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주쿠웨이트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노무관으로 근무할 때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전쟁이 벌어지자 대사관은 한국 근로자들부터 안전한 장소로 철수시켰다. 나를 포함한 대사관 직원들, 그리고 몇몇 교민도 요르단 암만으로 피신하기로 했다. 차를 타고 1500㎞ 거리를 달려 막 국경을 넘으려는데 요르단 국경 수비대에 붙잡혔다. 검문하는 군인 앞에 나섰는데, 그가 내 가슴에 총구를 댔다. 순간 머리를 스친 생각은 ‘이 군인에게 우리가 그들 편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필사적으로 그들이 알 만한 한국 기업 이름을 서넛 외쳤다. 순간 놀랍게도 군인이 총구를 내렸다. 호감과 명성이 목숨을 살린 순간이었다.
이후 나는 ‘대한민국의 명성은 누가 형성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결론은 정부나 공직자보다는 근로자와 기업이었다. 집과 도로를 건설하고, 전자제품과 자동차를 생산하는 정직하고 성실한 근로자와 기업 말이다.
2005년 광주지방노동청장으로 근무하던 당시엔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철강 회사의 하도급 업체 근로자가 크레인에 올라 시위를 벌였다. 열흘을 설득해 겨우 내려오게 할 수 있었다. 당시 상황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 사람들은 부장·차장급인 중간 간부 20여 명이었다. 분규 현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누구인지 물었더니, 포스코에서 퇴직한 뒤 재취업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포스코 정신, 그 근간은 무엇일까?’
대한민국이 누리는 명성의 근간을 지탱하는 기업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포스코는 지난 수년간 ‘공생적 일자리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협력회사의 임금 체계 개선에만 약 7700억원을 지원했다. 2021년에는 ‘포스코·협력회사 상생 발전 공동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청년들이 포스코그룹사는 물론 협력회사에도 취업하고 싶게 만들겠다는 취지다.
포스코가 말하는 ‘기업 시민’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한마디로 설명하면 ‘공생’이다. 작게는 대한민국, 크게는 호모사피엔스의 번영을 추구하는 것. 그간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끌어왔듯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공생적 일자리 생태계를 만들어내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이기권 전 노동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