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에는 중증장애인 고용에 대한 편견이 아직 만연합니다. 장애인 직원의 생산성이 낮다거나 기업 성장에 큰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요. 저는 이러한 편견들을 깨부숴 나가면서 직접 증명해 보이고 싶어요. 중증장애인 직원도 회사를 급성장시킬 역량이 있다는 걸요.”
노영주(34) 해오름장애인협회 대표는 창업 초기부터 6년간 중증장애인 고용비율 90%를 유지해왔다. 현재 직원 수는 45명. 이 가운데 중증장애인이 36명, 경증장애인과 취약계층 9명이다. 지난달 24일 만난 노영주 대표는 “장애인이 만드는 제품이라는 편견도 있지만, 그런 사회적 시선을 견디며 운영해온 결과, 회사는 꾸준히 성장 중”이라고 자랑했다.
매년 2배 성장기업의 비법은 ‘디테일’
해오름장애인협회의 매출 그래프는 가파른 우상향을 그리고 있다. 지난 2017년 3억원에 머물던 매출은 2018년 14억원, 2019년 23억원으로 매우 증가했다. 올해는 코로나 여파에도 이미 40억원을 달성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주력 사업은 CCTV와 구내방송시스템 보급이다.
중증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기업을 해마다 성장하는 기업으로 키워내기까지 노영주 대표는 많은 고비를 넘어서야 했다. 그가 맞닥뜨린 가장 큰 고비는 제조업 특성상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근로자의 안전 문제였다.
“장애인 근로자들에게 제일 중요한 건 안전입니다. 기계를 만질 때 필요한 안전 장비에 대한 투자는 절대 아끼지 않아요. 이를테면 새로운 기계가 들어오면 작업 동선을 최대한 안전하게 설계한 후, 안전바 등 장비들을 설치하는 식이죠. 또 숙련된 관리자가 있어야만 기계 작동이 허락돼요.”
중증장애인 근로자가 겪는 불편에 따라 업무를 분담하는 일에도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 “전기배선제품의 경우 드라이버도 사용하고 납땜도 해야 하는데, 손을 자유롭게 쓰는 직원을 찾아 배치하는 거죠. 반대로 손 사용이 불편한 직원에게는 발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작업을 맡깁니다. 물론 개인별 맞춤 훈련을 따로 진행하죠. 실제 제조 과정에 투입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이걸 감수해야 안전하고 정확한 작업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직원들의 업무는 크게 제품 생산과 현장 설치로 나뉜다. 현장에 설치 업무를 맡은 장애인 근로자들이 자격증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드는 비용은 모두 협회에서 부담한다. 현재까지 중증장애인 직원 3명이 산업 자격증을 취득했다. 자격증을 땄다고 해서 모든 일을 수행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작업이 익숙해질 때까지 전문가의 지원을 통해 동행 근로를 하도록 한다.
중증장애인 근로자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노영주 대표의 노력은 사무소 이전으로 이어졌다. “장애인복지법에 따르면 장애인 근로자 시설은 복도 너비부터 편의시설, 제조시설에 관한 제한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어요. 사실 모든 편의시설을 갖춰야 해요. 지금 사무소가 있는 서울 성북구 건물은 예전에 지어진 탓에 승인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워요. 또 건물 자체가 노후화해서 공사해도 무리예요. 그래서 아예 경기 이천의 새 건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국내에는 장애인 복지법을 충족시키지 못한 장애인 근로사업장은 많다. 이에 대해 노영주 대표는 엄격한 법률 적용보단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중증장애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체는 경제적으로 환경에 처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지금 같은 코로나 사태 속에서는 시설공사는커녕 고용 유지도 어려워요. 많은 장애인 근로사업장에 무조건적 신식 건물로 옮기라고는 강요할 순 없는 실정인 거죠. 오히려 이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 지원입니다. 장애인 근로를 확대할 수 있도록 근로자 급여 지원을 해주거나 중증장애인 생산품에 대한 공공기관 구매를 확대하는 식으로요.”
중증장애 근로자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노영주 대표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대학원까지 마친 클래식 전공자다. 그런 그가 장애인 근로사업장을 운영하게 된 건 우연한 계기였다.
“봉사 동아리에서 중증장애인을 돌보고 교육하는 역할을 맡은 적이 있어요. 전공이 클래식이어서 음악 교육을 해 드렸죠. 그때 중증장애인들이 경제적 활동을 취미 활동처럼 즐겁게 해나가는 모습을 보게 됐어요. 단순히 사회적 약자, 취약계층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서 중증장애 근로자들도 ‘내가 직접 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해오름장애인협회를 창단한 건 2014년. 처음에는 동료 클래식 음악 전공자들이 장애인 학생과 비장애 학생들이 어울려 연주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이 때문에 단체도 협회 형태로 구성했다. 그렇게 협회를 이끌며 장애인 대상의 웃음나눔콘서트를 개최하고, 중증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캠페인도 맡게 됐다. 노 대표는 함께하는 사람들이 늘어가자 아예 협회를 일하는 공간으로 바꾸기로 했다.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로 계획했던 CCTV 생산·설치 사업을 위해 미리 수십개의 인증을 확보해뒀었죠. 생각보다 사업이 잘 풀려서 여러 식구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됐습니다.”
노 대표는 앞으로도 장애인 고용 확대와 고용 안정화, 장기근속 유지를 위한 처우 개선 등을 꾸준히 발전해 나갈 계획이다. 이와 함께 안전하고 쾌적한 작업 환경 구축, 업무 조기적응 프로그램 운영, 장애인 인식개선 확산을 위한 다양한 활동도 전개할 예정이다.
“중증장애 근로자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건 바라지 않습니다. 오히려 받는다고 해도 저희가 거절해요. 저희 목표는 장애인 근로자들의 경제적 자립과 자율성을 갖춘 사업이 성장하는 거예요. 저희의 사소한 시도가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게 응원해주세요.”
정소원 청년기자(청세담11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