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AVPN 콘퍼런스 2022] 글로벌 기업·재단 “한국 비영리·소셜벤처와 협력하고 싶다”

인도네시아 발리 ‘AVPN 콘퍼런스 2022’ 현장

기후변화, 의료, 교육, 빈곤, 젠더 등 아시아 지역에 산적한 사회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지금보다 많은 글로벌 자본이 아시아의 소셜섹터로 흘러들어 가야 한다. 2011년 설립된 ‘AVPN(Asian Venture Philanthropy Network)’은 아시아 최대 규모 임팩트투자자 네트워크로, 아시아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소셜벤처와 비영리에 ‘좋은 자본’이 공급될 수 있게 돕는다.

AVPN은 매년 아시아 임팩트 생태계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초청해 정보를 나누고 교류하는 콘퍼런스를 개최해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간 멈췄던 오프라인 콘퍼런스가 지난달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다시 성사됐다. 21~24일(현지 시각) 발리 국제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AVPN 콘퍼런스 2022’ 행사에는 전 세계 임팩트투자사, 글로벌 재단, 기업, 비영리 관계자 1000여 명이 참석해 아시아의 사회문제를 공론화하고 토론하며 파트너십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올해 행사에서는 특히 한국의 비영리와 소셜벤처에 대한 글로벌의 관심이 뜨거웠다. 한국 기업 담당자들과 소셜벤처 대표들이 콘퍼런스의 여러 세션에서 스피커로 참여하며 맹활약했다. 모더레이터(사회자)부터 스피커(발표자)까지 모두 한국인으로 구성된 세션도 AVPN 콘퍼런스 최초로 마련됐다. 현대차정몽구재단이 주최하고 점프, 식스티헤르츠, 상상우리가 참여해 ‘한국의 소셜임팩트’를 소개했다.

코리안 소셜임팩트 핵심은 ‘섹터 간 협력’

현대차정몽구재단 세션은 콘퍼런스 첫날인 21일 오전 11시 20분부터 약 90분간 진행됐다. 세션 제목은 ‘사회혁신 조직에 대한 섹터 간 협력적 지원과 임팩트 창출(Creating impact through cross-sectoral support toward social enterprise)’. 섹터 간 협력(cross-sectoral)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현대차정몽구재단의 이지영 대리, 교육 분야 비영리 법인 ‘점프’의 이의헌 대표, 에너지 분야 스타트업 ‘식스티헤르츠’의 김종규 대표, 시니어 일자리 분야 사회적기업 ‘상상우리’ 신철호 대표가 차례로 발표했다.

모더레이터로 나선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은 “한국의 스타트업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임팩트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답을 얻어가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첫 발표자인 이지영 대리는 현대차정몽구재단의 ‘H-온드림 스타트업 그라운드’ 사업을 중심으로 섹터 간 협력을 이야기했다. H-온드림은 초기 임팩트 스타트업을 선발해 인큐베이팅을 해주고 투자 유치까지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이지영 대리는 “선발된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공공 섹터(고용노동부), 민간 섹터(현대자동차그룹), 소셜 섹터(임팩트 전문 기관)가 함께 재정적·비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구조”라며 “현대차정몽구재단은 각 섹터를 조율하는 ‘백본 조직’의 역할을 담당하며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다”고 했다. 이어 “H-온드림에 선발된 266개 스타트업의 생존율은 83%로, 2020년 기준 한국 스타트업의 5년 차 생존율(29.2%)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라며 “섹터 간 협력의 결과”라고 말했다.

두 번째 발표자인 이의헌 대표는 ‘점프’의 성장 스토리를 들려주며 한국의 작은 NGO가 어떻게 어려움을 이겨내고 지금과 같은 임팩트를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를 소개했다. 그는 “경제적 불평등에서 비롯된 한국의 뿌리 깊은 교육 격차를 해소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소외된 지역의 아이들에게 평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판단해 11년 전 점프를 설립했다”면서 “점프는 비영리이지만 분명한 미션과 비즈니스 모델을 바탕으로 SPC라는 한국의 유명한 임팩트 측정 시스템에서 200개 이상의 영리기업을 제치고 3년 연속 교육 부문 1위를 차지했다”고 했다. 그는 “작은 비영리가 영리의 임팩트를 넘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신생 NGO의 철학에 공감하고 투자해준 현대자동차그룹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더 많은 혁신적인 비영리가 이런 투자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 스타트업인 식스티헤르츠의 김종규 대표는 한국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 데이터를 활용해 에너지 분야에서 임팩트를 만들어낸 과정을 들려줬다. 그는 한국의 ‘태양·바람 지도’를 스크린에 띄우며 “풍속, 햇빛, 온도, 구름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의 발전량을 예측해 발전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환경청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의 약 30%가 에너지 산업에서 발생하며 한국의 경우 그 비율이 38%에 달한다”면서 “식스티헤르츠는 정부가 제공한 공공 데이터와 오픈 소스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에서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이를 통해 한국의 에너지 전환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정부가 우리에게 공공 데이터를 제공해준 것과 H-온드림 펠로우로 선발돼 자본과 네트워크, 사무 공간을 제공받은 것이 회사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됐다”면서 “공공과 민간 영역의 협력적 지원이 임팩트를 키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신철호 대표는 “오늘이 상상우리의 창립 기념일”이라고 설명해 참가자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그는 “상상우리는 대한민국 중·장년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 설립된 사회적기업”이라며 “9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상상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크로스 섹터럴 서포트’ 덕분”이라고 했다. 섹터 간 협력의 대표적인 사례로 현대자동차그룹, 고용노동부, 서울50플러스재단 등과 함께 진행한 ‘굿잡 5060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그는 “전문성과 경험을 가진 중·장년층에게 재취업에 필요한 교육과 멘토링을 제공한 뒤 소셜벤처에서 일할 수 있게 연계해주는 프로그램”이라며 “공공과 민간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지난 4년간 중·장년층 700명을 교육했고 그중 60% 이상이 재취업하는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우리가 찾던 모델이다” 각국서 미팅 요청 이어져

이날 진행된 한국 세션은 발리에 모인 전 세계 투자자와 기업가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세션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프레 수난타락(Prae Sunantaraks) AVPN 메콩 지역 디렉터는 “한국 비영리와 소셜벤처가 제시한 솔루션과 모델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면서 “이들이 AVPN과 연계된 33국의 여러 사회혁신 조직과 연결된다면 더 큰 임팩트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션이 끝난 뒤에는 발표에 참여한 재단과 기업을 대상으로 미팅 요청이 이어졌다. 신철호 상상우리 대표는 태국 시니어 커뮤니티 기업인 ‘영해피’에서 파트너십 제안을 받았다. 신 대표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진출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태국에도 시니어 일자리 이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한국의 시니어들이 태국의 스타트업에 취업해 일도 하면서 여가도 즐기는 방식의 서비스를 만들어 보기로 구두상 합의를 했고, 이르면 9월부터 시범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의헌 점프 대표도 현장에서 여러 제안을 받았다. ‘제너레이션’이라는 글로벌 취업 교육 컨설팅 NPO와 ‘스타트섬굿’이라는 호주의 플랫폼에서 파트너십 제안을 받아 논의를 시작했다. 식스티헤르츠 김종규 대표는 베트남 최대 기업인 빈그룹이 운영하는 ‘빈퓨처스재단’과 미팅을 진행했고 9월에 한국에서 만나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현대차정몽구재단은 싱가포르의 테마섹재단, 미국의 록펠러재단 등과 미팅을 가졌다. 테마섹재단과는 아시아의 사회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 오는 9월 테마섹재단이 개최하는 ‘필란트로피 콘퍼런스’에도 초대받았다. 170년의 역사를 가진 록펠러재단과도 협력할 부분을 찾아보기로 했다.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은 “테마섹과 록펠러, 그리고 우리 재단의 방향성이 큰 틀에서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이번 발리 미팅의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문제는 어느 한 재단이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글로벌 재단이 협력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인재를 키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등에 대한 공통된 생각을 갖고 있어서 공감대가 형성됐다”면서 “언젠가 테마섹과 록펠러, 현대차정몽구재단 삼자가 함께하는 그림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리=김시원 더나은미래 기자 blindlett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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