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력지대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유 공간입니다. 특히 바쁜 일상과 미래에 대한 부담 때문에 지친 청년들이 쉬었다 가는 ‘정거장’ 같은 곳이죠.”
지난해 11월 15일, 서울시 금천구의 ‘무중력지대 G밸리(이하 무중력지대)’에서 만난 임병훈(34) 운영총괄 매니저가 웃으며 말했다. 무중력지대는 청년의 삶을 옭아매는 저임금, 비정규직, 야근 등 ‘중력’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는 공유 공간이다. 여기에 주변의 가리봉동, 구로동, 가산동의 영문 이니셜을 따서 G밸리라 붙었다. 2015년 개관 후 지금까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혁신기업 ‘프로젝트 노아’에서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위탁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무중력지대를 이용한 사람들은 약 7만명. 이용객으로는 국내 공유 공간 중 최고점을 찍었다. 각종 지자체와 단체에서 견학을 온 것도 합치면 90회 정도다. 그 매력이 무엇인지 직접 찾아가봤다.
◇낮잠부터 요리까지 독창적 5개 공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서울지하철 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과 바로 연결돼 있는 빌딩 6층에 위치한 무중력지대는 사무실로 꽉 찬 어두운 복도 속 모퉁이에 위치, 밝은 오렌지색 출입문이라 눈에 금방 띄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장 먼저 마치 카페처럼 여러 테이블과 의자가 삼삼오오 놓여 팀 프로젝트나 개인 공부를 하는 ‘협력지대’가 보였다. 이 외에도 무중력지대는 편히 누워 쉴 수 있는 ‘휴식지대’, 개인 공부나 강연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는 ‘창의지대’,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는 ‘상상지대’로 나눠져 자유롭게 이용 가능했다. ‘공유부엌’에선 자신이 가져온 재료로 직접 요리를 할 수 있는 ‘공유부엌’까지 갖춰져 있었다.
아직 퇴근시간 전인 오후 3시인데도 불구 무중력지대엔 20여명의 이용객이 있었다. 협력지대에서 팀프로젝트로 회의를 하는 청년들, 창의지대에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곳곳엔 편하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들, 넥타이만 풀어 놓고 낮잠을 청하는 중년의 회사원도 있었다. 임병훈 매니저는 “하루 이용객이 매일 150~200명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웃으며 “취업준비생, 직장인, 프리랜서 등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다양한 배경의 청년들이 가장 많이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이곳을 방문하는 청년들 중 좋은 결실을 맺은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분들도 계시고, 사회복지사 시험에 합격하신 젊은 엄마도 있죠.” 그는 이어서 “이런 분들을 보면 일할 의욕이 생긴다”며 “어떤 분께선 ‘내가 세금을 내고 혜택 받았다고 느끼긴 무중력지대가 처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뿌듯했다”고 말했다.
◇크고 작은 청년 모임 지원…협력 속에서 몸과 마음 치유해
지역 내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무중력지대의 주된 관심사다. 특히 1인 가구가 약 33%에 달하는 금천구에선 청년들도 어려운 경제적 환경 속에 ‘혼자’ 외롭게 살고 있다. 이러한 점에 착안한 무중력지대는 청년들끼리 인연을 맺는 활동에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 임 매니저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꾸준하고 지속적인 활동”이라며 “기업처럼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거창한 프로젝트만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작더라도 목표가 있고 만남을 이어간다면 모두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무중력지대가 지원하는 청년 모임만 18개. 동네 친구 세 명이서 만든 모임부터 20명이 운영하는 영어회화 모임까지 다양한 활동들을 도와주고 있다.
연말에는 성과공유회를 열어 청년들 간 얼마나 자주 모였고 잘 놀았는지 공유하는 것은 물론, 재즈댄스 클럽에선 참가 청년들에게 춤을 가르쳐주고 심리상담사들의 모임인 ‘마음 설명서 제작소’는 심리치료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한다. 청년들이 관계 속에서 재능을 나누며 관계와 마음을 회복하게끔 하기 위해서다.
‘무중력 라이프’라는 치유 강연 프로젝트도 있다. 특별한 강사를 섭외하진 않는다. 결혼, 돈 관리, 꿈 등을 자신이 선택하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 청년들과 비슷한 또래와 처지의 젊은이들이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다. 특별한 사람으로부터 듣는 것이 아닌 평범한 사람끼리의 이야기는 더 큰 공감을 불러올 수 있다. 임 매너저는 “사회의 기준이나 회사의 규율에 맞춰진 삶 때문에 청년들이 상처도 많이 받고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데, 이런 기회로 각자가 주관에 맞게 삶을 다시 정의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며 “한 번은 청년 문제에 관심 있는 심리 상담사나 의사들을 초청해 청년들의 불편한 몸과 마음을 진단해주는 ‘강연 테라피’를 진행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서울시는 빈 공간과 접근성 등을 고려해 무중력지대와 같은 공공 공간을 지역 내 총 8곳에 만들 예정이다. 임 매니저는 “도심에서 먼 금천구에서도 이용자가 많은데 청년들이 많이 가는 종로나 홍대 등엔 무중력지대 같은 공간이 꼭 필요하다”며 “특히 직장인들뿐 아니라, 이보다 나이가 어린 대학생이나 청년들을 위한 공간도 늘어나야한다”고 지적했다. 지치고 힘들 때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을 수 있는 공간, 모두의 공간이지만 나만의 공간인 무중력지대가 시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날은 멀지 않아 보인다.
정경훈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6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