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 회사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기업은 직원에게 주인의식을 요구하지만 사실은 소모품으로 여기는 곳이 많다. 아마존, 페이스북 등 미국 테크기업들은 최근 수만 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트위터는 무려 50%나 해고했다. IT산업의 위기에 따른 대처방식이라지만, 성과·능력과 상관없이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었다. 파리목숨만도 못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트위터 직원을 대상으로 한 어느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인에게 트위터 취업을 권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2%, ‘해고 과정에서 회사가 직원의 품위를 지켜주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은 1%에 불과했다.
인사업무를 HR(human resources)이라고 한다. 인적 자원이다. 자본주의는 본래 자본 중심, 주주 중심의 기업을 전제한다. 자본은 노동을 고용하여 생산시설과 자원을 투입한 뒤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노동은 하나의 자원이다. 그런데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전환하면서 노사관계에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직원이 단순한 피용자가 아니라 중요한 이해관계자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2019년 미국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 성명에서도 ‘직원들에게 투자함(공정한 보상과 중요한 혜택 제공, 다양성과 포용성, 존엄과 존중을 촉진)’이 ‘주주를 위한 장기적 가치를 창출함’보다 훨씬 앞서서 강조되고 있다. 직원에게 투자하는 것(인적 자본), 공정한 보상과 혜택을 제공하는 것(근로조건), 직원을 존엄한 존재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인권경영), 다양하고 평등하며 포용적인 직장을 만드는 것(DE&I), 직원의 의견을 경영에 반영하는 것(경영관여) 등이 중요한 문제로 되고 있다.
인적 자본(human capital)이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근로자를 인적 자본으로 보는 것이다. 물적 자본(capital) 못지않게 인적 자본(labor)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1950년대 말 미국의 노동경제학자들이 쓰기 시작했는데 ESG 시대에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20년 8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인적 자본 공시를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다. ESG 공시 속도가 늦은 미국이 비재무요소 중 인적 자본 공시를 의무화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유럽지속가능성보고표준(ESRS),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준비하는 공시기준에서도 인적 자본은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의무공시가 아니더라도 투자자, 근로자, 소비자 등은 기업이 인적 자본에 관한 사항을 투명하게 자발적으로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2020년 3월경 300개 이상의 세계적 기관투자자들이 코로나 긴급성명을 발표했다. 코로나 위기를 이유로 직원들을 해고하지 말 것, 직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유급휴가를 줄 것, 직원 자녀의 돌봄을 지원할 것, 해고 노동자에게 건강보험을 지원할 것 등을 기업들에 권고하였다. 투자자들이 정의로워서 이런 권고를 한 것은 아니다. 코로나를 이유로 한 연쇄적 해고가 경제를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이다. ‘불황은 짧고 인재는 영원하다’는 말처럼 인적 자본이 중요해진 것이다. 구직자들은 기업을 고를 때 기업의 사회·환경적 지향을 고려한다. ESG를 잘하고 인적 자본을 중시하는 기업일수록 이직률이 낮고, 업무효율도 높다. 소비자와 투자자들 역시 인적 자본과 관련해 기업이 투명성과 책임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근로자 경영관여(employee engagement)라는 개념도 등장한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도와 같이 근로자가 자본가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경영에 참여하는 사례도 있고, 노동이사 제도와 같이 이사회에서 근로자를 대표하는 사람을 지명할 수도 있다. 반면 전통적 노조가 아닌 사회적 파트너십(social partnership)을 통해 사용자와 근로자 간의 경영협의가 이루어지는 경우, 근로자들이 이사회가 아닌 주주총회를 통해 경영관여를 하는 경우도 있다(우리사주제도). 전통적인 방식인 노동조합에 의한 단체협약도 물론 경영관여의 한 형태이다. 이해관계자의 하나인 근로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그만큼 중요해졌다.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는 지난 시기 많은 발전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한 부분도 많다. 근로자를 ‘비용’이 아닌 ‘자본’으로 보는 기업문화도 정립되어 있지 않다. 아직 많은 기업이 결사의 자유, 단체교섭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20년 기준 국내 노동조합 조직률은 14.2%다. 300명 이상 사업장도 51%가량은 노동조합이 없다. 민주적 노사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사업장도 많다. 일부 기업에서는 대립적 노사관계로 노사간 협력은 요원하다. 노사관계가 눈앞의 이익에 집중하여 지속가능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다. 비정규직, 기간제 근로자 그 밖의 사회적 소수자의 문제는 노사관계에서 외면되고 있다.
인사팀이 없는 회사가 많아지고 있다. 대신 피플팀(People), 피플앤컬쳐팀(People&Culture), 탤런트팀(Talent), 성장관리팀, 해피릴레이션팀(Happy Relation) 등이 등장했다. 명칭만큼이나 실제로 사람을 존중하고 직원의 재능을 살려주며 행복한 노사관계를 만드는 회사가 많아지면 좋겠다.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