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2022년, 선택을 말하다

[6人의 학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2022년, 선택을 말하다

“내 인생은 내게 일어난 사건의 총합이 아니라 내가 내린 선택의 총합이다.”

세계적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이 남긴 말입니다. 2022년의 인류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기후변화와 감염병 위기, 이로 인한 양극화는 우리에게 ‘미룰 수 없는 선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3·9 대통령 선거와 6·1 지방선거라는 중요한 정치적 선택까지 앞두고 있습니다. 융의 말처럼 개인의 크고 작은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미래를, 지구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겁니다.

좋은 선택, 정의로운 선택이란 무엇일까요? 선택은 어떻게 세상을 바꿀까요? 왜 우리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걸까요? 더나은미래는 ‘학문’에서 지혜를 구해보기로 했습니다. 인지심리학자, 서양철학자, 수학자, 사회학자, 진화심리학자, 국어국문학자 등 여섯 명의 교수를 차례로 만났습니다. 6인의 학자가 각자의 학문적 시각에서 들려준 ‘선택’에 대한 통찰을 전합니다.

“안 한 것에 대한 후회가 가장 크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2022년, 선택을 말하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어제 딸아이의 친구가 집에 놀러 왔습니다. 저녁 무렵 아이가 집에 간다고 하길래 인사를 하고 돌려보냈죠. 그런데 그 아이를 차로 데려다주지 않았던 게 내내 마음에 걸리고 후회가 됩니다. 어젯밤에 날씨가 너무 추웠거든요. 후회라는 것은 참 복잡하고도 괴로운 감정입니다. 이렇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다음에는 이렇게 해야지라는 식으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그래서 인간은 ‘최적의 선택’보다 ‘후회를 덜 할 것 같은 선택’을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중요한 힌트를 하나 드리죠. 연구에 따르면 어떤 일을 한 것에 대한 후회보다 안 한 것에 대한 후회가 훨씬 더 크다고 합니다. 안 한 것에 대한 후회가 훨씬 더 많은 경우의 수를 만들어내거든요. 그러니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그냥 하시길.

“반팔과 반소매, 당신의 선택은?”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2022년, 선택을 말하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소매가 짧은 옷을 흔히 ‘반팔 티셔츠’라고 부릅니다. 반팔은 ‘팔 길이의 반’이라는 뜻이죠. 이 단어 안에는 ‘정상적인’ 혹은 ‘일반적인’ 팔 길이에 대한 편견이 담겨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팔이 짧게 태어났거나 사고로 팔의 일부가 절단된 사람들은 반팔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불편한 마음을 느끼게 되죠. 언어는 ‘생각의 도구’입니다. 생각을 잘 담아내려면 도구를 잘 써야 해요. ‘장애인을 차별해선 안 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오래된 차별의 언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여전히 너무 많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바뀐 세상에 어울리는 언어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은 결국 생각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새해부터는 반팔 대신 ‘반소매’란 말을 사용해보세요. 언어를 잘 선택하기만 해도 일상의 갑질과 차별을 확 줄일 수 있습니다.

“기계는 인간을 뛰어넘을 수 없다”
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2022년, 선택을 말하다 -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언젠가부터 우리는 삶의 많은 부분을 기계(컴퓨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기억과 계산은 물론 여러 중요한 선택을 기계에 맡기고 있죠. 교통 범칙금을 물리는 것과 같은 비교적 단순한 의사 결정부터 외과 수술과 같은 의학적 판단까지도요. 우리는 기계의 선택을 믿어도 될까요? 기계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컴퓨터가 인류 역사에 등장하기도 전인 1936년,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은 ‘모든 수학 문제를 풀어주는 기계는 절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발표했습니다. ‘기계의 한계’를 증명한 셈이죠. 인간은 어떨까요? 놀랍게도 ‘인간이 풀 수 없는 문제는 없다’는 게 수학자들의 굳은 믿음입니다. 다만 아직 풀지 못한 문제가 있을 뿐이죠. 인간의 ‘마음’속에 기계의 논리와 추론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 수학자들이 기계보다 인간의 선택을 신뢰하는 이유입니다.

“인간은 선택한 뒤에 생각한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2년, 선택을 말하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왜 그런 선택을 하고 행동을 했는지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대부분은 그 이유를 대충 꾸며서 만들어내기까지 하죠. 내가 도덕적이고 합리적이고 일관된 선택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대외적으로 알리는 게 나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사람은 본능적으로 ‘평판 관리’를 하게 된다는 게 진화심리학자들의 해석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이런 방식으로 진화했습니다. 선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나에게 가장 유리한 걸 선택하고, 선택이 끝난 후에 그 이유를 생각하죠. 그럼에도 우리는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을 지나치게 비난할 때가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대표적이죠. 그저 각자에게 좋은 선택을 한 것뿐이라고 이해한다면 서로 좀 덜 미워하게 되지 않을까요?

“고개를 들어 줄을 보라”
최샛별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2022년, 선택을 말하다 -최샛별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우리는 모두 꼭두각시입니다. 줄에 매달려 움직이는 꼭두각시들이죠.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산다고 믿고 있지만, 사회학에서는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선택이 사회구조적 상황에 의해 결정된다고 이야기합니다. MZ라고 불리는 2030세대가 자신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갈망하는 이유도 이전 세대에 비해 구조적으로 선택이 제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꼭두각시라는 표현은 저명한 사회학자 피터 버거(Peter Berger)가 했던 말입니다. 이렇게 말했죠. “사회학은 줄에 매달려 움직이던 꼭두각시가 어느 날 문득 고개를 들어 자신의 몸에 달린 줄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올려다보는 것이다.” 무기력하게 매달려 있지 말고 줄이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고개를 들어 줄을 보는 것. 그게 시작입니다.

“어떤 나라에서 살고 싶은가?”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2022년, 선택을 말하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병원으로 위독한 환자가 찾아왔습니다. 환자는 가난했고 돈이 없었죠. 만약 당신이 의사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요. “돈이 없으니 치료하지 않겠다”고 답한다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나타나 이렇게 말할 겁니다. “당신은 의사가 아닙니다. 의술을 이용한 돈벌이꾼일 뿐이죠.” 대통령은 어떨까요. 대통령이 나라를 잘 다스리면 시민의 삶이 행복해집니다. 만약 대통령이 시민의 이익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을 한다면? 그 사람은 대통령의 탈을 쓴 돈벌이꾼이 되겠죠. 의사는 의사로서,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맞는 올바른 선택과 실천을 하는 나라. 나의 최선이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주고, 다른 사람의 최선이 나에게 이익을 주는 나라. 이런 나라를 소크라테스는 칼리폴리스(kallipolis), 즉 ‘아름다운 나라’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까?

김시원 더나은미래 기자 blindlett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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