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파타고니아의 임팩트 투자 펀드 ‘틴쉐드벤처스’의 필 그레이브스 총괄 디렉터
칠레 바다에서 건져 올린 폐그물로 스케이트보드를 제작하는 ‘부레오’, 대초원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버펄로 방목업을 하는 ‘와일드아이디어버펄로’, 슈퍼마켓에서 팔고 남은 식품으로 액체비료를 생산하는 ‘캘리포니아세이프소일’, 대형 빌보드 광고를 재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레어폼’…. 틴쉐드벤처스(Tin Shed Ventures, 이하 TSV)가 투자한 벤처기업들이다.
TSV는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가 설립한 임팩트 투자 펀드다. 2013년 CEO로 취임한 로즈 마카리오는 환경 문제를 해결할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신생 벤처에 투자하기 위해 2000만 달러(약 223억원) 규모의 ‘20밀리언달러앤드체인지’ 펀드를 조성했다. 이 펀드가 3년만에 소진되자 파타고니아가 기금 제한을 없애고 새로 만든 것이 TSV다.
두 펀드로 파타고니아는 지난해까지 벤처기업 14곳에 7500만 달러(약 838억원)를 투자했다. 지난 11일 파타고니아 행사 참석차 방한한 필 그레이브스 TSV 총괄 디렉터는 “비즈니스로 환경 위기에 대응하려는 ‘제2의 파타고니아’를 여럿 만들어내는 게 TSV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제2의 파타고니아 육성해 환경 보호 비즈니스 생태계 키운다
“TSV는 ‘지구를 보호하기 위한 비즈니스’를 실천하는 기업들을 발굴해 그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파트너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금뿐 아니라 파타고니아의 기술·상품 개발 노하우, 사업 네트워크 등을 다방면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파타고니아가 임팩트 투자를 하는 이유는 미래의 협업 파트너가 될 ‘제2의 파타고니아’를 키우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 생태계를 확장하려는 포부를 안고 있다.
“파타고니아는 투자를 결정할 때 ‘사회적·환경적 가치를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췄는가’를 가장 면밀하게 살핍니다. TSV는 사회적 가치를 10, 경제적 가치를 90만큼 창출하는 기업보다 사회적 가치를 90, 경제적 가치를 10 만들어내는 곳에 투자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일반 투자회사와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투자하려는 기업이 친환경 원자재를 쓰는지, 화학물질을 얼마나 사용하는지, 에너지를 얼마나 절약하는지 등 사회적 가치에 관련된 항목들을 꼼꼼히 점검하죠.”
파타고니아와 시너지를 만들 수 있는 벤처기업이라면 투자 유치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그레이브스 TSV 총괄 디렉터는 “폐그물을 재생 플라스틱 원료로 가공하는 기술을 보유한 부레오가 대표적 사례”라며 “파타고니아는 부레오의 기술을 활용해 재생플라스틱 섬유를 만들어 의류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타고니아와의 협업 가능성 덕에 부레오는 지난해 TSV로부터 후속 투자를 받았다.
“물론 투자하려는 기업의 재무 상황도 점검합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어렵더라도 어느 정도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을 때는 사업을 지속할 수 있을 정도의 재무적 성과를 거둬야 하니까요. 다시말해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이 있다고 해도 수익을 내지 못해 사업의 지속가능성이 불투명한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습니다.”
◇”비즈니스로 선한 임팩트 창출하는 게 미래 모든 기업의 의무가 될 겁니다”
TSV는 주로 설립 초기 단계의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기업 한 곳당 평균 투자 금액은 50만~100만 달러(약 5억6000만~11억원) 수준. 국내 소셜벤처가 평균 1억원가량 투자받는 데 비하면 ‘통 큰 투자’라 할수 있지만, 투자금 회수는 서두르지 않는다. 지금까지 TSV가 투자한 벤처기업 14곳 중 대출형으로 기금을 지원한 1곳뿐이다. 나머지 13곳은 파타고니아가 평균 10~20% 지분을 갖는 지분형 투자 모델이다. 지분형 투자는 투자한 기업의 사업 성과에 따라 지분율이 달라지기 때문에 투자 위험이 크고 자금 회수에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레이브스 디렉터는 ”투자한 기업을 팔거나 상장시켜 ‘대박’을 터뜨리는 데는 관심이 없다”면서 “우리는 투자 기업을 단순히 투자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길을 가는 동반자로 생각한다”고 했다.
앞으로도 환경 문제를 비즈니스로 해결하는 벤처에 아낌없이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 투자하는 것이 미래 기업들의 생존 전략이 될 겁니다. 밀레니얼을 비롯해 미래 세대들은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아요. 또 소비 활동을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윤리적 소비에도 적극적이죠. 따라서 기업은 앞으로 비즈니스로 선(good)을 창출해야 합니다. 기업이 경영 수익을 내는 것과 사회공헌을 별개로 생각해서는 살아남기 어려울 겁니다.”
[한승희 더나은미래 기자 hee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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