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재취업… 여성 일자리는 늘 불안해요
여성을 지원하는 기업 사회공헌
여대생·청소년에게 멘토링 차세대 리더로 성장 도와
경력단절·저소득층 여성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취업 교육과 장학금 지원
“대기업 취업 직후, 비서로 근무하던 분이 결혼과 동시에 권고 사직을 당했단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때부터 여성으로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죠. 7년 후, 지인의 추천으로 참여한 프로그램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성주재단에서 진행하는 ‘글로벌 여성 리더십 프로그램’ 4기 과정을 수료한 이보람(34·카이스트 MBA 수료)씨의 말이다. 글로벌 여성 리더십 프로그램은 성주재단이 2010년부터 진행해온 인재 교육 사업이다. 1년에 3회씩 전문직 여성 30여명을 대상으로 다양한 강의와 멘토링을 제공한다.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 문애란 GM글로벌문화재단 이사장, 이경숙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등이 역대 강연자다. 이씨는 프로그램 수료 후 4기 수강생들을 모아 재능 나눔 강연을 기획, 3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후 카이스트 MBA에 진학한 그녀는 ‘여성 MBA 네트워크 모임’도 만들었다. 올해는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여성지도자회의(Global Summit of Women)’에서 한국 차세대 리더 그룹 대표를 맡았다. 국내 차세대 여성들이 만든 인형·모자·속옷 등 다양한 작품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부스를 직접 운영할 계획이다.
◇여성 리더십 키우는 기업 늘고 있다
여성 대통령 시대를 맞아 우수한 여성 인재를 발굴, 적극적으로 키우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기업 사회공헌에도 여성 리더십을 지원하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성주재단은 여대생들에게 글로벌 문화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아트인런던(Art in London)’, 저소득층 여학생에게 드림스타트(Dream Start) 장학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실시한다. 조혜련 성주재단 홍보팀장은 “리더십 프로그램을 수료한 차세대 여성 리더가 탈북 여대생의 멘토로 활동하거나, 드림스타트 장학금을 받은 여대생이 저소득층 공부방에서 무료 과외를 진행해 해당 청소년이 연세대에 입학하는 사례도 있었다”면서 “여성 리더가 또 다른 차세대 여성 리더를 키우는 나눔의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사내에 별도 여성 조직을 마련한 기업도 있다. 한국 코카콜라는 2011년 여성리더십위원회(WLC)를 조직, 출산·육아·커리어 개발 등 맞춤형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매년 여성 리더십 워크숍을 개최해 여성 임직원 전원이 하루 동안 함께 모여 역량 개발 강의를 듣는다.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에는 특별히 여성 임직원들의 노고를 기념하는 사내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지속성 고민하던 기업들, 여성 자립 지원으로 눈 돌려
최근 경력 단절 여성 채용, 시간 선택제 일자리 등 ‘여성의 자립’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주류업체 디아지오코리아는 그중 취약 계층 여성의 자립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 마음과마음재단을 출범한 디아지오코리아는 매년 10억원씩 투자(5년간 총 50억)해 한 부모 여성 자립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는 2012년 디아지오 아시아태평양본부의 사회공헌 프로그램 ‘플랜 더블유(Plan W)’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플랜 더블유는 2017년까지 총 1000만달러(약 110억원)를 투입해 아시아 지역 17개국 여성 200만명의 자립을 돕는 프로젝트다. 디아지오 글로벌은 전 직원의 35%가 여성(여성 임원 40%)일 정도로 여성 친화 기업이다. 금문혜 디아지오코리아 CSR팀 차장은 “경기도 오산과 남양주에 주택을 마련해 22가구를 지원하고, 그곳에서 자조 모임, 가족 상담, 취업 교육이 함께 이뤄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디아지오코리아는 자립형 새일센터(봉제여성 새로일하기센터)를 운영해 한 부모 여성들의 취업도 돕고 있다. 덕분에 지난해 12월, 이혼 후 18개월짜리 아들과 단둘이 살던 이세롬(23)씨는 봉제업체 ㈜세성어패럴에 취직했다. 마트 캐셔 등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온 그녀는 “기술을 배우니 이제야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고 했다.
올해 국내 첫 여성 행장을 배출한 IBK기업은행은 연 4회 ‘여성경제 포럼’을 개최해 경영 정보를 공유하고, 여성부로부터 ‘가족 친화 인증’을 받은 기업에는 이전보다 1% 감면된 금리로 대출해준다. 여성 벤처기업의 운전·시설 자금을 지원하고 관련 무료 컨설팅도 제공하고 있다.
◇여성을 위해 일하는 여성을 지원한다
취약 계층 여성뿐만 아니라 여성 인권 및 복지를 위해 일하는 NGO 실무자나 관련 시설을 지원하는 기업도 있다. 교보생명은 여성 공익 활동가를 위한 국내외 연수 프로그램(‘짧은 여행 긴 호흡’)을 10년 넘게 후원하고 있다. 박금희 한국여성재단 기획홍보팀장은 “오랜 기간 지속된 사업이다 보니 경력 3년 차 이상 된 여성 활동가 대부분이 해당 프로그램을 거쳐갔다”라고 설명했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개인적으로 매년 1800만원씩 기부, 대학에 진학하는 탈성매매 여성들의 등록금(봄빛기금 장학 사업)으로 후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장학금을 받은 22명 중 20명이 사회복지 관련 전공을 선택했고, 그중 6명은 사회복지사로 취업했다. 김미선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팀장은 “사회와 단절된 삶을 살아온 탈성매매 여성들은 누군가 나를 응원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용기를 얻는다”면서 “봄빛기금을 받고 지난해 졸업한 여성분은 지금 또 다른 탈성매매 여성의 자립을 지원하는 복지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모레퍼시픽은 ‘아리따움’ 매장 노하우를 활용해 열악한 여성 복지시설 리모델링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선정된 ‘행복을만드는집’은 3300만원을 지원받아 지하실을 아늑한 치료 공간으로 개조했다. 행복을만드는집은 알코올·약물중독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의 치료 및 사회 복귀를 돕는 단체다. 전복선 사회복지사는 “20년 이상 된 낡은 건물이라 물도 많이 새고, 곰팡이 냄새도 나서 그동안 치료받으러 온 분들이 심리적으로 불안해했다”면서 “리모델링 후엔 치료 시간이 아닌데도 ‘이 공간이 제일 좋다’며 미리 지하실에 내려가 있을 정도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문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