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의 공익마케팅
얼마 전 야외에서 큰 행사를 치르는데, 행사장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사진을 찍고 싶었다. 지상에서 찍기엔 한계가 있고, 주위에 높은 건물도 없었다. 드론이 있었다면 여러 각도에서 멋진 항공 촬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간혹 지방에 강의를 다녀오다 보면 하늘에서 바라본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곳이 있다. 이때도 ‘드론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나는 드론이 없다. 내게 드론은 결핍되어 있다.
아침에 옷장을 열었는데 ‘입을 옷이 없어요, 입을 옷이…’하고 푸념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 당신이 패션에 민감한 여성이고 환절기라면 더욱더. 실제 옷장에는 옷이 있지만, 당신의 머릿속에는 옷이 없다. 이것이 결핍이고, 니즈다.
마케팅에서 니즈(needs, 욕구)는 ‘결핍을 지각하는 상태’로 정의된다. 자신에게 무엇인가 부족하거나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지각된 결핍을 메우는 행위들로 이루어져 있다. 고픈 배를 메우고, 불안전한 주거를 메우고, 불편한 생활을 메우고, 부족한 지식을 메우고, 낮은 지위를 메우려 하고, 허전한 마음을 메우려 한다.
결핍을 메우기 위한 구체적 대안이 요구(Wants)다. 요구는 문화와 개인의 성향에 영향을 받는다. 배고플 때 미국 소비자는 햄버거, 스테이크 등이 생각나지만, 한국 소비자는 설렁탕, 김치찌개를 떠올린다. 여기에 구매력을 더하면 수요(Demands)가 된다. 배고픈 니즈에 김치찌개에 대한 요구가 있다 하더라도, 돈이 부족하다면 수요는 없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이들이 손을 씻게 하려면, 먼저 그들에게 어떤 결핍이 있는지를 발견하고 이해해야 한다. 만약 그들에게 장난감이 풍족하게 있었다면, 다시 말해 니즈가 없었다면 아이들은 투명 비누로 손을 씻지 않았을 것이다.
니즈는 현실과 이상의 간극이기도 하다. 2001년 말,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가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이 말을 듣고 ‘부자가 돼야지’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현재 자신이 부자가 아니라 생각하고 있는 거다. 결핍을 지각시키기 위해 마케팅이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방법으로, 사람들이 바랄만한 이상향을 보여주고 현재와의 간극을 느끼게 한다. 부드럽고 조용하게 주행하는 자동차, 주름 하나 없는 동안 피부, 깃털보다 가벼운 노트북, 현실감 있는 모바일 게임이 우리의 결핍을 느끼게 한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무엇을 부족하다고 여기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Alfred Adler
마케터는 사람들에게 어떤 니즈가 있는지 발견하고 이해하고 채우는 사람이다. 영화 ‘What women want’에서 주인공 ‘닉 마샬’은 광고대행사에서 근무한다. 우연한 사고로 타인의 생각을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초능력을 갖게 된다. 이제 그는 사람들이 무엇을 부족하다고 여기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가 기획하는 광고마다 대성공을 거두고, 모든 사람은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가 성공이라 부르는 기업들은 그와 같은 능력을 갖고 있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결핍을 메우기도 하고, 또 때로는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기며 거대한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마케팅은 그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도구는 그 자체로 목적이 없다.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의 목적에 따라 쓰일 뿐이다.
노자는 마케터가 마케팅이란 도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현명함을 숭상하지 말아 백성들이 다투지 않게 하고,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말아
백성들이 도둑질하지 않게 하라.
바랄 만한 것을 보이지 말아 백성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라.
이 때문에 성인의 다스림은 그 마음은 비우게 하면서 그 배는 채우게 하고,
그 의지는 약하게 하면서 그 뼈는 강하게 한다.
늘 백성들이 지식이 없고 욕망이 없게 하여
모든 지식인이 그 무엇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라.
함 없음을 하면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
-도덕경 중에서
당신 옆에 에이즈 감염인이 있다. 갑자기 그가 코피를 흘린다. 어떻게 하겠는가? 많은 사람이 에이즈 감염인의 피는 위험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당신도 그런 편견을 갖고 있다면, 재빨리 그 자리를 피할 것이다. 브라질의 비영리단체 Life Support Group(GIV)과 광고에이전시인 오길비(Ogilvy)가 이런 편견을 깨기 위해 포스터를 만들었다.
가운데 붉은 점은 물감이 아니라 실제 에이즈 감염인의 피다. 포스터를 제작한 후에 피를 떨어뜨렸다. 포스터에는 다음의 글이 있다.
“내 크기는 세로 60cm에 가로 40cm입니다. 나는 매우 하얀 종이에 인쇄됐습니다. 나의 무게는 250g입니다. 나는 다른 포스터와 다를 게 없습니다. 한 가지를 제외하면 말이죠. 나는 HIV 양성반응 포스터입니다. 당신이 읽은 그대로입니다. 나는 바이러스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내가 해로울 것 같아, 당신은 뒷걸음질을 칠지도 모르겠네요.”
에이즈 바이러스는 인간의 몸 밖으로 나오는 즉시 사멸한다. 이 포스터의 피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 혹시, 우리나라에서 에이즈 감염인이 음식점에서 근무하는 것이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음을 알고 있는가? 에이즈 치료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해서,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 에이즈 바이러스는 그대로 있으나 감염성은 없게 된다. 감염인과 비감염인이 함께 생활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이 캠페인은 우리에게 지식의 결핍을 지각하게 하고 그것을 메우도록 설계되었다. 편견과 차별을 행하는 우리를 변화시켜서, 에이즈 감염인들이 친구와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그가 무엇에 부족함을 느끼는지, 또는 무엇에 부족함을 느껴야 하는지 발견하고 이해하라. 단언컨대, 결핍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동인이다. 그것을 이용해 부를 축적할 것인지, 세상을 바꿀 것인지는 오로지 당신에게 달려있다.
마케터.
세 글자로 저를 소개할 수 있는 그날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마케팅은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쓰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