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과세 임박, ‘비트코인 기부’ 시대 열리나

디지털자산 기부포럼, 가상자산 과세 앞두고 비영리의 새 기부 인프라 논의

“기술 자체는 본래 차갑지만 그 기술을 따뜻한 곳으로 흐르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결정입니다.” 

유길상 금융감독원 금융교육교수 겸 중앙대 보안대학원 겸임교수는 29일 서울 강남구 마루180에서 열린 ‘디지털자산 기부포럼’에서 ‘새로운 나눔의 혈관-디지털자산의 기부와 비영리단체의 기회’를 주제로 발표하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번 포럼을 주최한 디지털자산기부연구회(DADA)는 2022년 설립된 디지털자산 기부 분야 전문 연구·실천 단체다. 비영리, 법률, 기술, 거래소, 창작 분야 전문가 3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2024년 국내 최초 디지털자산기부포럼을 개최했으며, 2025년에는 국회에서 공익재단 디지털자산 활용 세미나를 열고 제도화 논의를 이어왔다.  

◇ 미국서 커진 ‘크립토 기부’…한국도 따라갈까

가상자산 기부 논의가 본격화된 배경에는 과세 이슈가 있다. 가상자산 과세는 코인과 같은 가상자산 투자소득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현행 소득세법에 따르면 내년 1월 1일부터 가상자산을 거래해 얻은 소득이 연간 250만 원을 초과하면 초과분에 세율 20%(지방소득세 포함 22%)의 세금이 부과된다. 만약 1년간 비트코인을 사고팔아 차익 500만 원을 얻었다면 기본공제 250만 원을 뺀 250만 원에 세율 22%를 적용해 55만 원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것.

세무·재무 전문가들은 이러한 과세가 가상자산 기부를 폭발적으로 늘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코인을 팔아 현금화하면 차익에 대한 세금이 발생하지만, 자산 자체를 비영리단체에 직접 기부하면 매도 과정에서 생기는 세금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상자산 과세가 강력하게 자리 잡은 미국에서는 과세 강화 이후 크립토 자산가들의 기부가 급증했다. 미국 최대 기부자문펀드(DAF)인 피델리티 채리터블의 2024년 크립토 기부 수령액은 7억8600만 달러(약 1조1673억 원)으로 전년 대비 14배 증가했고, 미국 상위 100대 비영리단체의 70%가 암호화폐 기부를 받고 있다. 

◇ 실물 화폐에서 ‘보이지 않는 신뢰’로

유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돈과 가치 전달 방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설명했다. 그는 “물물교환과 금속화폐, 국가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법정화폐와 전자화폐 시대를 거쳐, 이제는 블록체인을 통해 검증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신뢰’ 기반의 디지털자산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디지털자산은 비트코인만을 뜻하지 않는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인 CBDC, 은행 예금을 디지털 형태로 만든 예금토큰, 디지털 원본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NFT,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같은 가상자산, 가격 변동성을 줄인 스테이블코인, 부동산·미술품 같은 실물 자산을 디지털 조각으로 나눈 토큰증권(STO)과 실물연계자산(RWA) 등이 모두 포함된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질적 성장의 성숙기에 진입했다.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따르면, 가상자산 시가총액은 약 95조 원으로 전년 대비 11%가량 감소하며 시장의 거품은 걷히고 있지만, 실제 이용자 수는 1077만 명을 돌파하며 오히려 11% 증가했다. 유 교수는 이를 규제 체계가 정비된 결과로 봤다. 2021년 3월에는 자금세탁 방지와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의무를 담은 특금법, 즉 특정금융정보법이 시행됐다. 2024년 7월에는 이용자의 예치금을 따로 보관하고 불공정거래를 금지하는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됐다. 

◇ 기부금 흐름은 투명하게, 전달은 빠르게…디지털자산 기부의 경쟁력

유 교수는 기부의 방식도 현금 중심에서 자산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고 봤다. 그는 “오늘날의 기부는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현금, 주식, 부동산, 디지털자산 등 자신이 가진 자산을 공익에 환원하는 전략적 자산 이전이자 사회적 투자”라고 했다. 

유 교수가 꼽은 디지털자산 기부의 핵심 경쟁력은 크게 세 가지다. 그는 투명성을 디지털자산 기부의 가장 큰 강점으로 꼽았다. 블록체인에서는 기부금의 이동 기록이 남는다. 이 때문에 기부금 흐름을 더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빠른 이동성도 중요한 장점이다. 해외로 돈을 보내려면 보통 은행을 거치고, 환전 수수료와 송금 시간이 발생한다. 하지만 디지털자산은 복잡한 해외 송금 절차 없이 전 세계 어디로든 빠르게 보낼 수 있다. 전쟁이나 재난으로 기존 금융망이 마비된 상황에서도 현장에 필요한 자금을 신속히 전달하는 데 유리하다. 새로운 기부자층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도 주목했다. 가상자산으로 부를 축적한 ‘크립토 리치’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가 새로운 기부자로 등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 교수는 특히 ‘스마트 컨트랙트’를 활용한 조건부 기부 가능성에 주목했다. 스마트 컨트랙트는 정해진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실행되는 디지털 계약이다. 예를 들어 기부금을 미리 맡겨두고, 현지 구호단체가 식수 정수기를 샀다는 영수증이 블록체인에서 확인되면 그때 자금이 자동으로 집행되도록 설계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기부금이 원래 목적과 다른 곳에 쓰이는 것을 기술적으로 막을 수 있다. 

부동산이나 명화처럼 크고 비싸서 기부하기 어려웠던 자산도 디지털자산 기술을 통해 기부할 수 있다. 블록체인상에서 자산을 잘게 나누는 토큰증권(STO)이나 실물연계자산(RWA) 방식을 활용하면, 고액 자산가가 복잡한 매각 절차 없이 자산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길이 열릴 수 있다.

◇ NGO 도입을 위한 4가지 허들

다만 현실적인 한계도 있다. 유 교수는 가상자산 기부가 확산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 가격 변동성, 세제와 과세 기준, 자금세탁 방지, 법인 참여 확대 등을 꼽았다.

가격 변동성은 가장 큰 현실적 부담이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처럼 가격이 수시로 오르내리는 자산은 비영리단체의 회계와 사업 운영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를 줄이기 위해 달러 등 기존 화폐와 가치를 연동한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거나, 기부받은 즉시 매도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세제 혜택과 과세 기준의 불명확성도 과제로 지적됐다. 가상자산 기부를 어떤 시점의 가격으로 평가할지, 기부자에게 어떤 세제 혜택을 줄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유 교수는 “향후 입법과 가이드라인을 통해 합리적인 과세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자금세탁 방지 체계도 중요하다. 불법 자금이 기부로 위장해 들어오는 일을 막기 위해 기부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블록체인에 남은 거래 기록을 분석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거래소와 연계한 엄격한 신원 확인도 중요하다.

법인의 참여 확대 역시 필요한 과제로 언급됐다. 현재는 법인의 가상자산거래소 원화 실명계좌 발급에 제한이 있다. 유 교수는 “비영리법인의 현금화 허용을 계기로, 앞으로 일반 법인도 가상자산 기부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2024년이 신뢰의 형성기였고, 2025년이 비영리법인 참여의 태동기라면 2026년은 세금 인센티브와 법인 참여가 맞물리는 제도의 교차점”이라며 “지금이 디지털자산 기부 인프라를 구축하고 제도를 다듬어야 할 전략적 적기”라고 했다. 이어 “디지털자산이 NGO의 숭고한 사명과 만나는 순간, 우리 사회와 지구 반대편의 생명을 구하는 가장 빠르고 투명한 혈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원준 DADA 회장도 이날 “한국 비영리단체들이 지금 준비해두면 2027년 이후 새로운 기부자들의 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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