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체류, 부모의 빈곤, 돌봄 공백…이주배경 청소년 20만 명의 현실
아침 7시30분. 고등학생 A양(18)은 집을 나서기 전 휴대전화 속 교통카드 잔액부터 확인한다. 잔액이 1000원 남짓일 때면 발걸음이 멈춘다. 버스를 탈지, 40분 넘게 걸어갈지를 먼저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몽골 국적의 A양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국적은 부모의 나라에 남아 있다. 2년 전 아버지는 몽골로 돌아가 신학교에 다니고 있고, 어머니는 국내에서 교회 일을 하며 네 남매를 홀로 키운다. 여섯 식구의 생계는 사실상 어머니 혼자 책임진다. 아버지의 학비까지 어머니 몫이다.
“아빠가 같이 있을 땐 용돈을 조금이라도 받았는데, 지금은 그게 없어요. 밥도 제대로 못 먹는 날이 많고요.”
동생들은 집 근처 학교에 다녀 교통비 부담이 덜하지만, 학교가 도보로 40분 거리인 A양은 매일 버스를 타야 한다. 어머니에게 버스비를 받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엄마한테 교통비 부담을 주는 게 제일 싫었어요. 그래서 걸어 다녀야 하나, 매번 고민했죠.”
A양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정폭력을 피해 지난해 9월부터 어머니, 남매들과 함께 이주여성쉼터에서 생활 중인 몽골 출신 B양(12) 역시 비슷한 처지다. 쉼터 입소 이후 집과 학교의 거리는 대중교통으로 1시간, 걸어서 3시간이 넘는다.
생활비는 어머니의 아르바이트 수입과 쉼터 지원금에 의존한다. 어머니는 매일 조금씩 용돈을 건넸지만, 그 돈은 온전히 교통비로만 써야 했다. B양은 “엄마가 버스비 하라고 주신 돈이라, 친구들이랑 밥 한 끼 사 먹고 싶어도 꾹 참아야 했어요.”

◇ 높은 영주권 문턱에 묶인 부모, 복지망에서 배제된 자녀
이처럼 부모 또는 본인이 이주 경험을 가진 만 24세 이하를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이라 부른다. 다문화가정 자녀뿐 아니라 중도입국 청소년, 탈북 청소년, 부모의 체류 자격 문제로 등록되지 않은 미등록 아동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들의 규모는 결코 작지 않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다문화 학생 수는 20만 명을 넘어섰다. 학교 밖 청소년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이 겪는 가장 큰 위기는 돌봄 공백과 빈곤이다. 조영관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외국인 가정은 불안정한 체류 자격과 언어 장벽으로 부모가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기 어렵고, 체류 문제로 한쪽 부모가 본국으로 돌아가 가족이 흩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제아동권리 NGO 세이브더칠드런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가 2025년 발표한 ‘한국 아동의 삶의 질에 관한 종합지수 연구’에 따르면, 10~12세 이주배경 아동의 물질적 결핍 경험 비율은 34.6%로 비이주배경 아동(17.1%)의 두 배 수준이었다. 기본적인 생활필수품이나 일상적 경험조차 안정적으로 누리기 어려운 아이들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2024년 발간된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의 교육권 보장 실태에 관한 연구’ 역시 부모의 저임금·저숙련 취업, 실업, 빈곤 등이 자녀에게 복합적 어려움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특히 부모의 체류 불안정성은 자녀에게 그대로 전이된다. 한국의 체류 자격은 한국인 배우자나 고용주에 종속된 경우가 많아, 가정폭력이나 해고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미등록 신분으로 전락하기 쉽다.
영주권 취득을 위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1~2배(연 4500만~9000만 원 수준)를 요구하는 소득 기준은 최저임금 수준에 머무는 다수 이주가정에게 사실상 넘기 어려운 벽이다. 보호보다 단속과 통제에 무게가 실린 현행 출입국 제도 아래에서 부모의 체류 자격 상실은 곧 자녀의 권리 박탈로 이어진다.
외국인등록번호가 없는 미등록 이주아동·청소년은 행정 시스템에서 ‘자격 확인’ 자체가 막히는 경우가 많다. 보육료 지원 역시 주민등록번호나 체류 자격을 갖춘 아동을 전제로 운영돼 왔다. 내국인 아동은 월 28만~54만 원, 등록 외국인 아동은 월 15만 원의 보육료를 지원받는 반면, 미등록 아동은 공적 지원 대상에서 배제돼 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5년 보도자료에서 “미등록 이주아동이 외국인등록번호가 없어 사회복지정보시스템 등록이 어려워 돌봄서비스 이용에서 배제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 꿈꿀 권리조차 빼앗긴 이주배경 청소년
가난은 아이들의 꿈에도 그림자를 드리운다. 르완다 국적의 중학생 C군(14)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자라왔다. 지난해 법무부의 한시적 구제대책으로 임시체류자격을 얻은 뒤에야 처음으로 “운동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말했다.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한국어가 서툰 부모님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는 한쪽 눈을 실명했다. 어떻게든 생계를 책임지려 발버둥 치던 40대 어머니마저 최근 관절 수술을 받으면서 가족은 극심한 궁핍에 내몰렸다. 설상가상으로 현재 사는 거주지 일대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돼 당장 길거리로 나앉을 위기지만, 이사할 보증금조차 마련할 길이 없다.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위태로운 생활 속에서 C군에게 운동선수라는 ‘꿈’은 짐이자 사치에 가깝다.
기니 국적의 부모를 둔 중학생 D군(21)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주와 체류 문제로 제때 학업을 잇지 못해 또래보다 늦은 나이임에도 묵묵히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워가고 있지만, 이 가정 역시 부모의 노동력 상실과 함께 벼랑 끝에 섰다. 고된 육체노동으로 가족을 부양하던 아버지가 허리를 크게 다쳐 경제 활동을 전면 중단하게 된 것이다.
D군의 동네 역시 재개발로 인해 언제 집을 비워줘야 할지 모르는 처지다. 그러나 부모님은 아들의 축구선수라는 꿈만큼은 꺾을 수 없어, 무리해서라도 비싼 월세를 감당하며 이태원 인근에 간신히 머물고 있다.
강다영 용산나눔의집 활동가는 “제한적인 비자 구조 속에서 이주배경 청소년들에게 미래를 설계하라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고 잔인한 요구”라고 말했다.
박경태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도 “법과 제도적 제약이 이주배경 청소년에게 불이익의 원인이 되지 않도록,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