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 22년 차, 내 이름으로 된 집은 아직 없다. 지난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던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속 주인공의 서사와는 거리가 먼 삶이다. 나는 서울 행촌동의 작은 빌라에서 보증금 2억에 월세 30만 원을 내고 산다. 보증금의 절반은 대출이었고 지금도 그 무게를 성실히 감당하며 갚는 중이다. NGO 활동가인 남편과 맞벌이로 치열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2000만 원 전세로 시작한 결혼생활에서 ‘자가 마련’의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돈이 조금 모이면 남편과 나의 학비로 나갔고 아이가 생기면서 저축은 늘 뒤로 밀렸다. 청약도 몇 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비켜갔고 정부가 바뀔 때마다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제도들이 생기기도 했지만 제도적 혜택마저 비켜갔다.
“무리해서라도 대출받아 산 집이 올랐어”라고 말하는 친구를 보며 ‘영끌’이라도 해서 작은 빌라라도 한채 샀어야 하나라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20여 년 가까이 사회 제도 개선을 외치며 비영리 영역에 몸담아온 내게, 시세차익을 전제로 한 자산 경쟁에 뛰어드는 일은 스스로에게 이율배반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선택을 끝내 하지 못한 채 어느덧 오십이 되었다. 그 사이 집값은 억 단위를 넘어 수십억 단위로 뛰었다. 이제 집은 온기를 품은 ‘내 집’이 아니라 숫자와 자본의 계급을 증명하는 차가운 잣대로 읽히는 시대가 됐다.
◇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보이지 않는 노숙’을 겪는 청년들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수백년의 데이터를 분석해 자본에서 얻는 수익이 노동으로 버는 소득보다 더 빠르게 늘어나는 구조를 증명했다. 쉽게 말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도 이자나 배당, 자산 가격의 상승을 통해 부는 축적되는 구조적인 불평등을 날카롭게 짚어냈다. 한국의 주택 시장은 이 불평등의 공식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든 전세사기 사건은 단순한 경제 범죄가 아니라 구조적 재난에 가깝다. 정부가 인정한 피해만 수만 건에 이르고 피해자의 대부분은 3억 원 이하 보증금의 임차인이며 그중 상당수가 청년이다. 일부는 삶을 포기했다. 거리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4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쪽방주민을 포함한 노숙인 규모는 1만2725명이다. 집계되지 않은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집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의 부재가 아니라 관계와 안전, 삶의 기반이 동시에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특히 청년에게서 이 문제는 더 복잡하게 나타난다. 최근 아름다운재단이 주거위기청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은 거리로 밀려나기 전 고시원이나 PC방, 지인 집을 전전하는 ‘보이지 않는 노숙’ 상태를 거친다. 청년 정책에도, 노숙 정책에도 온전히 포함되지 못하는 이들은 전형적인 사회적 배제와 구조적 탈락의 틈에 놓여 있다.
주거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회복의 출발점이다. 아름다운재단이 주거위기청년과 만 24세 이하 청소년부모들에게 먼저 ‘머물 곳’을 내어주고 사례관리를 연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도 밖에 놓인 이들에게 집이라는 안전한 울타리를 제공할 때 비로소, 양육과 자립을 아우르는 삶의 재설계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집은 단순한 거처를 넘어 사회를 향해 다시 문을 여는 ‘회복의 플랫폼’이다.
◇ 부동산이 아닌 ‘안녕’을 묻는 집을 위하여
우리는 종종 집을 가격과 동네, 아파트 브랜드로 부른다. 그러나 집은 자본의 계급을 드러내는 부동산이기 이전에, 고단한 하루에 지친 몸을 누이고 무너진 마음을 세우며 내일을 상상하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이어야 한다. 만약 매물의 가격표 대신, 사람에게 삶과 존엄을 안겨주는 쉴 곳을 중개하는 곳이 있다면 어떨까? 아름다운재단이 곧 시작하는 캠페인 ‘수상한 복덕방’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내게는 여전히 ‘내 집 마련의 꿈’이 있다. 그것은 내 이름 석 자를 새기는 자산 증식의 꿈이 아니라, 가족과 불안 없이 머물 수 있는 ‘삶의 자리’를 향한 꿈이다.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주하기 위해서, 나는 여전히 내 집을 꿈꾼다.
지금 우리 사회에 부족한 것은 ‘집의 수’가 아니라 ‘살아갈 수 있는 집’이다. 쫓겨날 불안 없이 문을 닫고 쉴 수 있는 집, 다시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주소가 되어주는 집. 결국 우리가 묻고 있는 것은 인간의 존엄이다. 집이 다시 존엄을 지키는 공간이 되기 위해 정부는, 사회는, 우리는 집을 바라보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김진아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
필자 소개
아름다운재단에서 15년간 근속하고 2023년 내부선발 1호 사무총장이 되었습니다. 공익활동을 지원하고 건강한 기부문화를 확산하는 아름다운재단의 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도록 전략적 도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난제’가 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다자간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문제의식 아래 거버넌스에 대한 연구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