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 쌓은 월드비전 ‘나눔 노하우’다양한 NGO에 아낌없이 나눌 것
가진 것이 많을 때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잃을 것이 많아 두려워하는 사람과, 나눌 것이 많아 행복해하는 사람으로. 후자가 많아지면 사회는 건강해진다. ‘더나은미래’는 2020년 우리 사회의 건강 지수를 높여줄 나눔 리더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첫 번째 인물은 올 1월 취임한 양호승 월드비전 회장이다.
“앞으로 비즈니스석은 못 탈 테니 각오하세요.”
양호승(64) 회장이 월드비전 회장에 취임하기 전, 이사장인 이철신 영락교회 담임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야간에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도, 30시간 걸리는 아프리카를 갈 때도, 월드비전의 모든 임직원은 이코노미석만 탈 수 있다. 양 회장의 이력을 보면 이런 충고를 이해할만 하다. 서울대 농과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대와 MIT를 거쳐 일리노이주립대에서 MBA 석사를 한 이후 SK그룹을 거쳐 CJ제일제당 글로벌 신규사업개발 부사장을 역임했다. 억대 연봉의 영리조직(PO·Profit Organization) 부사장에서 세상의 어려운 이들을 돕는 비영리조직(NPO·Non Profit Organization)의 리더가 된 소감을 들어봤다.
―’NGO에 비즈니스를 입히다’ 등 취임 당시 회장님의 이력이 많은 화제가 되었습니다. 공개채용이라는 특별한 형태로 월드비전 회장직에 선임되었는데, 비영리조직으로 오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아내와 함께 은퇴 후의 삶을 봉사하고 나누는 것으로 준비해왔습니다. 교회에서 12주 동안 선교사 파송교육을 받았는데, 그 도중에 월드비전 회장에 선임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을 위해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하고 싶어 회장직을 맡기로 했습니다.”
―월드비전은 40만명에 달하는 후원자가 있는 국내 최대의 국제개발 NGO입니다. 40만명이 넘는 해외아동뿐 아니라 1만명이 넘는 국내아동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해오고 있는데, 어떤 포부를 갖고 계시는지요.
“지난해 월드비전의 모금액이 1750억원입니다. 올해는 2000억원을 넘을 것 같습니다. 박종삼 전임회장님께서 사람들에게 저를 소개하면서 ‘이제 교수하던 내가 운영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커져서 경영하는 분을 모셔왔다’고 하시더군요. 매우 큰 살림이에요. 이제는 양적성장보다는 신뢰를 높이고, 사업의 전문성과 운영의 투명성을 높여야 할 때입니다. 취임 초기 ‘회장실 탁자가 낡았으니 바꾸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제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모든 일을 결정할 때 기준은 ‘후원자들 보기 합당한가’입니다. 후원자들이 낸 소중한 돈이기 때문에 후원자 보기에 불편하면 안 되거든요.”
―2008년 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이 되면서 이제 국내 NGO의 글로벌 위상도 높아졌습니다. 월드비전은 또한 국제개발 NGO 중 1위로서, 국내의 수많은 NGO를 대표하는 역할도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비전이 궁금합니다.
“지난 3월 런던에서 국제회의가 열렸는데 100개국이 모였습니다. 이중 원조하는 국가는 19개뿐인데, 한국이 4위였어요. 게다가 최근 20~30%까지 모금액이 늘어나기까지 하니, 거기 모인 사람들이 저를 존경의 눈초리로 쳐다보더군요. 콩고, 스리랑카, 미얀마 관계자가 저를 찾아와 ‘시간 좀 내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어요. ’20~30년 전에 우리가 저런 입장이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 격세지감도 들고 우리 역할에 대한 부담도 생겼어요. 월드비전 사업의 특징은 1~2년 하는 게 아니라, 한 마을이 자립할 능력이 될 때까지 10~20년 동안 지속적으로 지원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도 기초공사를 튼튼히 하지요. 월드비전은 NGO와 함께 혹은 NGO를 대표해, 정부가 원조 정책을 세울 때 NGO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대형NGO와 중소NGO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데, NGO 전체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우리 직업이 나눔이에요. 월드비전의 모금과 마케팅, 홍보, 조직관리 등의 노하우를 중소NGO에게 나눠달라는 요청이 많은데, 저희는 적극 나눠 드립니다. 월드비전이 여기까지 오는 데 62년이 걸렸습니다. 다른 중소NGO는 길어야 5년입니다. 하루아침에 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우리나라의 전체 모금시장 규모를 키울 수밖에 없어요. 저는 소위 기업에서 말하는 동종업계의 경쟁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종업계가 오히려 두려운 존재예요. 대기업이나 대형교회도 자체적으로 나눔재단을 만들기 시작해요. 경영 쪽과 비교해볼게요. 기업이 해외를 잘 모를 때는 종합상사가 수출입 업무를 다 대행해줬지만, 기업이 자체적으로 하면서 힘들어졌잖아요. 월드비전은 글로벌 NGO로서 전문성이 있지만, 지금까지 잘 해왔다고 앞으로도 계속 잘할 수는 없어요. 주변환경에 따라 저희도 변신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나라에서도 개인기부와 기업 사회공헌 등 전반적으로 ‘나눔문화’가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선진국에 비해 성숙 단계는 아닌데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국민들의 기부문화도 중요하지만 제도적 개선도 필요합니다. 법정기부단체와 지정기부단체의 구분에 따라 세금공제가 달라지는 데 반해, 소액 정기기부자들은 세금 공제 혜택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또 기부문화의 경우, 젊은 세대가 나눔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교육이 필요합니다. 월드비전도 앞으로 구호와 개발뿐 아니라, ‘권리옹호(Advocacy)’ 분야를 확대할 겁니다. ‘세계시민교육’처럼 나눔에 관한 아이들의 마인드를 바꿔주는 좋은 프로그램을 널리 알려야 합니다.”
양호승 회장은 “암벽등반이 취미생활이었는데, 부모님이 아무리 말리고 힘이 들어도 좋아서 하는 것은 반드시 다시 하게 된다”며 “앞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기쁨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