이니까 여섯 살이지. 그런데 왜 홀로서기 하라고 해요. 맞다, 네 말이 맞다. 아버지가 옆에 있을테니 걱정 마라. 둘은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가정밖청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6개월째 취재하고 있다. D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만약 좀 더 일찍, 좀 더 어릴 때 아버지를 만났더라면 어땠을까요. 내 손 잡아주는 어른이 한명이라도 곁에 있었다면 나는 다르게 살았을까요.

국내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의 수는 약 1만명이다. 정부는 보육원을 퇴소하는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한 경제적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돈과 집이 있다고 자립이 될까. 정말 필요한 건 ‘정서적 지원’이다. 자신을 무조건 사랑해주고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의 어른이 있으면 아이들은 일어선다. 보육원 퇴소 때는 늦다. 어릴 때 시작해야 한다. 1만명의 아이들을 품어줄 1만명의 ‘이상한 어른’이 필요하다.

김시원 편집국장 blindlett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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