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나은미래×뉴웨이즈 공동기획
[‘젊치인’ 전성시대]
<3> 기울어진 운동장에 등판한 ‘어린것’들
지난 4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 청년 4명이 모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두 가지다. 먼저 2030세대다. 또 하나는 ‘정치계에서 일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기성세대 중심 정치판에 청년의 목소리를 담아 보겠다며 ‘도전장’을 내민 청년들이다.
강민진(27) 정의당 청년정의당 대표는 17세 때부터 청소년 인권 운동을 했다. 벌써 10년이 넘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는 정당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직접 정치를 해보기로 했다. 2019년 정의당 대변인으로 시작해 지난해부터는 당내 청년 조직인 청년정의당을 이끌고 있다. 서난이(36·더불어민주당) 전북 전주시의원은 2014년에는 비례대표로, 2018년에는 선출직으로 당선됐다. 누구도 손대지 않았던 지역 내 성매매 집결지를 해체하는가 하면, 청년 무료 건강검진 사업을 시행해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등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의정 활동을 펼쳤다.
주이삭(34·국민의힘) 서울 서대문구의원은 9년 전 평범한 청년의 시각을 정치권에 전달하고 싶어서 정당에 가입했다. 이후 다양한 정당에서 활동하다가 ‘젊은 사람이 기초의원이 돼야 정치도 시대 흐름에 맞게 바뀔 수 있다’는 생각으로 2018년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나고 자란 서대문구 지역을 발로 뛰며 주민의 불편을 해결하고 있다. 박혜민(29) 대표가 이끄는 뉴웨이즈는 지난해 2월 출범한 ‘정치 스타트업’이다. 더 많은 젊은 정치인(이하 젊치인)이 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각종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젊치인들 앞에는 높은 포부만큼 장애물도 많다. 선거법을 비롯한 각종 제도는 기성 정치인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고, ‘어려서 뭘 알겠느냐’는 편견도 일상적으로 쏟아진다. 정치권에서는 늘 청년을 거론하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청년에게 정치판은 ‘기울어진 운동장’인 셈이다. 더 많은 젊치인을 길러내려면, 그래서 정치적 의사결정에 청년의 경험과 우선순위를 제대로 반영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선거 한번 치르는 데 4000만원… “돈 없으면 정치도 못 해”
―3월 대통령선거,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요즘 한창 바쁜 시기 아닌가.
강민진(이하 강)=우선은 대선 준비에 정신이 없다.
주이삭(이하 주)=지방선거 예비후보로 등록 예정인 사람들은 이제 선거 사무실을 막 알아볼 때다.
서난이(이하 서)=목 좋은 사무실을 찾아야 하는데. 단기로 빌리다 보니 월세가 너무 비싸다. 3개월에 450만원은 내야 한다.
―청년 정치의 첫 장벽은 역시 돈인가?
서=현수막 제작비, 인건비, 식비, 사무실 임차료. 다 돈이다. 경선을 하게 되면 경선 비용도 후보가 부담해야 한다.
강=기초의원 선거 기탁금이 200만원이다. 선거를 치르는 데 또 4000만원은 든다. 청년정의당 대표를 선발할 때는 당내 경선인데도 개인 돈 500만원을 썼다. 기성세대보다 자산이 적은 청년에게는 큰돈이다.
주=선거가 끝나고 보전을 받는다 해도 1000만~2000만원은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2018년 지방선거에 출마할 당시 서른 살이었는데, 10년 동안 알바하고 인턴 해서 모은 4000만원이 있어서 가능했다. ‘돈을 날리더라도 한번 창업한 셈 치자’ 하고 도전했다.
서=서른에 4000만원이나 모았다니, 성실한 사람이다(웃음). 나는 펀딩을 받아서 해결했다. 펀딩이라도 할 수 있었던 건 비례대표를 하면서 쌓은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선 가능성이 있으니 유권자들이 믿고 준 것이다. 정치 신인이라면 이마저도 어렵다. 피선거권을 18세로 낮추면 뭐하나. 돈이 없으면 출마를 못 한다. ‘청년발전기금’ 같은 지원금을 지급해 청년 후보가 경제적 장벽을 극복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출마하려면 공천부터 받아야 한다. 청년 공천 비율은 얼마나 되나.
박혜민(이하 박)=2018년 지방선거 정당별 공천율을 조사해봤다. 더불어민주당은 광역·기초의원 후보에 만 45세 미만 청년을 각각 20%, 30% 공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전체 후보자 중 청년 비율은 15%에 그쳤다. 당시 자유한국당이었던 국민의힘도 만 45세 미만 기준, 광역·기초의원에서 각 50% 이상 달성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9%였다. 정의당은 만 35세 이하에게 전체 후보의 11%를 공천했다. 목표였던 10%를 달성하긴 했지만 애초에 목표치가 낮았다.
강=공천 결정 방식은 보통 두 가지다. 공천권자가 결정하거나, 구성원이 투표한다. 청년에겐 두 방법 모두 불리하다. 공천 권한이 주로 기성세대에게 있다 보니 우선 기성 정치인에게 잘 보여야 한다. 구성원 투표도 이제 막 당에 진입한 청년보다는, 오래전부터 당에서 활동한 사람에게 유리하다. ‘청년은 당에 헌신하면서 경험을 쌓아야지, (공천이라는) 과실만 따 먹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도 존재한다. 청년 의원 비율이 충분해질 때까지만이라도 제도적으로 공천의 장벽을 무너뜨려 줘야 한다. 지역구 후보와 비례대표 명부에 각각 20% 정도는 청년으로 배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청년은 정당 내에서 힘이 없는 것 같다.
서=정치권에서 청년을 자주 호명하지만, 막상 당에 들어간 청년에게 주어지는 일은 한정돼 있다. 선거 때 피켓 들고 유세하기, 회의록 작성하기 같은 실무적인 역할에만 머문다. 정책 어젠다나 지역에 관한 생산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청년이 당에서 성장할 수 있다.
강=청년정의당을 만든 취지가 바로 그거다. 당에서 청년이 수동적 역할에 머물지 않게 하는 것. 청년정의당은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독립된 회계를 운영한다. 청년 당원이 투표해서 지역위원장과 대표를 뽑는다. 어른들에게 잘 보여서 얻는 자리가 아니라, 청년에게 신임을 받아서 임명되는 자리다. 당 주류로 진입하는 것이 다음 도전 과제다.
박=뉴웨이즈는 초당적으로 젊치인을 지원하다 보니 여러 당과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거의 모든 정당에 청년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있다. 언제나 새로운 사람을 기대한다고 하지만, 소개하려고 하면 “당내에 분란 생겨서 안 된다”고 한다. 이미 준비된 사람이 많다고도 한다. 전체 비율로 따지면 얼마 안 되는데도 말이다. 어떤 산업이든 인재를 구하기 위해 힘을 쏟는다. 왜 정치권에는 이런 노력이 없을까.
서=정당에서 살아남기가 힘들어서 그런 거다. 내가 인정을 받아야 하니까 서로 배척한다.
강=정당인들은 연대 관계인 동시에 경쟁 관계다.
주=맞는 말이다. 한솥밥을 먹던 정치인이 적으로 돌아서면 가장 아픈 적이 된다.
의회에서도 ‘장유유서’ 외치는 기성세대
―정치권에서 청년의 비전과 실력을 홍보할 기회가 필요할 것 같다.
주=공개적으로 예비후보를 모집하고, 후보자가 비전을 발표하고, 후보를 선출하는 공정한 절차를 거치면 청년이 더 활약할 수 있을 거다. 우리 당에서 추진 중인 ‘국민의힘 적격성 평가(PPAT)’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의 일환이다. 당헌·당규, 정치관계법, 시사 현안 등에 대한 시험을 치르고 결과에 따라 공천 시 가산점을 받는다.
서=선거운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지금 선거 제도에서는 후보가 자신을 홍보하고 공약을 소개할 기회가 너무 적다. 기초의원은 TV토론회도 없지 않은가. 아침저녁으로 길에서 인사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니 지방선거에서는 더 인맥에 의존하게 되고, 지역에서 오래 활동하며 기반을 잡은 기성세대가 유리하다. 내 경우 PPT 자료를 만들어서 일일이 주민들에게 공약을 알리고 다녔다. 공천을 앞두고는 운 좋게도 지역위원회에서 토론회를 세 번이나 열었다. 또 당시 지역위원장님이 1-가 기호는 무조건 청년에게 주겠다고 했다. 덕분에 당선돼서 열심히 의정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기초의원으로 당선되면 대우가 나아지나.
주=그렇지 않다. 동료 의원들에게 “어리니까 참아” “혼자 말 많이 하지 마” “잘난 척하지 마” 같은 말을 자주 듣는다. 팩트를 바탕으로, 정당하게 발언권을 얻어서 말하는 건데도 그런다. 하대하는 거다. 의회에서 위원장 선거에 나가려고 해도 “너는 나중에 기회 많잖아”라며 막는다.
서=청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확실히 있다. 성희롱도 아무렇지 않게 한다. 남자든 여자든 다 대상이 된다. 아들딸 같다면서 엉덩이를 두들기고 팔뚝을 잡으면서 말한다. “젊고 예쁜 의원이 내 옆으로 와” 같은 발언도 서슴없이 한다. 이를 문제 삼고 지적하면 “역시 젊은 사람은 까다롭다” “무서워서 옆에 못 가겠다”고 한다. 침묵하면 “의원이 돼서 정당한 지적도 못 하면 어떡하나”라는 질책을 받는다.
강=청년들은 할 말이 100가지 있어도 참고 참아서 3~4가지만 말한다. 그래도 “예민하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정치적 평가를 해버린다. 그러니 성희롱 같은 명백하게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도, 정치인이기 때문에 더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젊치인이 더 많아져야 하는 이유는.
서=국내 청년 인구가 전체의 30%다. 의회에서도 이 정도 비율이 돼야 한다. 우리 사회의 제도와 시스템을 결정하는 자리는 대부분 기성세대로 구성돼 있다. 청년도 전문가로서, 사회구성원으로서 참여해야 한다. 우선 기성세대가 청년을 신뢰해야 한다.
강=물론 청년만이 청년을 대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청년 정치인이 다른 세대 정치인보다 무조건 훌륭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과거 세대가 만들어 온 세상이다. 미래를 살아갈 새로운 세대는 어떤 사회를 꿈꾸는가도 들어야 한다. 청년이 정치에 진입해야 사회가 변하는 속도를 정치가 따라잡지 못하는 현실도 개선될 수 있다. 한국 정치의 품질도 높아질 것이다.
주=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정당을 구성하고, 누구에게나 공천의 기회가 열려 있게끔 정당도 노력해야 한다.
박=이렇게 쌓인 게 많으실 줄 몰랐다. 뉴웨이즈에서도 언제 한 번 ‘성토대회’를 마련해야겠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