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ES 보고서가 짚은 ‘사회문제를 보는 세 가지 잘못된 습관’
사회문제를 단순화하는 분류와 수치의 함정
1인 가구 고독사는 흔히 노인복지의 문제로 인식돼 왔다. 통계상 고령층 비중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공식 통계를 보면, 고독사를 ‘노년의 문제’로만 규정하기에는 현실이 훨씬 복합적이다. 보건복지부의 2024년 고독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한 해 고독사 사망자 가운데 60대가 32.4%로 가장 많았지만, 50대 역시 30% 안팎을 차지하며 비슷한 규모로 나타났다. 40대 이하에서도 적지 않은 수의 고독사가 확인됐다. 고독사가 특정 연령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전 생애주기에 걸쳐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정책과 제도는 여전히 노인복지의 틀 안에서 이 문제를 단순화해 다루는 경향이 강하다.
이처럼 사회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분류의 틀’이 오히려 문제를 보는 시야를 제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회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연구자와 정책 담당자는 문제를 개념화하고 유형화한 뒤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굳어지고, 복합적인 사회문제는 익숙한 틀 안에서 단순화된 채 진단된다.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틀이, 어느 순간 문제를 가두는 틀이 되는 셈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사회적가치연구원(CSES)은 지난달 ‘사회문제를 보는 세 가지 잘못된 습관’이라는 제목의 이슈 브리프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사회문제를 다룰 때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잘못된 인식의 렌즈를 짚고, 그로 인해 정책과 자원이 어떻게 빗나가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사회적 가치를 측정·평가해 온 연구자의 시선에서, 사회문제를 다루는 전 영역에 던지는 일종의 자기반성적 질문이다.
◇ 관성적 유형화, 나이와 지역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회문제
보고서가 첫 번째로 지적하는 문제는 ‘관성적 유형화’다. 문제를 분류하고 이름을 붙이는 일은 필요하지만, 원인이 복합적인 사회문제를 하나의 범주로 묶는 순간 핵심은 사라진다. 고독사 역시 다양한 요인이 얽혀 있음에도, 여전히 ‘노인 문제’라는 하나의 틀 안에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흔히 사용되는 분류 기준은 연령이다. 그러나 10년 단위로 나이를 나누는 방식은 사람들이 겪어 온 삶의 경험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같은 20대라도 코로나19 시기에 대학 생활을 보낸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는 학습 환경과 공동체 경험이 크게 다르다. 온라인 수업과 비대면 일상이 일상이었던 경험은 인간관계의 형성과 사회적 고립을 체감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결국 사회문제를 나이로만 나누는 접근은, 삶의 맥락에서 비롯된 차이를 놓칠 가능성이 크다. 보고서는 연령보다 중요한 기준은 ‘어떤 경험을 공유했는가’라고 지적한다.
지역 구분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 정책은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설계되지만, 시민의 삶은 행정 경계를 따르지 않는다. 아동학대, 청년실업, 환경오염과 같은 문제는 특정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같은 생활권에 살고 있어도 행정구역에 따라 받는 지원은 달라진다. 행정 편의에 기반한 분류가 실제 삶의 문제를 충분히 포착하지 못하는 이유다.
이러한 분류 체계는 행정제도 안에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 기존 통계와 정책이 관성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런 굳어진 유형화가 사회문제 해결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만들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정책 효과를 떨어뜨린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는 경험과 수요를 반영한 교차적 분류, 생활권 단위에서의 협력적 대응이 제시된다. 1인 가구, 딩크족과 같은 사회문화적 정체성 기반 분류나, 지자체 간 공동 대응이 대표적인 사례다.
◇ 숫자가 가리는 것들, 수치화의 함정
보고서가 지적하는 두 번째 잘못된 습관은 ‘수치화의 함정’이다. 숫자는 사회문제가 어디에서 얼마나 발생하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강력한 도구다. 그러나 숫자는 동시에 문제의 맥락과 불평등의 깊이를 가리기도 한다. 측정 가능한 것만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사회적가치연구원 역시 사회성과인센티브(SPC) 실험 과정에서, 장애인 고용처럼 수치로 측정하기 쉬운 영역에 성과와 자원이 집중됐다고 밝힌다. 반면 고용의 안정성이나 질처럼 숫자로 드러내기 어려운 영역에는 상대적으로 관심과 자원이 덜 투입됐을 가능성이 크다.
수치화는 ‘평균의 함정’도 만든다. 평균 소득이나 평균 학력처럼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기준이 정책의 출발점이 되면서, 하위 집단의 현실은 쉽게 가려진다. 한국의 1인당 GDP가 늘었다는 이유로 삶이 나아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하위 10%의 소득 정체와 양극화 심화는 평균 뒤에 숨는다. 미국에서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당시 ‘평균적인 대피 능력’을 기준으로 방재 계획을 세운 결과, 교통수단이 없는 저소득층과 흑인 공동체에 피해가 집중됐다. 평균에 기댄 정책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숫자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할수록 변화의 크기 자체에만 시선이 쏠리기 쉽다. 기업의 ESG 점수가 62점에서 65점으로 오르면 ‘개선됐다’고 평가하지만, 그 3점이 실제로 탄소 배출을 얼마나 줄였는지, 노동 환경을 얼마나 바꿨는지는 묻지 않는다. 정책 담당자와 언론 역시 ‘변화 없음’보다는 숫자의 움직임을 의미 있는 진전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변화가 없다는 사실’ 자체도 중요한 신호라고 강조한다. 청년정책에 많은 예산을 투입했는데도 청년실업률이 수년째 비슷하다면, 이는 시장 구조나 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보고서 저자인 정명은 사회적가치연구원 실장은 수치가 정책과 행정에서 잘못 쓰이지 않으려면 ‘해석의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수치화는 과학적이지만, 정책은 선택의 영역”이라며 “숫자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에 관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장에서 수치와 지표를 만든 뒤 그에 맞지 않는 사례와 다른 해석, 보이지 않는 영역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문제 인식과 좋은 의도만으로는 부족하다
보고서는 마지막으로 사회문제를 ‘알고 있다’는 인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문제를 인식하는 것과, 실제로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소외계층’의 범위는 과거의 빈곤층에서 경력단절 여성, 외국인 노동자, 성소수자 등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젠더 차별과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도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는 이유로 개선을 미루는 태도는, 상대성을 변명으로 바꾸는 순간 문제 해결을 멈추게 만든다.

보고서는 좋은 의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도 분명히 한다. 사회문제의 해결책이 실제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지 살피고, 이를 검증하며, 필요한 자원을 투입할 수 있는 판단 체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접근이 성과 기반 금융(OBF)이다. 사회적·환경적 목표를 달성했을 때 재정적 보상이 뒤따르도록 설계해, 사회적 가치를 비용이 아닌 투자로 바라보게 하는 방식이다. 자신의 행동이 보상으로 이어진다는 확신이 있을 때, 더 적극적인 선택이 가능해진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정명은 실장은 “사회문제를 다루는 방식 자체에도 유행이 있다”며 “유행에 편승하기보다 각 기관이 자신이 맡은 분야를 꾸준히 다뤄온 기록과 축적을 통해 진실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사회문제를 다룰수록 연구윤리의 중요성도 커진다고 덧붙였다. 타인의 연구 성과와 지식을 존중하는 태도, 그리고 복잡한 문제를 대중에게 책임 있게 설명하려는 커뮤니케이션이 사회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것은 새로운 해법 이전에,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의 전환이다. 익숙한 분류와 숫자에 기대는 한, 정책은 계속 현실보다 한 발 늦을 수밖에 없다. 보고서는 사회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점검하지 않는 한, 아무리 많은 예산과 제도가 투입돼도 삶의 변화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경고한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