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일(토)

즐겁고 재미있는 캠페인으로 자폐성 장애인 인식 바꾼다

앤디 쉬’오티즘 스픽스’부회장

미상_사진_장애인_앤디쉬부회장_2013

“페루의 한 수퍼마켓에 하비에르(Javier)라는 자폐성 장애인 친구가 있었어요. 이 친구는 매장에 들어온 모든 물건을 강박적으로 똑같은 모습으로 진열했어요. 처음에는 매장 고객들이 그를 무작정 피해 다녔지만, 나중에는 그의 행동을 신기해하면서 자연스럽게 물건을 구입했다고 해요. 자폐성 장애인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앤디 쉬<사진> ‘오티즘 스픽스(Autism Speaks)’의약학술과 수석부회장의 말이다. 오티즘 스픽스는 미국 최대의 자폐성 장애 옹호단체로, 2006년 설립 이후 40여국과 협력해 의료, 제도개선, 권익증진 활동 등을 해오고 있다. 지난 13일 한국자폐인사랑협회에서 개최한 ‘자폐인 옹호를 위한 국제적 움직임, 공동의 노력’ 콘퍼런스 기조 강연을 위해 방한한 앤디 쉬 수석부회장을 인터뷰했다.

―오티즘 스픽스가 인식개선 캠페인에 힘을 쏟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에서 장애인을 위한 법을 마련해도 일상에서 차별이 남아 있으면 그 제도는 효력을 잃는다.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자폐성 장애인들이 인간 이하로 취급받은 채 숨어 지낸다. 심지어 ‘악마나 귀신에게 홀렸다’는 이유로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 인식개선 없이는 자폐성 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할 수 없다.”

―미국의 자폐성 장애에 대한 인식 실태는 어떠한가.

“미국에서도 인식개선 활동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지는 7~8년밖에 되지 않았다. 1960년대 자폐성 장애가 의학 용어로 등장한 것에 비하면 매우 늦었다. 그러다보니 잘못된 편견이 오랫동안 사회를 지배했다. 한 부모가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는데, 주치의가 부모를 따로 불러 ‘아이가 이렇게 된 것은 당신들의 잘못된 교육 때문’이라며 비난했다고 한다. 미국 정부는 2006년 자폐증 퇴치법(Combating Autism Act)을 발표해 연구와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UN 총회도 작년 12월 ‘자폐성 장애인을 위한 건강, 교육, 직업 트레이닝, 인식개선 활동이 즉각 제공돼야 한다’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오티즘 스픽스도 결의안 제작에 함께 참여했다.”

'푸른 빛을 밝혀요' 캠페인에 참여한 건물. 오티즘 스픽스는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통해 4년 만에 총 101개국 8400여개의 명소에 파란 불을 밝힐 수 있었다. /커리어걸네트워크
‘푸른 빛을 밝혀요’ 캠페인에 참여한 건물. 오티즘 스픽스는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통해 4년 만에 총 101개국 8400여개의 명소에 파란 불을 밝힐 수 있었다. /커리어걸네트워크

―자폐성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즐겁고 재미있는 캠페인’을 기획하고 있다. 2010년부터 세계 자폐인의 날을 기념하는 ‘푸른 빛을 밝혀요'(Light it up The Blue)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4월 2일이 되면 전 세계 명소에 파란 불을 밝히고 참가자들이 파란 옷을 입는다.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4년 만에 총 101개국 8400여개의 명소에 파란 불을 밝힐 수 있었다. 한국도 올해 인천대교와 N서울타워가 캠페인에 함께 참여했다. 자폐성 장애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장애인과의 대화 자체를 꺼린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호기심을 끌 만한 콘텐츠가 중요하다. 파란 불이 켜진 건물을 보고 ‘저 건물이 왜 파란색일까?’라는 생각을 가진다면, 그때부터 자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것이다. “(오티즘 스픽스는 이 외에도 모금 캠페인 ‘사운드 오프’, 자폐성 장애인식개선 콘서트 ‘블루 진 볼’등의 활동을 한다.)

―자폐성 장애인의 자립도 중요한 화두다. 인식개선과 자립을 함께 진행한 사례가 있나.

“덴마크의 사회혁신기업 스페셜리스턴(Specialisterne)의 활동을 들 수 있다. 이곳은 자폐성 장애인을 위한 직업 교육과 취업 연계를 연구하는 곳이다. 스페셜리스턴은 소프트웨어 회사 SAP의 인도 지부에서 6명의 자폐성 장애인을 고용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지루해하지 않는다’는 자폐성 장애인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회사 구성원들에게 알렸다. 그 결과 SAP는 올해 5월 스페셜리스턴과 정식으로 파트너십을 맺고 2020년까지 650명의 자폐성 장애인을 고용하기로 발표했다.”

―인식개선 캠페인을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인식 캠페인’은 자폐성 장애의 특성을 사람들이 알게 하는 것이다. 반면 ‘옹호 캠페인’은 자폐성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이를 위해 사회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말한다. 중요한 점은 인식 캠페인 없이는 옹호 캠페인이 효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오티즘 스픽스에서 TV 공익광고를 제작할 때, 첫해는 자폐성 장애 발병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데 집중했다. 약 1년이 지난 뒤, 자폐성 장애가 발생할 경우 즉시 병원에 가라는 메시지를 담은 광고를 제작했다. 자폐성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성숙한 뒤에 옹호 캠페인으로 전환한 것이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다.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좌절하지 말고, 먼 길을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캠페인을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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