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용석 연세대 고등교육혁신원 부원장
“세상을 바꿀 따뜻한 인재 기르자” 사회문제 해결에 뛰어든 대학들
학생들이 사회혁신 아이디어 내고 가치 만들도록 ‘고등교육의 틀’ 바꿔
“대학이 사회혁신의 실험장이 돼야 한다. 책 속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직접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해볼 수 있게 ‘판’을 깔아줘야 한다.”
지난 1일 만난 장용석(51) 연세대학교 고등교육혁신원 부원장(행정학과 교수)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번지는 대학의 사회혁신 움직임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에서도 ‘사회혁신가(Social Innovator)’ 양성을 미션으로 내건 대학들이 늘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의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따뜻한 인재를 키우는 게 이 시대 대학의 새로운 사명(使命)이 됐다”고 말했다.
―’따뜻한 인재’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가.
“한국 대학생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를 제대로 들여다본 경험이 거의 없다. 초·중·고등학교 때까지는 학원 다니고 공부하느라 바빴을 테니까. 대학에 왔으니 지금이라도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내가 속한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 사회에 어떤 문제들이 산적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그동안 대학은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곳에 취업하라는 말만 했다. 대학에서 아무리 많은 인재를 길러내도 세상에 부조리와 비리가 넘쳐나는 이유가 이런 개인주의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똑똑한 인재가 아니라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따뜻한 인재다.”
―대학에서 인성교육을 하자는 얘기는 아닐 텐데?
“사회문제가 생겨나는 속도가 빨라지고 형태도 복잡해지고 있다. 주입식 교육으로 배운 단편적인 지식으로는 눈앞에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기 어려워졌다. 자기주도적으로 사회문제를 찾아 해결하고 가치를 만들어 내는 연습이 학생들에게 필요하다. 그게 사회혁신 교육이다. 착한 사람 만드는 인성교육과는 다르다. 좀 더 확장된 개념이다. 내가 배운 전공 지식을 나 혼자 저장해 가지고 있는 것을 ‘인텔리전스(intelligence·내지능)’라고 한다면, 사회혁신 교육은 내가 가진 것을 밖으로 연결하는 ‘익스텔리전스(extelligence·외지능)’를 강조한다.”
―연세대는 지난해 3월 ‘고등교육혁신원’을 설립하며 대학 사회혁신의 선봉에 서게 됐다. 혁신원 설립 배경은?
“최근 2~3년간 대학을 둘러싼 환경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기업의 상황이 바뀌었다. 이윤만 추구해서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기업이 사회에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느냐가 생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됐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에 투자자가 몰리고, 소비자들도 그런 기업의 물건을 산다. 정부도 사회혁신을 통한 사회적 가치 실현을 국정운영의 핵심 철학으로 내세우고 있다. 세상은 바뀌고 있는데 대학은 이런 것들과 동떨어져 연구만 해왔다. 대학과 사회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기 위해 설립한 곳이 고등교육혁신원이다.”
―1년 4개월이 지났는데 그동안 어떤 혁신을 이뤄냈나?
“수업을 바꿨다. 150여 개 교양 및 전공과목을 ‘사회혁신역량 교과목’으로 변신시켰다. 누적 수강생만 5700여 명에 이른다. 과목을 새로 만든 게 아니라, 기존 교과목에 사회혁신을 접목시키는 전략을 취했기 때문에 확산 속도가 빨랐다. 예를 들어 전공과목의 마지막 리포트를 해당 수업과 관련된 사회문제 해결 프로젝트로 대체하는 방식이다. 다양한 전공에서 광범위하게 사회혁신 교육이 이뤄지길 바랐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택했다.”
―사회문제 해결 프로젝트가 각 전공에 녹아드는 모습이 궁금하다.
“실내건축학과의 경우 전공수업을 통해 지역 사회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학생들을 성북구로 보내 고령자를 위한 주거 환경 개선 대책을 만들어보게 했다. 문화인류학과에서는 지난해 진행한 학생들의 사회혁신 프로젝트를 모아 책으로 펴냈다. 조문영 교수가 수업한 ‘빈곤의 인류학’이라는 과목에서 학생들이 반(反)빈곤 활동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 이 내용을 정리해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라는 책으로 낸 것이다. 지난달 출간됐는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들었다. 사실 수업에서 하는 것 말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워크스테이션’에 더 재밌는 아이디어가 많다.”
―예를 들면?
“문헌정보학과 학생이 만든 ‘공강 혁신’이 대표적이다. 학생들의 수업이 가장 많이 비는 날에 시인이나 소설가를 초청해 이야기를 들어보는 프로젝트다. 작가는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는지, 문학과 사회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접점을 찾아보는 시간이다. 3월부터 매달 한 번씩 여는데 항상 자리가 꽉 찬다고 들었다. 올해 워크스테이션 프로그램에는 130여 개 팀(730여 명)이 들어왔다. 학점을 주는 것도 아닌데 학생들의 열정이 대단하다. 본인들의 아이디어를 갖고 외부 펀딩을 받아오기도 한다. 지금까지 13개 팀이 펀딩을 받아왔는데, 총 2억원이 넘는다.”
―판만 잘 깔아주면 대학에서 엄청난 사회혁신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겠다.
“대단한 도전을 하는 팀도 있고, 사소한 도전을 하는 팀도 있다. 솔직히 이상한 아이디어도 많다(웃음). 그래도 상관없다. 실패해도 괜찮다. 여긴 대학이고, 대학은 실험하고 도전하는 곳이니까. 대학은 학생들의 소소한 사회혁신 아이디어에 물을 주는 작업을 하면 된다. 물이 다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콩나물은 자란다. 결과를 요구하거나 눈에 띄는 업적을 바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질문하고 해결책을 생각하고 이리저리 시도해보는 과정 자체가 학생들을 성장시킬 것이다. 대학을 떠나 각자의 분야로 흩어져도 자신의 자리에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믿는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편집장 blindletter@chsoun.com]
–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