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무국적자 위기’ 탈북자 2세, 공익소송으로 구제

한국에 사는 북한이탈주민 자녀가 탈북 후 북송된 어머니와의 친생자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받았다.

법무법인 태평양과 재단법인 동천은 “최근 서울가정법원 가사항소 1부가 북한이탈주민 자녀가 북한 주민인 어머니를 상대로 제기한 친생자관계존재확인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8일 밝혔다.

서울가정법원 전경.
서울가정법원 전경. /서울가정법원

사건 피고는 탈북 후 중국에서 원고(23)를 낳고 한국행을 시도했으나 중국에서 붙잡혀 북송됐다. 중국 동포인 원고의 아버지는 다른 북한이탈주민과 재혼했다. 원고는 2014년 한국에 입국하면서 계모의 친자녀로 주민등록해 한국 국적을 얻었다. 한국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계모의 학대가 이어졌다. 원고는 성인이 되자마자 학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모에 대해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이 인용되면서 모녀관계는 정리됐다. 문제는 원고의 한국 국적까지 상실됐다는 것이었다. 금융 거래나 휴대전화 사용, 장학금 수령 등이 어려워지면서 원고의 삶의 기반은 무너졌다. <관련기사 오갈 데 없는 북한이탈주민 2세 “나는 무국적자입니다”>

원고가 국적을 회복하려면 친모가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태평양과 동천은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이탈주민법률지원위원회 등과 협력해 2020년 12월 친생자관계확인 소송을 진행했다. 1심에서는 소각하 판결이 났다. 관계자 증언 외에 피고의 인적사항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고, 사실상 인적사항을 특정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는 이유였다. 항소심에서는 이를 뒤집고 친생자관계를 인정했다. 관계자들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사실에 대해 모순 없는 일관된 진술을 하고 있다는 점, 국가정보원 사실조회 회신 결과 등에 비췄을 때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는 점이 근거가 됐다. 북한에 있는 피고와 혈연관계를 입증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유전자 검사를 통해 원고와 피고 고종사촌 간의 친족관계를 확인한 점이 중요한 자료로 작용했다.

동천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남한 주민이 북한 주민과 가족관계를 확인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탈북 과정에서 생이별하게 된 남북한 주민들이 법률적으로나마 가족관계를 확인받고, 남북한 교류가 확대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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