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은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빈곤국가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현상을 종합 분석한 ‘인간개발보고서’를 발표하며 선언한 말이다. UNDP에 따르면, 여성은 전 세계 노동력의 66%를 차지하지만, 이들의 수입은 전체의 10%에 불과하다. 또 세계 절대빈곤 인구의 70%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이에 국제사회는 성평등 없이는 지속가능한 개발목표(SDGs)를 이룰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성평등과 여성역량강화 자체가 빈곤 퇴치의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아시아위민브릿지 두런두런’은 여성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시아 여성들의 연대를 꾸리는 비영리단체다. 지난 2011년 출범 이후 아시아 개발도상국 여성의 빈곤해소와 권익 강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초대 이사장인 ‘여성계의 대모’ 고(故) 박영숙 여사의 뒤를 이어 현재 장필화(68)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단체를 이끌고 있다.
직업훈련 교육, 빈곤 여성 자립을 위한 ‘디딤돌’
“여성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려면 가장 먼저 경제적 자립이 우선입니다. 교육의 기회가 없었던 여성들에게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직업훈련이 필요한 이유죠.”
원선아 사무국장은 여성 직업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두런두런의 직업훈련 사업은 지난 2012년 네팔을 시작으로 캄보디아, 라오스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교육 분야는 취업이나 창업에 바로 뛰어들 수 있는 미용, 제과·제빵 중심으로 이뤄진다. 최근 네팔에는 카페 문화가 형성되면서 제과·제빵 수요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두런두런은 네팔 현지에 여성기술교육센터를 설치해 베이커리 교육, 마케팅 훈련, 빵 공장 운영 등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캄보디아에서는 마을 카페를 운영하며 베이커리 교육을 비롯해 마을텃밭운영, 젠더 교육 등 취약계층 여성을 위한 공동체 강화 사업을 추진했다.
원선아 사무국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현지에서 여성 제빵 강사를 고용한 일”을 꼽았다. “두런두런이 네팔에서 제빵 교육을 시작할 때는 남자 강사를 구했어요. 선택지가 없었거든요. 이후 여성의 직업교육을 여성이 하면 좋겠다 싶어서 여자 강사를 수소문했는데, 현지 협력단체들이 여성은 무거운 밀가루 포대를 잘 들 수 없다면서 반대하는 거예요. 시간을 갖고 설득하고 또 설득했어요. 그렇게 교육생 출신의 첫 여성 제빵 강사를 고용하게 됐죠.”
원선아 사무국장은 “강사 후보에 오른 여성 제빵사의 열정도 남달랐다”며 “제빵 교육을 받는 와중에 집안에서 결혼을 강요했는데, 그걸 거부하고 끝까지 교육을 마쳐서 제빵사가 된 케이스”라고 말했다.
여성의 주체성 확립은 ‘성평등 교육’에서 출발
직업훈련과 동시에 성평등·젠더의식 함양 교육이 이뤄진다는 점은 두런두런의 사업에서 단연 돋보이는 특징이다. 해당 지역 여성의 의식이 변하지 않는 이상, 단순 경제적 자립만으로는 여성의 주체성 확립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에서다.
두런두런은 현지 젠더 강사를 섭외해 해당 국가의 문화와 사회적 의식에 맞는 성평등 교육을 꾸린다. 성평등 교육 커리큘럼에 직업훈련을 접목시킨 ‘젠더리더십 교육’은 현지 여성들로부터 “교육을 통해 자신감을 얻게 됐다”는 평을 받고 있다. 원선아 사무국장은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는 젠더나 성평등이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은 편”이라며 “사업을 진행하면서 젠더 의식을 확산시키는 동시에 두런두런도 함께 성장할 수 있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얼마 전 라오스 출장을 다녀온 김소라 인턴은 “직업훈련센터 연수생들의 젠더 의식이 생각보다 높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며 “지원 단체들이 자칫 가르침을 줘야 한다는 생각에 빠지기 쉬운데, 사실 도움을 받는 여성들과 동등한 위치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런두런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에는 전통적인 성의식 고착화하는 직업 대신 휴대전화 수리나 자동차 수리처럼 남성의 직업으로 여기던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원선아 사무국장은 지속가능하고 평등한 세상을 위해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강조했다.
“사업 측면에서 어쩔 수 없이 ‘지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사실 국제개발협력은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시혜적 차원이 아니라 국제적인 ‘연대’ 활동입니다. 요즘 방학 때 해외 봉사 나가는 대학생들이 이것만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요. 국제개발협력 활동에서 연대의 마인드를 가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
[이나연 청년기자(청세담 10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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