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출범하는 ‘한국의료지원재단’
‘정부 주도’에 대한 우려·기본적 운영비 미비 등 지적 이어져
지난 2월 25일, 보건복지부는 ‘한국의료지원재단’에 법인 설립 허가를 내줬다. 이에 따라 한국의료지원재단은 4월 12일 출범을 목표로 설립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설립조차 되지 않은 재단이 복지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편집자 주
한국의료지원재단의 이사장을 맡게 될 유승흠 전 연세대 교수와 복지부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의료지원재단의 설립 취지는 국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의료복지의 사각지대 해소에 있다. 유승흠 이사장은 “한 가정에 희귀난치성 질환이나 중증의 환우, 질병으로 인해 직장생활을 하지 못하는 가장이 있는 경우 가정 전체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다”며 의료복지 사각지대의 해소에 적극적인 모금활동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의료복지 사각지대의 해소라는 취지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복지계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어 왔다. 기존에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던 이들이 의학과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 복지서비스의 질이 낮았다는 지적도 있었고 상대적으로 다른 복지부문에 비해 의료지원 쪽이 부족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취지에도 불구하고 한국의료지원재단은 제2모금회, 가칭 ‘의료구제모금회’라는 논란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 의료구제모금회 설립은 이번 정권에서 여러 차례 필요성을 언급했었고 그때마다 정치권과 복지계에서 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작년 말 제1모금회라 할 수 있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비리 사건이 터졌고 작년 11월 22일 복지부는 의료구제모금회의 설립 추진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한국의료지원재단을 의료구제모금회의 방향성 속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구제모금회가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모금의 관치화’에 대한 우려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1999년 사회복지공동모금법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으로 개정되는 과정을 거치며 보건복지부나 지방정부가 공동모금회에 대해가지고 있던 허가·승인·감독 조항을 대거 삭제했고, 이를 통해 민간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모금 기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역대 정권에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정부가 하지 못하는 역할을 담당해달라는 요구를 받아왔다. 민간에서 이루어지는 자발적인 모금액의 배분에 대해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한 관계자는 “대개 모금회는 정부 요구를 반은 들어주고 반은 들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악습은 작년 말 복지부 감사 후 이른바 ‘인적 쇄신’을 이룬 후의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의료구제모금회가 이런 관치를 피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의료구제모금회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처럼 특별법에 의해 설립될 것인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이런 가운데 민간에서 한국의료지원재단은 법인 설립 후 향후 법정기부금 단체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작년 말 법인세법이 개정되면서 일정한 요건을 갖춘 모금단체는 법정기부금 단체 신청을 할 수 있고 기획재정부의 지정에 의해 5년간 법정기부금 단체로 활동할 수 있게 됐다. 복지부와 한국의료지원재단은 올해 활동을 통해 법이 요구하는 일정한 요건을 쌓을 경우 법정기부금단체로의 전환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의 이태수 교수는 “별도 법에 의해 독립성을 보장받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비해 민간 재단은 특정한 정치세력이나 관으로부터 간섭을 당할 여지가 더 커진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취재 결과 한국의료지원재단의 이사진에 김영순 청와대 여성특보가 포함되어 있음이 확인되어 그 정치적 독립성에 대해 더욱 의구심을 갖게 된다. 특히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의 공약 중 하나였던’의료안전망 기금’ 계획이 민간에서의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답보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모금과 배분을 위주로 활동하겠다는 한국의료지원재단이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유지할지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의료구제모금회가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두 번째 이유는 의료구제모금회가 건강한 나눔문화 확산에 기여할 수 있느냐는 것에 있었다. 현재의 상태라면 한국의료지원재단도 비슷한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료지원재단은 기본재산 2억원, 보통재산 3억원으로 재단법인 허가를 받았다. 재단법인 설립요건에 있어 기본재산과 보통재산의 하한선 규정은 없다. 그러나 이태수 교수는 “사실상 재단이 운영될 수 있는 기본적인 운영비도 갖추지 않은 상태라고 볼 수있다”고 말했다. 최근 민간 재단 설립을 준비 중인 한 단체는 “복지부는 통상 30억~50억원 정도의 기본 재산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고 말했다.
운영과는 별개로 모금이 잘 이루어질지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 NGO의 관계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내실 있고 투명하게 운영하는 것이 더 절실하지 않으냐”는 의문을 던졌다. 그동안 의료부문에 대한 배분이 부족했다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내부에 별도의 전문가를 두면 되지 않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한 기업 관계자는 “한 조직이 할 수 있는 모금을 두 조직이 하는 것은 결국 비효율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던졌다. 복지부는 의료구제모금회가 등장하면서 전체적으로 기부금 규모가 커질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으면서도, 제2모금회가 기부금 증대에 미칠 효과성에 대한 연구 조사를 수행하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의료구제모금회의 등장으로 기부금 규모가 커질 것인가를 검증하기 위해, 기자는 국내 20개 기업 및 NGO의 관계자들을 취재했다. 그들은 모두 “새로운 모금회의 등장이 기부금 규모를 늘리는 데에 기여할 부분은 없고 기존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 배정되었던 기부금을 나누게 될 것이다”라고 답했다. 오히려 “반강제적인 기부 요청이 이어지는 것 아니냐”며 불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 한국의료지원재단은 “기업에 기부금을 과도하게 요청할 생각은 없고 참신하고 투명한 방식으로 개인 기부를 늘리는 방향으로 힘을 집중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기부금의 전달 체계가 모호한 것도 우려되는 점이다. 복지부는 “지원사업비가 필요한 단체들에 의료비 배분을 하게 될 텐데, 국내에 의료비 지원사업만 하는 곳은 전국적으로 200개 정도 되고, 활동을 많이 하는 단체들은 30~40곳 정도 된다”고 밝혔다. 이태수 교수는 “복지분야는 6000개 정도의 공인된 복지시설이 있어 기부금의 전달 체계가 확보되어 있다”며 “의료분야는 공공성에 바탕을 둔 민간전달체계가 별도로 형성되어 있지 않아 자칫 병·의원이라는 공급자들의 이해를 쫓아 기부금이 배분될 여지가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의료지원재단측은 공개된 토론과 강력한 심사를 거쳐 최대한 공정하게 배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의료지원재단은 “나눔문화 확산에도 기여하고 질 높은 의료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순수한 민간재단이 될 것”이라며 섣부른 판단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출발부터 ‘정부 주도’ 논란에 휩싸인 모금 전문 재단의 출현은 투명성과 개방성을 원칙으로 하는 모금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크다. 강철희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바람직한 모금단체는 정치권과 정부로부터 조금씩 더 독립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더 책임 있고 투명한 조직이 되어야 할 것이며 성과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