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정책학자이자 데이터 과학자다. 존스홉킨스대 SNF 아고라 연구소에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해 미국 시민사회의 현황을 분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코드 포 아메리카라는 미국의 대표적인 시빅 테크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일했으며, 지금도 미국 정부와 협력해 공공 서비스를 개선하는 다양한 현장 실험(field experiment)을 설계하고 실행한다.
핀테크는 간편 결제와 같은 각종 금융 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 기반 서비스를 만든다. 마찬가지로 시빅 테크는 이용자가 공공 서비스를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 기반 서비스를 개발한다. 미국에서는 핀테크처럼 시빅 테크도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으며, 관련된 많은 서비스와 단체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코드 포 아메리카는 캘리포니아 저소득층이 식료품을 구입하기 위해 정부에 작성해야 했던 온라인 신청서를 근본적으로 개선했다. 이 디지털 정책 신청 보조 도구(GetCalFresh)는 기존에 한 시간 걸리던 식품 할인권(food stamp) 신청서 작성 시간을 평균 10분으로 단축했다. 코드 포 아메리카는 약 200명이 일하는 일종의 대규모 시민 단체로, 미국의 국세청(IRS) 같은 연방정부와 15개 주정부와 협력한다.
필자는 코드 포 아메리카의 캘리포니아, 뉴욕, 콜로라도, 뉴멕시코 담당 데이터 과학자로 활동했다. 지금도 코드 포 아메리카와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긴밀히 연구 협력 중이다. 코드 포 아메리카 외에도 미국 정부 내에서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시빅 테크 기관으로는 백악관의 디지털 서비스청(USDS)이 있다. 이 기관은 코드 포 아메리카를 창립한 제니퍼 폴카가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과학기술정책 부문 CTO(차관급)으로 재직하며 설립했다. 디지털 서비스청에는 약 230명이 근무하며, 2014년 설립 이후 지난 10년간 31개 이상의 연방 기관과 협력했다.
필자는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지만, 2022년에는 한국의 KDI 국제정책대학원 데이터 과학 담당 교수로 1년간 일하며 한국 사회를 관찰하고 경험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에게는 다른 데이터가 필요하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을 쓴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데이터 기반 공공 정책을 통해 차별은 줄이고 기회를 늘리는 방법에 대한 이론과 실행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미국에서는 공익을 위해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논의가 정부, 학계, 시민사회, 심지어 기업에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데이터를 논하기에 앞서 ‘공익’이라는 개념 자체가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데이터는 도구다. 이 도구를 잘 사용하려면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민주주의 정부는 모든 국민을 대표하기에, 공공 영역의 데이터 과학은 산업 육성을 넘어,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을 포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한국의 데이터 과학 생태계는 산업 중심이었고, 사회적 관점이 부족했다. 정부 정책도 데이터를 기술 중심, 산업 정책의 틀에서만 이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공익(public interest)이란 무엇인가? 한국에서는 공익과 정부 이익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두 개념은 다르다. 정부 이익은 정부 내 일부 고위 인사의 이익을 의미하지만, 공익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국한되지 않는 모든 구성원의 이익을 뜻한다. 영어에서 공익의 반대는 기업 이익이 아니라 특수 이익(special interest)이다.
성숙한 민주주의는 정부 이익과 공익의 차이가 크지 않은 나라다. 정부가 특정 개인과 집단이 아닌 모두의 이익을 대표하며, 편견과 차별이 적고 기회가 공평하게 분배되는 사회다. “정부에 유리한 것이 곧 나라에 유리한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모든 시민에게 좋은 것이 곧 나라에 좋은 것이다. 시민이 있고, 그다음에 정부가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사회계약론의 핵심이다.
공익을 위한 데이터 과학의 핵심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아니다. 그것은 경청과 포용이다. 공공 영역의 데이터 과학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정부가 그동안 귀 기울이지 못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정책 담당자가 들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시민의 숨겨진 불편과 부담을 데이터로 드러내고, 이를 통해 공공 서비스의 혁신을 이루는 것이다.
20세기의 석유, 전기와 마찬가지로, 데이터는 21세기 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힘이다. 이 힘을 더 나은 정부와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사용하려면,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공익을 이해하고 있는가? 공익이란 무엇인가?
김재연 미국의 공공 영역 데이터 과학자
필자 소개 학계와 실무를 모두 경험한 미국의 공공 영역 데이터 과학자입니다. 존스홉킨스 SNF 아고라 연구소의 연구교수이며 하버드 케네디 스쿨 공공 리더십 센터의 연구위원입니다. 이전에는 미국의 대표적 시빅 테크 단체인 코드 포 아메리카(Code for America)의 데이터 과학자로 미국 정부와 협력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더 쉽고, 빠르고, 편하게 복지 혜택을 누리도록 돕는 일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KDI 정책대학원에서 데이터 과학 담당 교수로 일했고, 공익 목적의 데이터 과학을 소개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다른 데이터가 필요하다(세종서적 2023)’란 책을 썼습니다. UC 버클리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고, 미국 정치학회(APSA)로부터 도시, 지역 정치 부문 최우수 박사학위상(2022), 시민참여 부문 신진학자상(2024)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