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대기업이 협력사와 상생하는 법 (下)] 그룹사·협력사 모두 품은 직장 어린이집

“협력사 직원 자녀가 등록하지 않으면 그룹사 자녀도 들어올 수가 없어요. 직장 어린이집 중에 협력회사 직원들까지 품는 방식으로 운용하는 곳은 거의 없어요.”

경북 포항에 있는 동촌어린이집 최원실 원장의 하루는 바쁘다. 이른 출근을 하는 학부모를 위해 오전 6시 50분에 문을 열고 매일 원생 110명을 맞이한다. 직원은 보육 교사 33명을 포함해 총 41명에 이른다. 퇴근이 늦은 부모를 위해 오후 7시 30분까지 운영하고 저녁 식사도 제공한다. 지난달 21일 포항 동촌어린이집에서 만난 최 원장은 “일반적인 직장 어린이집은 본사 직원 자녀만 이용하지만, 포스코 직장 어린이집은 협력사 직원 자녀가 등록해야 1대1로 그룹사 직원들이 들어올 수 있다”면서 “정원 159명을 다 채우지 못한 이유도 상생형 운영 원칙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포스코 그룹사와 협력사 직원의 자녀가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상생형 공동 직장 어린이집'인 포항 동촌어린이집 내부 모습. 실내 중앙정원에서 보육교사와 원생들이 놀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포항=이경호 C영상미디어 기자
포스코 그룹사와 협력사 직원의 자녀가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상생형 공동 직장 어린이집’인 포항 동촌어린이집 내부 모습. 실내 중앙정원에서 보육교사와 원생들이 놀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포항=이경호 C영상미디어 기자

“협력사 직원 자녀도 함께”

포스코가 지난 2020년 포항·광양 사업장에 각각 100억원을 들여 ‘상생형 공동 직장 어린이집’을 마련했다. 포스코 포항 본사 바로 옆에 들어선 동촌어린이집은 전체 면적 2541㎡로 개방형 2층 구조로 설계됐다. 실내 중앙 정원에는 바나나·멜론·망고나무 등을 심었다. 원생들은 열대 과일을 직접 수확해 맛볼 수 있다. 또 개방형 도서관을 비롯해 실내에서 뛰놀 수 있도록 러닝 트랙도 조성돼 있다. 포스코 동촌어린이집은 지난 2020년 근로복지공단이 주최한 ‘직장 어린이집 더(THE) 자람 보육 공모전’에서 공간·환경 디자인 분야 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협력사들은 컨소시엄에 참여해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다. 현재 포항 동촌어린이집과 광양 금당어린이집에는 각각 협력사 51곳이 참여했다.

또 다른 특징은 전액 무료라는 점이다. 최원실 원장은 “정부의 무상 보육 정책이 있지만 경우에 따라 특별활동비, 현장학습비, 행사비 등의 명목으로 발생하는 추가 보육료를 모두 포스코에서 지원한다”면서 “학부모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없다”고 말했다.

포스코 협력사 케이알티에서 근무하는 이현주씨는 여섯 살짜리 둘째를 동촌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그는 “첫아이는 다른 어린이집에 다녔는데, 그땐 오후 6시에 칼퇴근하고 하원시키러 가도 ‘우리 아이만 혼자 남았다’는 불안에 항상 시달렸다”면서 “둘째는 어린이집에서 저녁 식사까지 챙겨주고 있어서 부담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이어 “보통 아이들은 아침마다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떼를 쓰면서 전쟁을 벌이는데, 아이가 ‘언제 어린이집 가냐’고 보채는 걸 보면 안심된다”고 덧붙였다.

“질 좋은 양육 환경 조성, 민간 기업 나서야”

산업단지로 조성된 구역에 어린이집이 들어서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주택단지에 조성돼 있고, 맞벌이 부부가 출근길에 아이를 등원시킬 수 있는 곳은 치열한 경쟁률 탓에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자녀 양육 부담을 줄이려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를 넘어 민간 기업이 동참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저출산 시대에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물건을 구매할 고객이 있어야 한다”며 “민간 기업 차원에서 이뤄지는 자녀 양육 지원은 단순 복지 제도를 넘어 시대적 과제인 저출산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지적에 호응하듯 직장 어린이집은 매년 증가 추세다. 보건복지부의 보육 통계에 따르면, 전국 어린이집 수는 2013년 기준 4만3770개소를 기점으로 매년 감소해 2021년 3만3246개소로 약 24% 급감했다. 반면 지난 2012년 523개소에 불과했던 직장 어린이집은 2015년 785개소, 2018년 1111개소, 2021년 1248개소로 꾸준히 증가했다. 최원실 원장은 “출산율이 줄면서 경영난을 버티지 못하고 폐원한 민간 어린이집이 상당하다”면서 “직장 어린이집은 기업 지원으로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보육 교사 처우도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라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최근 주요 대기업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사내 출산 장려 정책을 펴고 있다. 삼성전자는 전 사업장에 직장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지만, 수요 증가에 따라 수원 사업장에 어린이집을 추가 신설하겠다고 지난 5월 밝혔다. LG그룹은 올해 육아휴직 기간을 종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했다. LG디스플레이는 자녀가 만 8세 이하 육아기인 경우 근무시간과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 육아기 자율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난임 치료를 위한 유급 휴가를 5일 보장하고, 관련 의료비를 지원한다.

포스코는 비교적 일찍 나선 편에 속한다. 지난 2017년부터 출산 장려 제도를 통해 난임 치료를 위해 현재는 최장 10일까지 휴가를 보장하고 출산 장려금도 첫째 200만원, 둘째 이상은 50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 취임 후 2019년에는 ‘저출산 해법 롤모델’을 제시하면서 이듬해 상생형 직장 어린이집을 조성했고,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을 방지하기 위해 최대 6년을 보장하는 ‘육아기 재택근무제’도 시행했다. 이제상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지금까지 수많은 저출산 대책에도 실효성이 낮았던 건 자녀 출산과 양육을 여성 몫이라는 전제로 했기 때문”이라며 “기업과 정부가 예전 관점에서 벗어나 자녀를 키우는 부부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다양한 제도를 마련한다면 출산율도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포항=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백지원 더나은미래 인턴기자 100g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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