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카이나 식당’
학부생 3명, 작년 필리핀에 식당 기획해 미혼모 등 저소득층 여성에 일자리 제공
2기들이 이어 받아 2호점도 준비 ‘착착’ 휴학 없이 ’15학점 장기 현장 실습’ 전환
카이나는 필리핀 미혼모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한양대학교 학부생들이 직접 기획해 만든 식당이다. 이재서(정책학과 4)·이승훈(정책학과 3)·최정석(파이낸스경영학과 4)씨가 1년 가까이 한국과 필리핀을 오가며 준비해 지난해 6월 개점했다. 한국 분식 메뉴를 파는 프랜차이즈 식당을 열어 필리핀 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는 이들을 독립시켜 카이나 분점의 ‘사장님’으로 만들겠다는 게 목표였다.
세 사람은 한양대가 학생들의 글로벌 소셜벤처 창업을 장려하기 위해 마련한 ‘SVYE(소셜벤처 청년 교류 프로그램)’ 등 여러 프로그램에서 사업 모델을 검증받았다. 교내 산학협력기금에서 1700만원을 지원받으며 가속도가 붙었다. 필리핀에서 구하기 어려운 한식 재료를 조달하는 것부터 현지인 입맛에 맞게 조리법을 개량하는 것까지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지만, 휴학을 하며 차근차근 준비한 끝에 식당을 오픈했다.
현재 카이나 식당에서는 대학교 인근 빈민촌인 마오그마 빌리지에 사는 ‘싱글맘’들이 김밥을 말고 라면을 끓인다. 하루 매출은 8000페소(약 16만원) 수준. 대부분의 메뉴가 60~80페소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하루 1000명가량이 카이나를 찾는 셈이다.
창립 멤버들은 식당을 안정 궤도에 올려놓고 지난 2월 학교로 복귀했다. 이들의 뒤를 이어 김민지(관광학과 3), 김재경(경영학과 4), 이지윤·전륭(파이낸스경영학과 3), 김경현(경제금융학부 3)씨가 프로젝트 2기 멤버가 되겠다고 자원했다. 한양대는 카이나 프로젝트를 15학점짜리 ‘장기 현장 실습’ 수업 활동으로 전환해 학생들이 휴학하지 않고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필리핀 체류 비자 비용과 항공권, 월 생활비도 일부 지원했다.
3월 초 필리핀에 도착한 2기는 곧바로 업무에 투입됐다. 운영 중인 카이나 식당을 정비하는 팀, 2호점 개점을 준비하는 팀으로 나눠 활동을 시작했다. 기존 식당의 정비를 맡은 전륭·김경현씨는 매장에 교대로 출근해 매출, 위생, 식자재 현황 등을 확인하는 업무와 더불어 운영에 필요한 내용을 문서로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메뉴 조리법부터 직원 복리 후생 조항에 이르기까지 식당 운영 전반에 관한 사항들을 하나하나 매뉴얼로 만들었다. 언젠가 한양대 학생들이 모두 물러난 뒤에도 현지 직원들이 직접 식당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전륭씨는 “언어의 장벽과 문화 차이 때문에 주방을 담당하는 ‘나나이(타갈로그어로 ‘어머니’란 뜻)’들과의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다”면서 “그래도 함께 머리를 맞대고 메뉴를 개발하며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2호점 개점 준비를 맡은 김재경·이지윤씨는 후보 학교들을 방문해 개점 가능 여부를 논의했다. 또 사업 등록 절차를 확인하기 위해 시청과 국세청(BIR), 산업통상부(DTI) 등 관공서들을 돌며 담당자들을 만났다. 2호점에서 일할 나나이들을 모집하기 위해 마오그마 빌리지를 찾아가 면접도 진행했다. 김재경씨는 “학교와 관공서는 담당자들이 워낙 바빠서 아침 일찍 찾아가야만 겨우 만날 수 있었고, 나나이들은 대체로 낮에는 집에 없어서 저녁 무렵이나 주말에 찾아갔다”고 했다.
새로 뽑은 나나이들의 교육도 두 사람의 몫이었다. 이지윤씨는 “2주 동안 1호점을 빌려서 나나이 3명에게 매일 3시간씩 요리법과 레스토랑 운영 체계를 전수했다”며 “아침 7시부터 수업 준비를 해야 해서 고된 일정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나나이들과 함께 2호점에 맞는 새로운 메뉴와 운영 체계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2기 팀의 노력으로 앞으로 카이나 3호점, 4호점에서도 활용될 수 있는 운영 매뉴얼이 완성됐다. 2호점 개점도 확정됐다. 1호점이 있는 아테네오대 캠퍼스에서 약 2㎞ 떨어진 세인트조지프스쿨 교내 식당에서 현재 카이나 2호점 공사가 진행 중이다.
지난달 말 2019학년도 1학기 종강과 함께 카이나 프로젝트 2기 활동도 끝났다. 한양대는 오는 2학기에도 카이나 프로젝트 3기 팀을 꾸려 학생들이 직접 소셜 비즈니스를 이끌어볼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지난 5월 카이나 프로젝트 현장을 돌아보고 온 김종걸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성과를 내는 경우가 있는데 카이나 프로젝트가 바로 그런 사례”라며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지 돈이 하는 게 아니란 것, 사람의 열정과 지혜가 돈의 가치를 얼마나 선하게 바꿀 수 있는지 우리 모두에게 보여줬다”고 했다.
[한승희 더나은미래 기자 hee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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