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자전거로 일주한 한국컴패션 ‘CFC(Cycling For Compassion)’
제주 전역에 폭염주의보가 내린 지난 12일 오전. 파란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사람들이 애월읍 금성교회 앞마당에 둥글게 모였다. 리더인 강상규(42)씨가 제주도 지도를 펼쳐 2박 3일간의 여정을 브리핑하자, 사람들의 표정이 사뭇 비장해졌다. 이들은 모두 한국컴패션(이하 컴패션)의 후원자들. 각국 후원 아동 가정에 기부금을 전하기 위해 시작된 자전거 일주 프로젝트 ‘CFC(Cycling for Compassion)’ 캠페인을 위해 제주를 찾았다.
CFC는 컴패션 후원자들이 지난 2013년부터 자발적으로 시작한 캠페인. 캠페인 기획부터 일정 조율, 홍보까지 후원자들이 도맡아 진행한다. 올해는 참가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일정 코스를 달린 뒤, 필리핀의 후원 아동 가정에 패디캅(자전거 택시·Pedicab)을 선물하기로 했다. 참가자는 20명. 이 중 10명은 제주도 자전거길 250㎞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자전거 일주에 도전했고, 자전거가 익숙지 않은 어린이 등 10여 명은 걷기팀을 이뤄 제주 전역을 두 발로 걸었다. 제주 일주에 나선 컴패션 CFC 팀의 특별한 여정을 동행 취재했다.
◇6년째 이어진 CFC 프로젝트… 동인도·엘살바도르 어린이 등 후원
출정 첫째 날, 중학생 세 명을 포함한 성인들로 꾸려진 자전거팀은 제주공항에서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 내려오는 75㎞를 내달렸다. 한반도를 향해 진격하던 14호 태풍 ‘야리’는 비켜갔지만, 자전거 정면으로 부닥치는 맞바람은 만만치 않았다. 6년째 CFC에 참여하고 있는 강상규씨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는 “바람이 너무 세서 온종일 오르막길을 달리는 것처럼 힘들었다”면서 “이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남을 태우고 다니는 필리핀 패디캅 아빠들이 떠올라 겨우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컴패션의 후원자이자 컴패션을 알리는 ‘일반인 홍보대사(VOC)’인 강씨는 컴패션 설립 60주년이던 지난 2013년 CFC 캠페인을 제안한 주인공이다. 서울시 노숙인들이 버려진 자전거를 재활용해 만든 재생 자전거를 전시에서 우연히 접한 뒤, CFC 캠페인을 생각해냈다. 그는 “노숙인들이 찌그러진 자전거를 고치며 희망을 품는 것을 보고 후원자들을 만나 새로운 꿈을 꾸는 컴패션의 아이들을 떠올리게 됐다”면서 “이런 의미를 담아 후원 아동 가정에 자전거를 선물하는 프로젝트를 컴패션에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해 여름 강상규씨와 지인 3명은 컴패션 부산지부에서 서울지부까지 500㎞를 5일간 자전거로 달려 완주했다. CFC의 시작이었다. 참가자가 늘면서 2015년엔 동인도 어린이 205명에게 통학용 자전거를 선물했고, 2016년엔 엘살바도르 어린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기 위한 정수필터 1300개를 전달했다. 지난해엔 CFC 참가자 한 사람당 10명의 후원자를 모은다는 목표에 도전했다. 이를 통해 약 2400만원의 후원금을 모아 케냐 후원 아동 가정에 염소를 보내줬다.
올해는 패디캅 기부를 위해 참가자들이 1인당 25만원의 후원금을 냈다. 패디캅 한 대를 사고 허가증을 받는 데 드는 비용은 약 50만원. 두 사람이 패디캅 한 대를 선물하는 셈이다. 학교 영양사로 근무 중인 이미애(47)씨는 회사에 작은 저금통을 두고 500원짜리 동전을 차곡차곡 모아 25만원을 채웠다. 유자인(38)씨는 직장 동료의 사인으로 빼곡히 채워진 티셔츠를 입고 CFC에 참가했다. 고등학교 지리 교사인 김미경(30)씨는 “학생들에게 후원 아동 사진과 보고서 등을 보여주며 캠페인을 알렸는데, 학생들이 십시일반으로 25만원을 모아줬다”면서 “교육적 측면에서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 “필리핀 아빠들 생각하며… 맞바람·오르막길 참아냈어요”
둘째 날인 13일 오전 기자도 캠페인에 동참하기 위해 대여한 MTB 자전거에 올랐다. 기자가 합류한 구간은 제주 남쪽 산방산 기슭에서 서귀포시 중문까지 이어지는 24㎞ 구간.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인 악명 높은 자전거 코스였다. 기운 넘치는 중학생들과 철인삼종경기 출신 참가자들을 따라가기 위해 힘껏 페달을 밟았다. “필리핀 아빠들을 생각하라”는 열띤 응원 속에 출발했지만, 오르막길 두세 개를 지나자 땀이 비 오듯 쏟아지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출발 7㎞ 지점인 안덕계곡 입구 즈음에 자전거를 묶었다. 이날 자전거팀은 산방산에서 성산일출봉 근방까지 총 90㎞를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달렸다.
섭씨 35도의 폭염 속에 하루 평균 78㎞를 달리는 강행군은 참가자들에게도 하나의 큰 도전이었다. 아들과 함께 2년 만에 CFC에 재도전한 유형석(48)씨는 “2년 전 완주하지 못한 아쉬움에 경기 성남 분당에서 한강까지 왕복 34㎞를 달리며 연습했다”고 말했다. 다른 참가자들보다 일찍 제주도에 들어와 라이딩을 시작한 강은경(43)·한아향(33)씨는 “체력이 안 돼 4박 5일을 잡고 일주 코스를 돌았다”면서 “너무 힘들어서 첫날은 응급실을 찾을 정도였다”고 했다.
마지막 날 제주 북동쪽 김녕해수욕장에 모인 자전거팀은 다 함께 ‘손가락 하트’ 인증샷을 찍었다. 선천적 심장병을 앓는 제스의 수술비 지원을 위해 진행된 ‘사이클링 기부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사인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개인이 최대 10㎞까지 자전거를 탄 뒤 SNS에 이를 인증하면 후원 기업이 1㎞당 1만원씩을 기부하는 것으로, CFC 참가자들뿐 아니라 일반인을 대상으로도 진행됐다. 이날 자전거팀 10명이 10㎞를 달려준 덕에 총 100만원이 제스에게 기부됐다.
오후 4시 30분, 자전거팀과 걷기팀은 최종 종착점인 제주시 용담레포츠공원에서 만나 2박3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쉴 새 없이 달려온 팀원들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 서로 얼싸안으며 격려했다. 자전거팀의 최연소 참가자로 대열의 선봉에 섰던 박종현(13)군은 “맞바람과 오르막길 때문에 힘들었지만 완주해서 기쁘다”며 “특히 어려운 아이들에게 패디캅을 선물할 수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걷기팀장인 이은주(48)씨는 “걷기팀은 제주의 좋은 곳을 함께 걸으며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내년에 CFC에 참가하면 안내책자나 사진집, 결연신청서를 들고 다니면서 상점이나 관광객들에게도 컴패션을 알릴 생각”이라고 했다.
강상규씨는 “올해 CFC 참가자들의 기부금과 별도 후원금을 합해 총 40대의 패디캅이 필리핀 가정으로 전달될 예정”이라며 “필리핀 아빠들이 자전거택시에서 벗어나 더 안전한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패디캅이 희망의 징검다리가 돼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주=박혜연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