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공변이 사는 法] “현실 안 맞는 법제도 개선해야 소규모 비영리 살아남는다”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끝>

비영리단체 지원 법제도 개선 나서
규제 적용, 단체 규모 따라 달리해야

이희숙 변호사는 2008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대형 로펌과 기업 법무팀을 거쳐 2015년 전업 공익변호사가 됐다. 그는 “애초에 공익 분야에서 일하겠다는 마음으로 법 공부를 시작했는데 로펌 생활이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면서 “누군가를 조건 없이 돕는 공익변호사의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양수열 C영상미디어 기자

“비영리단체가 적용받는 규제에 대한 인식은 최근 몇 년 새 엄청나게 변했어요. 정부에서는 관리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기조고, 단체에서도 기존 관행을 버리고 규정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해요. 어떻게 보면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해요. 현실에 안 맞는 낡은 규제 탓이죠. 단체에서도 잘 지키지 않고, 감독기관에서도 들여다보지 않는 규제가 많아요.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단체들의 요구가 거세지고, 감독기관들도 책임 의식을 갖고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도기에 있다고 할 수 있죠.”

이희숙(41)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국내 비영리단체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지난 2015년 동천에 합류한 뒤, 비영리단체의 법률 지원과 교육, 법제도 개선 등을 도맡고 있다. 그는 “취지가 나쁜 규제는 없지만 규제가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비영리단체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특수관계인 가산세 부과’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공익법인이 출연자의 가족이나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을 직원으로 두는 경우 관련 지출 경비의 전액에 대해 가산세를 부과하도록 규정돼 있다. 공익법인에 출연된 재산은 상속세와 증여세가 면제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탈세나 편법적인 상속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규정을 영세한 소규모 비영리단체에 적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작은 단체 입장에서 재정이 부족하다 보니 가족이 함께 일하는 경우가 꽤 많아요. 대부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활동비를 받으면서 단체를 겨우겨우 이끌어 나가는 단체들이죠. 그런 단체들에도 일률적으로 가산세를 매기면 사실상 문을 닫으라는 소리밖에 안 되는 겁니다. 입법 취지와도 맞지 않고요.”

이희숙 변호사는 단체 규모별 적용 요건을 마련하고 예외 규정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단체의 자산 총액이나 수익 총액에 따라 사정이 천차만별이라 이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보다 규모에 따라 적용 요건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며 “예외 규정의 경우 사회복지사는 특수관계인이라도 규제에서 벗어나는데, 정당한 활동가도 제외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소규모 단체의 발목을 잡는 규제는 또 있다. 현재 비영리민간단체가 기부금대상민간단체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개인 후원금 비율이 전체 수입의 절반을 초과해야 하는데, 해당 규정이 오히려 단체의 성장을 막는 장애물로 작용한다. 이희숙 변호사는 “예를 들어 개인 후원금 2000만원이 단체 수입의 전부일 때 새로운 사업을 따내려면 사업비 2000만원 미만인 사업만 수행할 수 있다”면서 “큰 사업을 따내려면 우선 개인 후원금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후원금 비율을 충족하지 못하면 기부금대상민간단체 지정이 취소되는데, 이렇게 되면 회원들에게 연말 기부금 영수증도 발급해줄 수 없어요. 회원들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양해를 구해도, 단체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마련이죠. 또 지정 기부금 단체 재지정은 3년간 제한되는데, 단체 운영을 접어야 할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동천에서는 NPO법센터를 통해 비영리단체를 대상으로 법률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NPO법센터를 발족시킨 2017년 만 하더라도 교육에 참여하는 단체가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교육 프로그램 하나를 열면 다음 날 바로 마감될 정도로 관심이 높다”고 했다.

“비영리를 둘러싼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기부금을 모집하는 방식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환경은 바뀌는데 기부금품법 규제는 시대 변화를 못 따라가고 있어요. 지금처럼 규제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소위 활동가들의 뼈를 갈아넣는 듯한 희생으로 연결되는데, 그건 또 근로기준법 위반이잖아요? 감독기관에서도 비영리 활동을 폭넓게 인정하고 사후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해요. 비영리 생태계를 위한 법제도 개선에 공익 변호사들도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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