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그룹 위기가정 재기지원사업
태국에서 온 이주노동자 A(32)씨는 얼마 전까지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선택을 후회했다. 두 살배기 자녀가 아동 학대로 장애를 얻었기 때문이다. 맞벌이를 해야 했던 A씨와 그의 아내는 태국인 위탁모를 구해 아이를 맡겼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위탁모는 낮에 영상 통화를 걸면 “와이파이가 연결되지 않는다”며 아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의식이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외상성 뇌경막하 출혈과 경련성 발작이라고 진단했다. 위탁모의 신체 학대가 원인이었다. 두개골 접합 수술까지 두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자녀는 결국 편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얼마 후 A씨 부부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했다. ‘9700만원’이 찍힌 병원비 영수증이 날아들었다.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하는 A씨 벌이만으로 갚기엔 까마득한 금액이었다. 당장 생계가 막막한데 빚은 빚대로 쌓여갔다. 단돈 만원이 아쉬웠다. 취업 비자로 들어온 외국인이 받을 수 있는 공적 지원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아동 학대를 조사하던 경찰이 A씨 가족을 아동 보호 전문 기관으로 연계했고, 이곳에서 ‘신한금융그룹 위기가정 재기지원사업’을 소개했다. 의료비 체납금 중 500만원을 신속하게 지원받았다. 신청부터 선정까지 2주가 채 걸리지 않았다. 생활고로 피폐했던 A씨는 잠시나마 숨통이 트였다. 이후에도 꾸준한 사례 관리를 받으며 생계비와 의료비 등을 추가로 받을 수 있게 됐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위기에 직면한 취약 계층 가정은 신속한 현금 지원이 절실하다. 당장 생활비조차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공적 사회복지 서비스는 대상자 선정 기준과 심의 절차가 엄격해 바로 도움받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법적 절차가 비교적 짧은 민간 조직이 공적 영역이 해결하지 못하는 복지 공백을 메울 수 있다”고 말한다.
‘체납의 악순환’ 끊는 신속한 지원
신한금융그룹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굿네이버스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2018년 5월 ‘위기가정 재기지원사업’을 시작했다. 긴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복지 사각지대의 취약 계층이나 개인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지금까지 총 3900가구, 1만2000여 명에게 총 80억원을 지원했다. 지난해 4월에는 1~3차 사업을 마무리하면서 4~6차 사업 계획을 확정했다. 2024년 4월까지 3년간 총 35억원을 투입한다. 신한금융그룹 사업 담당자는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를 지원해보자는 취지에서 위기가정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며 “예상보다 현장 수요가 많고 실효성이 높다고 판단해 사업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위기가정 재기지원사업은 신청부터 지원금 지급까지 빠르게 진행된다. 매주 최대 50가구를 발굴하며, 신청은 상시로 받는다. 서류 제출 다음 주 중에 심사 결과를 발표한다. 지원금은 발표일부터 10일 안에 입금된다. 노연희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민간 지원의 장점은 정부 기관보다 융통성 있고 신속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원 부문은 공과금·관리비를 포함하는 ‘생계주거비’와 ‘교육·양육비’ ‘의료비’ ‘재해·재난구호비’ 등 다양한 위기 상황을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한 가정에 최대 500만원을 지원하고 재해재난구호 같은 특수 상황에서는 1000만원까지 지급한다. 사업 실무 관계자는 “위기가정은 주거비 체납을 막으려다 공과금 체납을 못 막고, 공과금을 막으려다 생활비가 부족해지는 ‘체납의 악순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며 “이 중 하나라도 지원받으면 숨통이 트이고 재기 가능성도 커진다”고 말했다.
학대 피해 아동 지원 강화한다
선정 기준은 공적 복지 서비스보다 포괄적이다. 공적 복지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 취약 계층을 포함하기 위해서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기준은 중위소득 30~50%다. 위기가정 재기지원사업은 중위 소득 100% 이하의 위기가정이면 신청 가능하다. 중위 소득 100%를 넘어도 사무국과 자문위원회에서 위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하면 지급을 결정한다. 이용우 건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팀 연구에 따르면, 위기를 맞은 경제적 취약 가정이 ‘국가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했다’는 비율은 18.2%에 불과했다. ‘지인 또는 친척의 도움’(26.4%)을 얻거나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는다’(24.1%)는 비율이 높았고, 14.5%는 ‘금융기관 대출을 받았다’고 답했다. 이용우 교수는 “만성적 빈곤을 겪는 이들은 제도권 안에서 선별적 복지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적게나마 소득이 있는 상황에서 위기를 맞닥뜨리면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이 많지 않다”며 “지원 범주를 넓히면 복지 사각지대의 가정이 만성적 빈곤이나 가정 해체로 이어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간 사업임에도 장기간 시행되면서 운영도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김현희 굿네이버스 사업운영팀 팀장은 “한번 신청해서 도움을 받았던 기관에서 연속적으로 또 다른 대상자를 발굴해 연결해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개인이 직접 기관을 찾아 신청이 이뤄지는 경우도 늘고 있다. 3차 연도 참여자들의 신청 경로는 ‘시설 및 기관 종사자의 추천 및 권유’(41.9%)가 가장 많았고, 이어 ‘인터넷 및 SNS’(22.4%), ‘이웃 및 주변 사람의 안내 권유’(11.7%) 순이었다.
4차 연도부터는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학대 피해 아동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위기가정 재기지원사업에 ‘신한-Sol Guard’ 카테고리를 추가해 학대 피해 아동의 치료와 보호, 쉼터 인프라에 전문적인 도움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3월 기준, 관련 기관 79개소에 8억1100억원을 지급했다. 신한금융그룹 관계자는 “앞으로 세대별 맞춤형 금융 교육, 스타트업 성장을 지원하는 ‘신한 스퀘어브릿지’ 사업 등 부문별로 전문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