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우리도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모기의 역습

김형준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선임 매니저

“상어가 나타났다!”

우리 앞바다에도 이제 매년 상어가 나타난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상어에게 물리면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모든 이목이 쏠린다. 그러나 상어가 지난 100년간 전 세계에서 죽인 사람 수(약 1000명)보다 더 많은 생명을 매일 앗아가는 동물이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모기의 이야기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기는 전 세계적으로 생각보다 많은 질병을 옮긴다. 말라리아와 일본뇌염은 물론,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뎅기열과 황열병도 모기가 옮기는 대표적인 질병이다. 실제로 말라리아만으로도 매년 60만 명이 사망하며 그중 대부분이 5세 미만의 아동이다. 쉽게 말해, 한국 군인 전체 수보다 더 많은 아이가 매년 모기로 인해 목숨을 잃고 있는 셈이다. 이 비극의 대부분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발생한다.

모기가 인류의 건강을 위협한 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도 말라리아로 추정되는 모기 전파 질병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유럽의 아프리카 식민지 확장 시절에도 많은 사람이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와 황열병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모기와의 싸움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기후 변화와 백신이 있다.

기후변화와 모기

기후변화로 뜨거워진 지구는 모기들이 질병을 퍼뜨리기에 더 좋은 환경이 되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말라리아를 퍼뜨리는 모기들이 매년 평균 6.5미터씩 더 높은 고도로 이동하며, 적도에서 4.7킬로미터씩 확장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말라리아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지역들도 위험에 처하고 있으며 더 많은 사람이 모기로 인한 질병에 노출되고 있다.

이 외에도 기후변화로 인해 말라리아 매개 모기들이 더 빠르게 번식하며, 더 자주 물고, 이전에 살지 않던 서식지로 범위를 넓힌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모기가 유충에서 성충으로 변태하는 과정은 일반적으로 22도에서 34도 사이의 온도에서 이루어지는데, 기후변화로 가을과 겨울철에도 모기들이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기의 행동 패턴과 서식지 변화가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 변화가 모기의 생존 방식을 바꾸고 이 모기들이 다시 인간에게 돌아와 질병을 퍼뜨리는 ‘모기의 역습’이다.

말라리아 백신 개발과 도입

역습 중에도 좋은 소식은 있다. 말라리아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 개발되었다는 것이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말라리아 백신 개발은 최근 큰 발전을 이뤘다. 지난 2년 동안 두 종류의 백신이 세계보건기구(WHO)의 승인을 받아 시장에 공급되었다. RTS,S 백신은 2022년에, R21/Matrix-M 백신은 지난해 모든 과정을 거쳐 안전성과 효능을 검증받고 아프리카 국가를 대상으로 접종되기 시작했다. 작년 11월, 카메룬에 33만 회분의 백신 공급을 시작으로, 2024년까지 약 아프리카 20개국에 말라리아 백신이 도입될 예정이다.

말라리아 백신 접종현장. /GAVI

물론 이 백신이 무료로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과 같은 선진국들이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같은 국제기구에 재정을 지원해 백신 구매를 돕는다. GAVI는 제약사와 협상해 백신 가격을 낮추고 말라리아 발생률이 높은 지역에 우선 공급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빌게이츠재단도 ▲학계 ▲제약사 ▲NGO와 협력해 초기 연구와 임상시험을 후원했으며, 개발된 백신이 적절한 가격에 시장에 출시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말라리아 백신은 모기의 역습을 막을 수 있을까? 현장에서 백신을 도입한 결과, 말라리아 백신을 통해 아동 사망률이 약 13% 감소했고, 말라리아 발생 빈도가 높은 시기에 접종했을 때는 예방 효과가 최대 77%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는 큰 숫자가 아닌 것 같지만, 매년 약 2만 3000명의 아이가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한 아이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아이가 우리의 이웃이라면, 2만 3000개의 희망의 씨앗이 뿌려지는 셈이다.

모기장 속 웃고 있는 코트디부아르 아이들. /유니세프
모기장 속 웃고 있는 코트디부아르 아이들. /유니세프

그렇다고 말라리아로 죽는 아이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모기를 피하는 방법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5세 미만 아이들이 모기장 아래에서 잠들지 않거나, 집 주변의 모기 번식 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 신속한 검사가 가능한 진단 키트가 없거나, 치료를 제공할 의료 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많은 생명을 잃을 것이다. 그래서 백신의 소식이 반갑지만 우리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우리 모두의 일

말라리아와의 싸움은 아프리카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 7월, 서울에서도 최초로 말라리아 경보가 발령되었다. 주로 경기 북부나 강원 지역에서만 발견되던 말라리아 매개 모기가 서울까지 내려온 것이다. 많은 이가 백신을 떠올리겠지만, 현재 말라리아 백신은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는 ‘열대열’ 말라리아를 예방하는 백신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발생하는 ‘삼일열’ 말라리아에는 효과가 없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훌륭한 의료 시스템이 있어 적시에 발견하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들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공감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해 본다.

김형준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선임 매니저

필자 소개

현재 미국 하버드대학교 보건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입니다. 이전에는 국제기구 유니세프에서 약 10년간 근무하며 네팔, 가나, 말레이시아,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개발도상국 아동과 청소년의 건강한 삶을 위해 활동했습니다. 동시에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에서 선임 매니저로 일하며 백신으로 저개발국의 아동들을 살리는 사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에서 보건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일하며 질병 예방으로 사람을 살리는 다양한 방법을 경험했고, 이를 많은 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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