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현대차정몽구재단 미래지식 포럼]
키워드 ‘기회’ 아래 교수 6인 강연
연사 대토론 질의응답… ‘실패할 기회’ 공감
전쟁과 기후변화, 팬데믹으로 혼란한 시대. 올해는 어느 때보다 미래에 대한 우려로 가득한 해였다. 지난 10일 서울 중구 온드림소사이어티에서 열린 ‘제3회 현대차정몽구재단 미래지식 포럼(이하 ‘미래지식 포럼’)’에는 넘쳐나는 비관 속에서도 낙관을 발견하고자 하는 여섯 학자가 모였다. 현대차정몽구재단과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공동 주최하는 ‘미래지식 포럼’은 현 사회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정하고, 다양한 전공의 교수들이 학문적 관점에서 통찰을 전하는 대중 강연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상에 적용하면서 올바른 삶의 방향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지식을 전한다는 취지다. 앞서 열린 1·2회 포럼의 유튜브 영상 누적 조회 수는 12만을 기록하는 등 큰 호응을 받았다.
이번 제3회 포럼의 키워드는 ‘기회’였다. ‘기회는 누구의 몫인가’라는 대주제 아래 ▲경영학 ▲심리학 ▲고전문학 ▲농업경제학 ▲경제학 ▲사회학 교수가 강연을 진행했다. 사전 신청 기간 약 3주 동안 연사에게 보내는 질문이 600여 건 접수됐다. 포럼은 행사 당일 오후 1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현대차정몽구재단 유튜브와 네이버TV를 통해 온라인으로 생중계됐으며, 실시간으로 1300여 명이 동시 시청했다.
‘실패할 기회’가 알려주는 것
권오규 현대차정몽구재단 이사장의 개회사로 포럼의 막이 올랐다. 권 이사장은 “우리는 경제, 식량, 에너지, 글로벌 공급망 문제로 대혼란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며 “인류는 기존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대변혁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두렵고 불안하다”고 현재를 진단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 오랜 옛날부터 여행자들에게 방향과 위치를 알려줬던 ‘북극성’처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기 위해 대중 포럼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강연은 세션별로 30분씩 진행됐으며, 1부와 2부 끝에는 연사들이 참여하는 ‘연사 대토론’ 시간이 65분씩 마련됐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편집국장과 최기환 아나운서가 토론 진행을 맡았다. 1부 ‘기회 너머의 기회’는 개인 차원에서 기회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으로, 신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유광수 연세대 학부대학 교수가 연단에 섰다.
신재용 교수는 ‘MZ세대가 말하는 공정과 기회’라는 제목으로 청년의 기회에 대해 이야기했다. 신 교수는 “미래가 불안한 MZ세대는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며 “MZ세대에게 성장 기회를 주지 못하는 기업은 인재를 붙잡아둘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허지원 교수는 “실패할 기회를 허용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가 부과한 ‘완벽주의’ 때문에 실패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사람이 젊은 층일수록 많다”면서 “우울, 불안, 강박 장애 같은 정신 질환의 이면에는 완벽주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패할 기회가 있다는 것, 이 상황을 벗어날 선택지를 가지고 있다는 걸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극심한 상황을 버틸 힘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고전문학을 연구하는 유광수 교수는 여러 가지 설화를 예시로 들면서 “(노력을 통해) 기회의 영역을 넓히고, 자신을 믿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사 대토론’에서는 시청자의 질문에 연사들이 직접 답하고, 강연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를 나눴다. 연사들은 ‘실패할 기회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신재용 교수는 “실패를 꺼리는 사회에서는 혁신이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며 기업 문화가 직원에게 새로운 시도를 독려하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광수 교수는 바보 온달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기준을 무엇으로 두느냐에 따라 인생은 모두 성공이기도, 실패기도 하다”며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남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시원 편집국장은 “기회라고 하면 대부분은 ‘성공’을 먼저 떠올리지만 오늘 강의와 토론에서는 ‘실패’에 관한 이야기가 훨씬 많이 나왔다”며 “중요한 건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기회’를 먼저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은 내가 누구인지, 어떤 걸 잘하는지, 어떤 걸 싫어하는지 알 수 없다”며 “개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디스토피아에서 유토피아로
2부는 ‘디스토피아에서 찾은 기회’를 주제로 진행됐다. 농업·기후·인구 등 가장 중요하면서도 위태로운 세 영역에 오히려 더 큰 기회가 있음을 확인하고자 했다. 민승규 한경대 석좌교수, 정태용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가 차례로 강연을 진행했다. 농업을 40년 동안 연구해 온 민승규 교수는 “최근 농업과 첨단 기술이 만나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다”며 “한국 농가가 ‘디지털 강소농’이 된다면 세계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태용 교수는 “기후변화는 모든 사람의 문제”라며 “정부뿐 아니라 기업, 시민 단체 등 모든 주체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은 언제나 기후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면서 ‘비용’으로만 인식한다”며 “위기를 기회로 받아들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면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경아 교수는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해 ▲성평등 민주주의 사회를 이룰 것 ▲청년이 살기 좋은 지역사회를 조성할 것 ▲돌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을 제언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연사들은 “위기를 기회로 인식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민승규 교수는 “한국 농업을 위기라고 보는 그 시각이 더 큰 위기를 만든다”고 말했다. 농업과 인구, 기후가 굉장히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총체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도 모두 공감했다. 신경아 교수는 “생태학적 관점에서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사회 각 영역의 문제가 독립적일 수 없고, 해결책도 따로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민승규 교수도 “기대수명이 늘어나면 식량도 더 많이 필요하고,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 기후는 식량 공급을 어렵게 한다”며 “식량 문제 대책을 내놓을 때 인구 문제와 기후 문제를 고려하는 입체적 사고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마지막 질문은 포럼의 대주제인 ‘기회는 누구의 몫인가’였다. 정태용 교수는 “기회는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며 “지금까지는 인구는 인구 전문가에게, 농업은 농업 전문가에게 맡기는 방식이 익숙했지만, 이제는 여러 전문가가 함께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미래지식 포럼’은 현대차정몽구재단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