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떨어진 시골 지역에, 구호식량 대신 모바일을 이용해 돈을 송금하면 어떨까?”
2007년 말, 대통령 선거 직후 유혈사태가 케냐 전역을 휩쓸었다. 1200여명이 숨지고 60여만명이 난민이 됐다. 폭동과 약탈 등으로 식량원조가 시급했지만, 오지엔 접근조차 쉽지 않았던 상황. 케냐의 서북쪽 케리오 밸리 지역에서 활동하던 국제인도주의단체 컨선월드와이드에서 전례 없는 방식을 시도했다. 식료품이나 원자재를 직접 전달하는 대신 ‘모바일’을 통해 직접 돈을 송금하기로 한 것. 외부에서 유입되는 식량이나 자재가 지역 내에서 작게나마 돌아가는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 집집마다의 수요가 다르다는 점도 식량 대신 ‘송금’을 결정하는 고려 요소가 됐다.
돈을 운반하는 대신 모바일을 통한 송금이 가능했던 건 케냐 국영통신사 사파리콤이 출시한 ‘엠페사(M-Pesa)’가 있었기 때문. 2007년 출시된 ‘엠페사’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송금과 결제, 소액금융 등이 가능하도록 한 모바일 금융 서비스다. 기본적인 금융 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었던 이들에게, 휴대폰 하나로 저축과 송금, 결제 등의 서비스에 접근이 가능하도록 했던 것. 동네 잡화점이나 소매점에서, 혹은 엠페사 로고가 붙은 대리점에서 계좌를 열거나 이체가 가능하도록 했다. 케리오 밸리 지역에서는 컨선월드와이드가 현지 비영리단체가 협력해 지역주민들에게 휴대폰과 태양광 충전기를 제공하고, 지역 내 경찰서가 거점이 되어 송금이나 이체가 가능하도록 했다. 국제개발·구호에 ‘핀테크(FinTech·금융혁신기술)’를 도입한 셈. 결과는 어땠을까.
“휴대폰과 충전기를 제공하는데 드는 비용을 고려하더라도, 사라피콤의 거래 수수료는 식료품과 원자재를 옮기는 비용보다 훨씬 낮았다. 음식을 나눠주는 대신 돈을 직접 지급해보니, 지역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엠페사’ 모바일 송금 서비스 덕분에 돈을 직접 배달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효율적으로 돈을 전달할 수 있었다.” (마이크 브라운 컨선월드와이드 컨설턴트)
전 세계, ‘기아’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 기아를 극복하기 위한 혁신적인 시도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오는 11월 14일, 서울 KT 스퀘어 드림홀에서 ‘2017 세계기아리포트(Global Hunger Report)’가 개최된다. ‘기아 종식을 위한 새로운 혁신’이라는 주제로 마련된 이번 행사는 전 세계 기아의 현주소를 살피고 그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다. 국제인도주의단체 컨선월드와이드 이준모 한국대표는 “분쟁, 재해, 빈곤, 차별의 복합적 결과물인 ‘기아(hunger)’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현장의 혁신 사례들을 공유하고 한국의 새로운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세계기아리포트를 기획했다”고 했다.
행사의 첫 번째 세션에서는 전 세계 ‘불평등한’ 기아 정도가 수치로 공개될 예정이다. 이날 발표될 2017년 세계기아지수(Global Hunger Index· GHI)는 기아의 정도를 세계적, 지역적, 그리고 국가별로 종합적으로 측정하고 추적하기 위해 설계된 지수다. 아일랜드 국제NGO인 ‘컨선월드와이드(Concern Worldwide)’, 독일의 ‘세계기아원조(Welthungerhilfe)’, 미국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가 협력하여 개발한 세계기아지수는 2006년 10월 발표된 이후로 11년째, 세계식량의 날을 기해 발표하고 있다. 기아가 가장 심각한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부터 북한에 이르기까지, 지역 및 국가별 기아의 현황이 다뤄질 예정이다.
전 세계 기아 현황 및 과제와 더불어, 국제기구·정부·기업·NGO 등 여러 층위에서 기아와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혁신 사례도 소개될 예정이다. 임형준 유엔세계식량계획(WFP) 한국사무소장이 ‘유엔세계식량계획의 제로 헝거를 향한 혁신 사례’를 발표할 예정이며, 컨선월드와이드 세계기아지수 책임자인 올리브 토위가 현장 수혜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구체적인 혁신의 현장과 사례를 소개할 예정이다. 그 밖에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하 코이카) 혁신사업실에서 코이카가 시도했던 사례를, CJ제일제당의 CSV(공유가치창출) 경영팀에서 기업의 경험을 소개할 예정이다.
국제인도주의단체 컨선월드와이드가 주최하고, 대한민국 외교부와 주한아일랜드대사관이 공동 후원하는 이번 2017 세계기아리포트에서는 세계 기아 문제 해결에 대한 협력을 높이기 위해 한국 정부와 아일랜드 정부가 동참했다. 정진규 외교부 개발협력국장이 기조 연설을 맡았고, 줄리안 클레어 주한아일랜드대사가 축사를 전할 예정이다. 참석을 희망하는 사람은 11월 6일까지 컨선월드와이드 홈페이지나 온오프믹스(http://bit.ly/2l6z6KJ)를 통해 사전 등록하면 된다.
국제인도주의단체 컨선월드와이드는 전 세계 극빈층의 기아와 빈곤 문제 해결에 집중하고 있다. 컨선월드와이드는 1968년 나이지리아 비아프라 내전으로 기근이 발생하자 긴급구호에 착수했고, 2016년 말 현재 총 27개 극빈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긴급구호와 영양개입을 강점으로 하며, 현지 정부와 함께 평균 20년 이상의 중장기 개발협력 사업을 이끌어가고 있다. 본부는 아일랜드에 위치해 있으며, 2015년 아시아 최초로 한국사무소를 개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