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나은미래·굿네이버스 공동기획]
새마을제로헝거커뮤니티
식량 지원 대신 사업 분야별 ‘주민자치회’ 구성
마을신용조합 설립해 장사 밑천 대출 받기도
댐·빗물 저장 탱크 등 지역 공동 자산도 확보
사업 성과 증명… 결식 횟수 줄고 소득 높아져
“탄자니아의 ‘치볼리’라는 마을을 찾았을 때입니다. 주민들과 마주앉아 개발 사업 이야기를 꺼내려는데 연신 고맙다는 거예요. 사업은 시작도 안 했는데 말이죠. 처음 보는 외지인에게 의지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었던 거죠.”
허남운 굿네이버스 케냐 대표(前 탄자니아 대표)는 치볼리 주민과의 첫 만남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탄자니아 도도마주(州)의 참위노 구(區) 지역민을 대상으로 한 국제개발협력사업을 이끌었다. 치볼리는 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세 마을 중 하나다. 마을 주민 스스로 ‘지도상에 없는 마을’이라고 소개할 만큼 소외된 지역이었다. 인구는 1만7000명. 주민 9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낮은 수준의 농업 기술과 극심한 가뭄으로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굿네이버스가 유엔세계식량계획(WFP)과 함께 탄자니아에서 진행한 ‘새마을제로헝거커뮤니티(SZHC)’는 기존의 국제개발협력과는 방식 면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단순 물품 지원이나 식량 지원 형식이 아니라 ‘주민 참여’를 통해 지역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사업의 핵심이었다. 허남운 지부장은 “사업 초기부터 농업, 시설 개발, 교육·훈련 등 분야별로 ‘주민자치위원회’를 꾸려 주민이 직접 사업을 꾸려나가도록 했다”며 “주민들이 만든 마을 공동체가 자산을 소유하고 시설을 운영하며 소득을 높이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주민자치회는 사업 내용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된다. 식량 분야에서만 양봉, 참깨 농장, 양돈 등 업종에 따라 여러 조직을 만들었다. 또 마을신용조합(VSLA)을 설립해 주민들에게 저축과 투자에 대한 개념을 교육했다. 장사 밑천을 대출받아 소득을 올리고 이를 갚아나가는 성공 케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 크리스티나 참바시는 “마을신용조합을 통해 집을 짓고 염소도 4마리 샀다”며 “예전에는 육아만 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남편에게 요청했지만 양봉협동조합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남편보다 소득이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주민자치회는 지역 공동 자산을 만드는 일도 수행한다. 도로와 다리, 소규모 댐 등이 대표적이다. 굿네이버스는 지역개발위원회(CDC) 기반으로 우기 때 내린 빗물을 가둬두는 댐 9개와 빗물 저장 탱크 13개를 5년에 걸쳐 건립했다. 1년 내내 마르지 않는 저수지는 가뭄으로 고통받던 농민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가 됐다. 특히 지하수를 활용하는 수도 시설 11개를 마련해 안전한 식수를 공급했다. 탄자니아 술리 마을의 알렉산더 은질리블은 “깨끗한 물은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수도 시설은 수자원관리위원회에서 따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업으로 탄자니아에서 2400가구 1만2000여 명에 이르는 사람이 빈곤에서 벗어났다. 이 밖에 방글라데시, 네팔, 르완다에서도 SZHC 사업이 진행돼 협동조합 1040개가 지원을 받았고, 5만7000가구가 해택을 받았다. 김선 굿네이버스 국제사업본부장은 “개발 사업에서 주민 참여 개념이 나온 지는 오래됐지만 막상 현장에 가보면 사람의 생각을 바꿔 스스로 행동하게 하는 게 쉽지 않다”며 “주민자치회를 꾸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마련된 곳은 시설 관리도 수월하고 나중에 결연 사업으로도 연결할 수 있는 지역이 된다”고 말했다.
사업 성과는 수치로도 증명됐다. 경희대학교 국제개발협력연구센터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의 결식 횟수가 사업 이전 주 3.95회에서 0.05회로 줄었고, 우기 때 초등학생의 결석 일수도 월평균 7.5일에서 4.7일로 감소했다. 마을 공동체 의사 결정 과정에서 주민 참여 정도를 측정한 지수는 기존 1.49점에서 2.52점으로 크게 높아졌다. 탄자니아에서는 주민들의 소득이 월평균 4만3000탄자니아실링(약 2만2000원)에서 11만탄자니아실링(약 5만5000원)으로 3배 가까이 뛰었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 9월 국제개발전문 학술지인 ‘World Development’에 등재됐다. 손혁상 경희대 대외협력부총장은 “지역 사회가 얼마만큼 변화했는지를 과학적으로 증명했다는 게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