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다카에서 나이로비, 지속가능경영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다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 소장

방글라데시 다카의 무더운 오후, 이곳의 스타트업 관계자가 건넨 한 마디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모두가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빠져 있어요.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결국 돈벌이 수단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요.”

그리고 일주일 후, 케냐 나이로비의 한 현지 기업가는 더욱 직설적이었다.

“지속가능성? 좋은 말이죠. 하지만 여기서는 생존이 먼저예요. 당신들이 요구하는 지속가능성과 우리의 지속가능성은 차원이 다릅니다.”

지난 2주간 방글라데시와 케냐를 오가며 현지 공공기관 관계자, 스타트업 기업가, NGO 활동가들과 나눈 30여 차례의 인터뷰는 우리가 알고 있던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추구하는 지속가능경영은 누구를 위한 것이고, 그들만 만족하면 되는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제대로 된 지속가능경영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 현지 맥락 빠진 프로젝트, 지속가능성은 없다

다카에서 만난 글로벌 대형 NGO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들의 딜레마를 이렇게 지적했다.

“외국 기업들이 가져오는 의료기기는 최첨단 기술입니다. 하지만 정전이 일상인 농촌에서는 전력이 없으면 작동조차 못하죠. 이것이 과연 지속가능한 솔루션일까요? 기술적 우수성도 현지 환경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무용지물입니다.”

케냐 공공기관 관계자의 비판도 비슷했다.

“한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하지만 프로젝트 종료 후 지속가능성 확보가 가장 큰 과제입니다. 단기 성과에 집중하여 현지 적응을 위한 구체적 고민이 부족한 경우가 많거든요. 한국 본사의 기준을 무조건 따르라고 하지만, 현지 상황과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설명조차 부족합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우리 기업들의 지속가능경영 접근법 자체에 구조적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방글라데시의 한 투자사 대표는 “성공 사례는 모두 현지 파트너와 긴밀한 협력, 완전한 현지화를 통해 나왔다”며 “한국 기업은 현지 지식과 전문성 없이 진출하려 해 실패가 반복된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에는 단기 수익을 극대화하는 주주 자본주의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이 자리하고 있다. 주주 자본주의 체제에서 ESG와 같은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경영 방식은 종종 ‘비용’으로 인식된다. 특히 투자를 받아 해외에 진출하는 기업들은 단기 성과 압박을 받는데, 실질적인 현지화와 지속가능한 사업 기반 구축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만 주어진다는 현실이 이러한 한계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ESG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우리가 추구하는 ESG가 여전히 선진국 중심적 사고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환경 보호, 사회적 책임, 투명한 거버넌스라는 ESG의 핵심 가치는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현지의 필요와 맥락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강요될 때, 진정한 지속가능성은 달성되기 어렵다. ESG를 단순히 규제에 대응하는 수단으로만 여기는 것이 위험한 이유이기도 하다.

◇ 해답은 ‘현지화’와 ‘장기적 지표’

그렇다면 한국 기업은 해외에서 어떻게 지속가능경영을 실현할 수 있을까. 현장에서 확인한 성공 사례는 세 가지 교훈을 준다.

먼저 현지의 이해관계자 식별과 참여가 선행되어야 한다. 타 국가에서의 비즈니스는 현지화가 중요한 성공의 열쇠이다. 일반적인 지속가능경영에서도 중요하게 여기는 이해관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은 해외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현지의 법과 시장환경, 공급망, 문화, 정서 등을 이해하고 있는 이해관계자를 식별하고 그들과의 협업은 필수여야 한다.

둘째, 현지에 맞는 지속가능경영 기준을 세워야 한다. 글로벌 기준·현지 기준·기업 내부 기준을 아우르되, 서로 충돌할 경우 본질을 해치지 않는 최선의, 동시에 엄격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장기적 관점의 지속가능경영 목표와 측정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이때 현지의 실정에 맞는 목표 수립이 필수인데, 한다. 예컨대 ‘상호 의존성 지수’처럼 현지 파트너십과 기여도를 가늠하는 새로운 지표도 검토할 수 있다.

이번 다카의 무더위와 나이로비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 만난 현실은 명확했다. 지속가능경영은 본사 매뉴얼을 해외에 배포하는 것이 아니다. 현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필요를 이해하며, 함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다카의 스타트업 관계자가 던진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구체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곳이 없다”는 그의 지적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보여준다.

이제 우리 기업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ESG 보고서에는 현지 파트너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가? 당신의 지속가능경영 전략은 나이로비의 기업가가 말한 ‘생존’의 문제를 고려하고 있는가? 진정한 글로벌 기업이 되는 길은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그 시작은 우리가 생각하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써 내려가는 것이어야 한다.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 소장

필자 소개

지속가능연구소의 소장으로 재직하며 지속가능경영과 지속가능경제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위해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에 연구, 자문, 컨설팅, 국제표준 심사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는 환경공학과 경영학, 국제학을 공부하고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 공급망관리와 CSR, 지속가능경영 관련 부서에서 근무했습니다. 이후에는 한양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ESG, 지속가능경영, CSR, 창업과 같은 과목을 가르쳤고, 공공기관인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의 초대 사업본부장으로 재직시에는 사회혁신을 추구하는 사업을 총괄하며 지속가능한 사회와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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