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5일(화)

어차피 가루가 될 몸, 성한 곳은 나누고 가야죠

화상 환자 모임 ‘해바라기’ 오찬일 회장

오찬일씨는 "우리나라에선 인체조직이나 장기기증을 서약했어도 죽은 뒤 가족 동의가 필요하다"며 "두 딸들에게 틈날 때마다 '나 죽고 난 뒤엔 조직과 시신을 기증하라'고 세뇌시켰다"며 웃었다. /주선영 기자
오찬일씨는 “우리나라에선 인체조직이나 장기기증을 서약했어도 죽은 뒤 가족 동의가 필요하다”며 “두 딸들에게 틈날 때마다 ‘나 죽고 난 뒤엔 조직과 시신을 기증하라’고 세뇌시켰다”며 웃었다. /주선영 기자

“전신 화상 환자가 이식받으려면 수입된 이식재료 값만 5000만원 정도 듭니다. 한 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수십 차례 계속 수술해야 해요. 중환자실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는 돈이 없어서 가족들이 치료를 포기해 돌아가셨어요. 충남 태안의 어떤 분은 가족들이 적금 깨고, 퇴직금 가불받고, 동네에서 모금해서 겨우 5000만원을 만들어왔는데, 수술 시기를 3일 놓쳐 돌아가셨고요. 피부 기증이 훨씬 더 많아져야 합니다.”

화상 환자 자조 모임인 ‘해바라기’의 회장 오찬일(51·사진)씨가 바지 밑단과 양 소매를 걷어붙이자, 검붉은 화상 자국이 선연했다. 2007년 여름, 가게 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몸통을 제외한 전신 59%에, 3도 중화상을 입은 탓이다. 화상으로 눌어붙은 피부 때문에 관절 마디나 인대를 굽힐 수가 없었다. 손목부터 팔꿈치, 무릎, 목관절까지 마디마디 피부가 이식돼야 했다. 그는 “5000만원이 없어 여태껏 내 살을 떼내 수술해야 했는데, 자가수술이 가능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며 “이제 더는 몸에서 이식할 피부가 남아있지 않다”고 말했다. 오씨는 지난 7년간 24차례에 걸쳐 피부이식 재건수술을 받았다.

“피부 이식 수술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건 생살을 떼어내는 겁니다. 피부 이식재 가격이 낮아진다면, 이런 고통을 당할 필요가 없겠죠.”

이 때문에 오씨는 자칭 걸어다니는 ‘인체조직 기증’ 홍보대사다. 그의 주변에 기증을 서약한 사람이 100여명에 이른다.

“기회 될 때마다 사람들한테 화상 자국을 보여주면서 ‘나 같은 사람들 위해서 인체조직을 기증해달라’고 합니다. 국내엔 기증이 전무(全無)하다 보니 피부 이식재가 거의 전량 수입되는데, 가격이 엄청나거든요. 화상 입는 환자들이 대체로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인데, 그런 큰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죠. 결국 싼 옵션 찾아서 인공 이식재를 쓰거나, 자기 피부를 떼서 이식해야 해요. 기증이 지금보다 늘어난다면, 많은 화상 환자가 지금보다 훨씬 더 낮은 가격으로, 더 이른 시일 내에 치료받을 수 있을 겁니다.”

오씨는 지갑 속에서 인체조직 기증, 장기 기증, 의학용 시신 기증 등록 스티커를 꺼내보였다.

“지난해 제가 아는 두 아이가 골육종(희귀 뼈암)을 앓다가 죽었어요. 뼈 이식을 제때 받아 수술했다면, 살릴 수 있었을 텐데요. 화상 환자 중에는 피부 재이식을 원활하게 못 받아 정상생활이 어려운 경우도 많아요. 뼈나 피부 같은 인체조직이 다른 누군가에겐 간절한 생명일 수 있어요. 어차피 죽은 후에 가루가 될 텐데,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생명을 나누면 좋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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