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업 거점–재생에너지 연결하는 초고압 전력망 추진
EU, 러시아 의존 줄이며 병목 해소 위해 ‘하이웨이’
이재명 정부가 국가 차원의 전력망 확충을 위해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을 본격화한다. 에너지 고속도로는 전국 산업 거점과 재생에너지 생산지를 초고압 송전망으로 잇는 대규모 전력망이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극복하고, 반도체·배터리 등 전력 다소비 첨단산업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는 기간 인프라다. 말 그대로 전기를 실어 나르는 ‘고속도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인공지능(AI)과 함께 에너지 고속도로를 국가 미래 전략의 양대 축으로 제시했다. 이미 지난 7월 에너지 고속도로 추진단을 설치했고, 오는 26일부터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시행된다. 사실상 국가 차원의 전력망 대전환에 시동이 걸린 셈이다.
◇ 러시아 의존 줄이며 ‘에너지 섬’ 해소 나서는 유럽
유럽연합(EU)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EU 집행위는 역내 전력망 병목을 풀고 러시아 화석연료 의존을 줄이기 위해 ‘에너지 하이웨이(Energy Highways)’ 구상을 내놨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지난 10일(현지시각)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연례 국정연설에서 “외레순 해협에서 시칠리아 해협까지 8개 병목 지점을 확인했다”며 “이를 해소해 유럽 시민에게 더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EU는 회원국 간 전력망 격차가 심각하다. 독일·네덜란드는 디지털 전력망과 저장 시설에 투자했지만, 폴란드·불가리아·체코 등은 노후 인프라로 정전에 취약하다. 스페인은 포르투갈을 제외하면 EU 본토와 연결률이 2% 수준에 불과해 ‘에너지 섬’으로 남아 있고, 지난 4월 이베리아 전역 정전 사태가 그 위험성을 드러냈다.
◇ 가격 안정·안보 위한 전략…러시아산 가스 의존 급감
EU는 2030년까지 회원국 전력 수요의 최소 15%를 역내에서 수출입할 수 있도록 전력망을 확충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기존 2020년 목표였던 10%에서 상향 조정한 수치지만, 여전히 많은 회원국이 과거 목표도 달성하지 못한 상태다. 집행위가 에너지 고속도로 정책을 밀어붙이는 이유다.
EU는 이번 계획을 기후 대응뿐만 아니라 에너지 가격 안정과 공급 안보 전략으로 내세운다. EU의 공식 통계기관 유로스타트(Eurostat)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남·동유럽의 전기·가스 요금은 위기 전보다 40~70% 높게 유지되고 있다. EU는 러시아산 가스 수입 비중을 2021년 40%에서 올해 10% 수준으로 줄였다. EU 집행위가 제시한 8대 과제에는 ▲이베리아–프랑스 전력망 확충 ▲키프로스–유럽 전력망 연결 ▲발트해 연안국 전력망 강화 ▲북해 해상풍력 허브 전환 등이 포함됐다.
다니엘 요르겐센 EU 에너지 담당 집행위원은 “전력망 연결이 미흡하면 가격 안정에도 한계가 있다”며 “스페인·포르투갈 정전 사례에서 보듯, 연결성이 높을수록 위험은 줄어든다”고 말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