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동네가 삭막해질까 걱정이 앞서요. 벌써 8년이나 된 ‘마을공동체’가 사라지거든요. 그동안 서울시 지원으로 주민들이 공동육아모임을 만들어서 아이들을 돌보고, 경력이 단절된 엄마들도 다시 일할 수 있었어요. 이제 마을 안에서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울타리가 없어진다고 하니 당황스럽고 속상해요.”(조정해·44·서울 중랑구)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이 도입 10년 만에 중단된다. 지난 9월 서울시의 사업 중단 통보 이후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쳤지만, 내년도 관련 예산이 0원으로 확정되면서 마을공동체 사업은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현재 서울시의회에는 ‘서울시마을공동체조례 폐지안’도 계류 중이다. 마을공동체 사업 주관 부서인 서울시 자치행정과는 올해 12월을 마지막으로 사업을 완전히 종료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도 운영을 중단한다. 송광남 서울시 자치행정과장은 16일 더나은미래와의 통화에서 “시는 10년간 시범사업을 진행하면서 마중물 역할을 해왔다”면서 “이제 시의 역할을 끝났고, 각 자치구에서 자유롭게 사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마을공동체 사업은 지역 공동체 활성화, 사회문제 해결 등을 목적으로 지난 2012년 도입됐다. 주민이 직접 계획을 수립하고 제안·실행하는 사업으로, 주민들은 ▲환경정화 ▲돌봄·봉사 ▲골목활성화 ▲나눔·공유 등을 주제로 사업을 기획해 진행했다. 지난 10년간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주민들은 1만여 건의 사업을 펼쳤고, 13만명 이상이 참여했다. 시는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를 설립해 행정기관과 민간 사이에서 정책 이해도를 높이고 소통을 지원하기도 했다.
서울을 제외한 강원이나 경북, 전남 등 다른 지자체에서는 마을공동체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14일 강원도는 ‘2023년 강원도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을 공고한다고 밝혔다.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목적으로 주민들의 다양한 마을활동을 지원한다는 취지다.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에 선정될 경우 공동체 활동에 필요한 비용을 1000만~400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전남도도 자립형 마을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지원사업 공모를 진행한다. 지역의 상황에 맞게 돌봄 활동, 인구소멸위기 대응 활동 등을 중심으로 추진한다.
서울 은평구에서 마을공동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장지원(45)씨는 “마을공동체가 사라지면 주민들이 똘똘 뭉쳐서 소통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모두 끊기게 될 것”이라면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역 내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해왔는데, 마을공동체가 없어지면 이런 활동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행정적인 요구도 많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을공동체 사업 폐지에 아쉬움을 표하는 건 주민들뿐만이 아니다. 10년간 주민들에 소통의 창구를 제공하고, 상담활동을 진행해온 지원센터 관계자들은 투입 예산 대비 효과가 큰 사업을 폐지하려는 시의 행보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총 예산은 44조2190억원이다. 이 중 마을공동체 사업 예산은 171억6200만원(약 0.04%)에 불과하다. 이는 지난해(310억800만원)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든 규모다.
사업을 폐지하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제호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사무국장은 “올해 4분기 지원센터 운영법인인 조계사와 서울시 자치행정과 팀장, 지원센터 노동위원장, 지원센터장 등이 모인 4자 간담회가 3차례가량 진행됐지만 사업과 조례를 폐지하는 명확한 이유를 들을 수 없었다”면서 “객관적인 평가 지표·기준 없이 시 내부적으로 판단해 사업과 조례를 없앤다는 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올초까지만 해도 마을공동체 사업을 지역공동체과에서 총괄했지만, 지난 8월 시 내 조직개편으로 자치행정과로 넘어갔고, 이후 한 달 만에 사업 종료를 통보했다”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매해 민간위탁기관의 인사, 회계, 사업 성과 등을 평가하는 종합성과평가를 시행한다. 지원센터는 지난해 85점, 올해 79점으로 통과 기준 점수인 75점을 모두 넘었다. 종합성과평가를 통과하면 재위탁을 할 수 있게 된다. 조 사무국장은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종합성과평가 점수도 기준을 넘었는데, 정작 사업 폐지와 같은 중대한 사안에서는 정당한 평가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했다.
송광남 자치행정과장은 “마을공동체 사업의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별도의 지표는 없다”면서도 “지난 10년간 제기된 다양한 대내외 비판과 감사평가를 감안해 사업을 종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업 효과도 미비해 이 사업을 지속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김수연 더나은미래 기자 y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