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 ‘새싹아동돌봄센터’
읍·면 1416개 지역 중 426곳은 보육시설 없어
논두렁·물웅덩이 등 농가 주변에 위험요소 많아 집안 문 잠그고 나가기도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자녀 두고 일하는 부모위해 야간에도 안전 귀가 책임
“일은커녕, 밖에 제대로 나갈 수도 없었어요.”
충북 제천시 덕산면에 사는 김성철(가명·43)씨. 농부였던 김씨는 지난 2008년 베트남 여성과 결혼했다. 하지만 부인은 4년 만에 “돈을 벌겠다”며 집을 나갔고, 그 사이 슬하에 두게 된 두 아들은 졸지에 ‘엄마 없는 아이들’이 됐다. 밤마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던 큰아들 한준(가명·3)군을 달래는 것보다 더 큰일은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는 것. 김씨는 “농사일은 시도 때도 없이 나가야 하고 매일 관리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어려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려운 사정을 접한 이웃의 배려로 집 근처 ‘제천 간디학교’의 시설 부서에서 일할 수 있게 됐지만, ‘보육’에 대한 어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학교에서 일하면서 농사를 지을 때보다는 생활이 규칙적으로 변했다”는 그는 “하지만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오후 3시 반 이후에는 모두 일일이 챙겨야 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농어촌 지역은 말 그대로 ‘보육의 사각지대’다. 예산 부족으로 국공립 보육시설은 찾아보기 힘들고, 낮은 인구밀도 탓에 민간 어린이집도 들어오길 꺼린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1416개 읍·면 지역 가운데 보육시설이 없는 지역은 426곳이다(2010년). 박영미 제천YWCA 사무총장은 “농촌의 아이들은 농번기에 심각할 정도로 방치된다”며 “농가 주변의 논두렁, 물웅덩이, 자연해충, 농약 등의 위험요소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을 집안에 둔 채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는 부모도 있다고 한다. 박영미 총장은 이어 “지역에 어린이집이 있어도 수용인원이 적은 데다, 3시 30분에 끝나는 운영시간도 농가의 패턴을 반영하지 못해 보육 공백을 초래한다”라고 덧붙였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저출산해소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운영하고 있는 ‘새싹아동돌봄센터’는 이러한 농어촌 지역 보육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탄생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측은 “저출산을 해소하려면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어야 하고, 가장 필요한 게 적절한 보육 서비스”라며 “특히 농어촌 지역은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데 한몫을 하는 곳임에도 보육의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곳”이라고 사업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를 위해 재단은 지난 2010년부터 매년 보육에 관심이 있는 시민단체를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 제천, 봉화, 완주, 부산, 광주 등 전국 5개 지역의 단체와 함께 농촌형 보육시설 ‘새싹아동돌봄센터’ 10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19일 충북 제천시 수산면의 수산초등학교 앞. 제천 새싹아동돌봄센터의 이윤희 센터장이 학교 문을 나서는 혜미(가명·9)양과 기준(가명·7)군을 맞는다. 두 아이는 익숙한 듯 차량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이윤희 센터장은 “초등학교, 어린이집 등으로 모든 아이를 다 데리러가고, 밤 9시가 되면 다 데려다 줍니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이 각기 흩어져 살기 때문에, 보육교사 3명이 자신의 집과 가까운 쪽의 아이들을 맡아 집으로 귀가시켜준다고 한다. 이혜미양은 “센터에 가는 게 즐겁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6살 때는 학교 끝나고 밖에서 자주 놀았는데, 자꾸 넘어져서 다치니까 엄마가 아예 못 나가게 했어요”라며 “근데 센터에 가면 친구도 많고, 놀 수도 있어서 좋아요”라고 했다. 제천 새싹아동돌봄센터는 가정에서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제천시 덕산면과 수산면 지역 농가의 아이 20여명이 매일 모여든다. 대부분 다문화 가정 아이다. 평일은 오후 1시부터 9시까지, 주말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아이들을 책임지며, 선생님들이 손수 만든 저녁식사도 함께한다. 귀농을 했다는 이윤희 센터장은 “시골에 와서 보니, 농사 짓는 일이 정말 바쁜 일이더라”며 “혼자 둘 수 없는 아가들의 경우, 엄마들이 일을 포기하거나 아이를 포대기로 업고 우유병을 물려가면서 일을 하는 것도 많이 봤다”고 했다. “우리의 역할은 부모들이 맘 편히 일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살피는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덕산면 선고리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고지대에 위치한 작은 수수밭. 최근에 간디학교 기숙사의 외벽을 만드는 공사를 하고 있다는 김성철씨가 일과 후에 찾은 곳이다. 이 조그만 밭에서 얻는 수익은 1년에 200만원 안팎이지만 “가계에는 무시할 수 없는 보탬”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 가족들이 먹을 쌀을 직접 수확하는 작은 논도 있다. 김씨가 농사일을 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새싹아동돌봄센터 덕분이다. 김씨의 두 아들 한준, 민준(가명·2)군도 이달 초부터 어린이집을 마치고 센터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성철씨는 “이제는 아이들을 안전하게 봐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주말에도 마음 놓고 밭에 나옵니다.”라며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제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