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유래 없는 긴 장마가 한국을 덮쳤다. 가옥이 물에 잠기고, 제방이 터져나갔다. 소떼와 자동차가 뒤섞여 떠내려가는 풍경은 여기가 21세기 초일류국가 한국인지를 의심하게 했다. “이 비의 이름은 기후변화입니다”라는 한 장의 카드뉴스를 보며, 우리 삶 깊숙이 다가온 기후변화의 위기를 비로소 알아차린 한 철이었다.
사실, 도시의 삶은 기후변화를 체감하기 매우 어렵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출근해 에어컨 나오는 사무실에 들어 앉는다. 점심 먹는 잠깐 사이의 더위를 참지 못해 일회용 컵에 아이스커피를 마신 후, 집에 돌아와 냉장고와 선풍기의 도움을 받으며 잠에 든다. 높은 습도에 매일 하는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다고 열 건조기 사용량도 늘어난다. 냉방병에 걸리지 않으면 다행인 여름철을 보내는 도시인들에게 기후변화는 8월 장마철의 잠깐 이야기일 뿐이다. 추석 즈음 과일 값이 폭등하게 된다면, 기상관측사상 가장 길었다던 장마와 기후변화를 혹시 떠올릴 수 있을는지.
기후변화의 아이러니는, 기후변화에 가장 적은 책임을 진 사람들이 가장 크게 체감하고, 가장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종일 바깥에서 일하는 배달노동자, 몸 하나를 무기로 삼는 일용직 노동자, 그리고, 전 지구의 80% 먹거리를 길어 올리는 소농들의 이야기다.
대표적인 소농의 작물인 커피. 커피 생산국 에티오피아는 1960년에서 2006년 사이 평균온도 1.3도가 오르며 지난 몇 년 명성대비 낮은 품질로 커피인들의 애를 태웠다. 멕시코, 콰테말라, 온두라스의 강수량은 1980년대 이후 15%나 줄었다. 2050년까지 현존하는 커피경작지 50%는 사라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실증하는 사례들이다.
커피섹터에서의 기후변화는 ‘병해충의 세계화’다. 콩고에서 시작한 커피천공충(Coffee berry borer)은 보통 재배고도 1500m 아래에서만 발견됐다. 그러나 커피산지 기온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면서 1500m 이상 고도에서도 발견되며, 연간 5억 달러의 피해를 발생시킨다. 천공충 발생 초기, 기온이 낮은 높은 고도로 점진적으로 경작지를 옮겼던 세계 각지의 농부들은 허탈하기만 하다. 2014년 엘살바도르 커피의 70%를 날려버린 커피녹병(coffee leaf rust)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이런 이슈는 커피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2013년 페루의 삐우라에서 발병한 적녹총채목(red rust thrips) 해충은 40%의 유기농 농장에 영향을 주었고, 그해 페루 수출량이 30% 급감했다.
“녹병균을 죽이기 위해 얼른 농약을 뿌리면 되는 거 아닐까요?” 도시의 삶에 익숙한 우리들의 생각이다. 기후변화가 야기한 해충이나 녹병이 처음 생산지에 퍼지기 시작했을 때, 소농들은 그것이 무엇이고 원인이 무엇인지 식별하기가 어렵다. 그들은 기후변화의 전문가도 아니고, 농업 정보를 재빠르게 수취할 채널도 없다. 처음 보는 해충과 잡초 등이 실제 농가의 수입에 영향을 미치는 시점이 될 때 쯤, 정부에서 알려주는 소식을 귀동냥으로 전해 듣게 되지만, 피해는 이미 걷잡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개발도상국가의 소농 협동조합과 파트너십을 맺는 공정무역 단체들에게 기후변화는 매우 심각한 이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국제 공정무역운동 진영은 생산자들이 탄소배출권을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활동을 지원한다. 2017~2020년 케냐에서는 기후변화에 대한 복원력을 강화하는 기술프로그램을 지원했다. 공정무역 커피생산으로 유명한 에티오피아의 오로미아 협동조합은 탄소배출권 사업을 시작하고, 바이오개스 스토브를 보급하고, 1만 커피 농가들에게 2만개의 효율적인 쿡스토브 공급해 70% 까지 탄소배출량을 절감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공정무역 인증 기준항목 중 27%는 환경보호와 깊은 관련이 있다. 아름다운커피와 파트너십 관계에 있는 르완다 4개 협동조합 경우에도, 공정무역 인증 확보를 위해 커피보관창고와 그 주변의 위생시설, 그리고 물 관리 시스템 등의 정비를 지원한 바 있다. 코스타리카 쿠카페(COOCAFA)의 경우, 공동체 발전기금을 통해 지금까지 5000㏊의 커피생산지에 그늘나무를 심어, 토양 침식을 방지하고 이산화탄소를 토양에 묶어 두는 역할을 하게 한다.
그래도 나은 삶을 영위하는 우리는 어떻게 연대해야 할까.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공공구매 정책에 저탄소제품 구매를 촉진하고 탄소배출권 교환이 보다 원활하게 될 수 있는 세부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서울시교육청은 채식급식권을 보장하고, 친환경 고효율 에너지 건물로의 증·개축을 지원하는 등 탄소배출제로학교를 추진하고 있다. 발 맞추어 소농에 기후변화 대응력을 지원하는 공정무역단체의 제품을 구매하고 이를 탄소배출권을 교환하게 하면 어떨까? 이왕 시작한다면 친환경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경제 제품들이 이 안에 포함될 수 있도록 제품별 탄소배출량의 측정을 도와주고, 거래시장에 나설 수 있게 지원했으면 한다. 무상원조, 사회적경제 정책기구들이 국내 산업계가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토콜을 개발하고 적용할 수 있는 중장기 계획을 제시해야 할 때다. ‘기후변화 깡패국가’라는 오명을 더 쓰기 전에 말이다.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사무처장]
※더나은미래 ‘모두의 칼럼’은 장애·환경·아동·노동 등 공익에 관한 주제로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